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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드범 Mar 25. 2017

의미란 무엇인가

의미있는 무언가가 맛있는 이유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소설 「칼의 노래」의 시작이다. 글 첫머리엔 후일담이 있다. 작가 김훈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중 어느 문장으로 글 포문을 열지 고민했다. 조사 하나 차이다.     


김훈은 왜 이토록 그 한 글자에 집요하게 집중했을까? 조사로, 글의 맛이 변한다. 한 음절도 안 되는 글자엔 반만년, 이 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 습관이 담겨있어서다. 작가는 독자가 첫 문장을 어떻게 맛볼지 되새김질했다. 조사의 힘을 알았다.    

  

사람들은 조사를 중히 여기지 않는다. 말하며 조사를 흘릴 뿐이다. 그들에게 조사는 무의미하다.  

   

반면 김훈은 조사를 낯설게 봤다. 조사가 품은 의미를 발견했다.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았다.


< 무의미에서 찾는 의미 >     


6월 어느 날, 알랭은 파리 거리를 걸었다. 그의 눈엔 짧은 티셔츠를 입은 아가씨들이 들어왔다. 티셔츠에 견줄 만큼 민망할 정도로 짧은 바지를 입은 그녀들. 상의와 하의 사이엔 흰 속살이 드러났다.     


알랭은 속살 중앙에 나 있는 동그란 우물에 관심을 보인다. 풍만한 가슴이나 길쭉한 허벅지가 아니다. 생의 흉터, 배꼽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남자가 또는 어떤 시대가 여성의 매력의 중심을 허벅지에 둔다면 이러한 성적 성향의 특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정의할 것인가… 하지만 몸 한가운데, 배꼽에 여성의 매력이 집중돼 있다고 보는 남자 또는 시대의 에로티시즘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작가 ‘밀란 쿤데라’가 쓴 「무의미의 축복」의 한 대목이다. 알랭은 왜 배꼽에 매력을 느꼈을까?     


배꼽엔 알랭의 어머니가 살았다. 그녀는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 알랭을 뱃속에 품고 자살하지만 실패한다. 그녀는 알랭이 열 살 정도 됐을 무렵 떠난다. 떠나기 전, 아들의 배꼽을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그때 알랭은 어머니의 시선에서 설명할 수 없는 연민과 경멸이 담긴 미소를 느낀다. 아들은 배꼽을 헤매며 어머니를 찾는다.      


또 다른 이야기.     


증권 중개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화가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곤 처자식과 모든 재산을 두고 태평양 어느 섬으로 떠난다. 섬에서 그는 문둥병에 걸리면서까지 오직 예술활동에 전념한다. 작품을 위해 생명까지 불사 지른다. 결국, 증권 중개인은 인류사에 남을 걸작을 탄생시킨다.



화자는 그 작품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것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원시적인 무엇·신성한 작품이었다. 인간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악마의 마법이 어렴풋이 연상됐다.”     


저자 ‘서머싯 몸’은 화가 ‘폴 고갱’ 이야기로 「달과 6펜스」를 썼다. 고갱처럼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에 인생을 던졌다. 비상식적인 방식이다. 과연 그가 선택한 삶은 의미 있을까?     


우리는 의미의 동의어로 ‘가치’를 사용한다. ‘무언가가 의미 있는가’는 ‘무언가가 가치 있는가’와 결이 같다. 가치는 값(價)과 값(値)의 합성어다. 값은 중요함을 뜻한다. ‘무언가가 중하다’고 판단될 때 우리는 ‘가치 있다’고 말한다.     


스트릭랜드가 예술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술에 몸을 던졌냐’는 질문에 “그림을 그리고 싶을 뿐”이라 답한다. 그에게 그림은 인생을 걸만큼 중요했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다시 의미란 무엇인가>     


의미는 이야기다. 김훈, 알랭, 스트릭랜드가 집착하고 중히 여겼던 것들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맛있다. 이해할 수 없거나 눈에 띄지 않는 것들도 살펴보면 독특한 풍미를 풍긴다. 이목을 집중시키고 관심을 끈다.     


공교롭게도, 의미(意味)엔 뜻(意)에 맛(味)이 더해졌다. 의역하면 ‘뜻의 맛’이다.


의미 있는 무언가가 맛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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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학생
더블린에서 맥주팔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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