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을 낯설게 보기
60년대 미국 NASA. 책상 아래 발을 동동 구르던 한 여성이 의자를 박차고 사무실을 달려 나간다. 어딘가 불편해 보였던 그녀는 800미터 떨어진 건물을 향해 불편한 하이힐을 신고 뛴다. 한 손엔 펜을 다른 한 손엔 두꺼운 서류철을 들고 비를 맞으며 헐레벌떡 발길을 옮긴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화장실’이다.
직장 상사는 일각을 다투는 NASA에서 하루에도 수 십 분씩 자리를 비우는 그녀를 질책한다. ‘대체 어디를 다녀오냐’는 상사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이곳엔 제가 쓸 화장실이 없어요(There is no bathroom for me here)
영화 <히든 피겨스>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60년대 미국 NASA에서 전산원으로 근무했던 여성들의 모습을 풀어낸다. 흰색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남성들 사이에서 그녀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유리 천장을 뚫어내는 그녀들의 노력들을 경쾌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린다. 차별은 영화를 관통하고 있다.
19~20세기 여성들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당시 여성들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참정권이나 사회적 발언권조차 그녀들에겐 허용되지 않았다. 고대 아테네 비(非) 시민들처럼 말이다.
당시 여성들은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사회의 중심은 남성이었고, 여성들은 그 중심에 맞춰져야 했다. 여성들이 사회적 미(美)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신체적인 고통을 감수하기도 했다. 중국 전족에서 미의 기준은 작은 발이었다. 전족 여성들은 남성들이 선호하는 작은 발을 갖추기 위해 5~6세부터 자신의 발을 압박했다. 엄지발가락이 발뒤꿈치에 닿게 만들어 크기를 줄였다.
여성들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감추기까지 했다. 자신을 부정한 것이다. “애덤 비드(Adam Bede)”, “미들 마치(Middlemarch)”와 같은 작품을 남긴 19세기 영국 작가 ‘매리 앤 에반스(Mary Ann Evans)’는 여성 작가라는 선입견을 피하기 위해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인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겐 기본권이 주어진다. 한 사회의 시민이라면, 나아가 인간이라면 당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헌법이 이를 보장한다. 하지만 19~20세기 헌법에선 여성들의 기본권이 언급되지 않았다.
참정권은 시민에게 주어진 기본권이다. 시민이라면 자신의 대표자를 선출할 권리를 갖는다. 20세기 뉴질랜드의 한 여성은 자신에게 이러한 기본권이 없다는 사실을 불편해했다. 영국에서 뉴질랜드로 이주한 ‘케이트 셰퍼드(Kate Sheppard, 1847~1934)’다.
케이트 셰퍼드는 여성 참정권의 포문을 열었다. 그녀는 ‘여성 절제회(기독교 여성 금주 동맹)’라는 모임을 조직해 여성의 시각에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녀는 여성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세 차례나 실패한 끝에 뉴질랜드 여성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2000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셰퍼드는 서명운동 결과를 의회에 제출했다. 1893년 11월 28일, 뉴질랜드에선 여성 투표권을 적용한 첫 선거라 치러졌다. 당시 언론은 이 사건을 이렇게 묘사했다.
여성들과 그들의 미소 짓는 얼굴은 기표소를 아주 환하게 밝혀줬다
영국의 한 여성은 여성의 ‘교육권’에 대해 역설했다. 18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여권신장론자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Marry Wollstonecraft, 1759~1797)’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을 남성의 보조적 역할로만 보는 사회의 시선에 도전했다. 여성의 교육적·사회적 평등을 주장했다.
메리는 “여자는 남성과 똑같은 인간이다”라고 외쳤다. 그녀는 소책자 <여성의 권리 옹호(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을 발간해, 남녀 불평등이 여성의 교육 불평등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여성도 남성처럼 학교에 다녀야 하며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녀는 장 자크 루소의 “열등한 이성을 지닌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이 곧 자연법”이라는 의견에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으며, 여성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아버지나 남성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이성”이라고 반박했다.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이 벌어졌고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18년 영국에선 제한적이었지만 여성들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됐고, 1920년 미국에선 헌법이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도록 수정됐다. 수정헌법 19조다. 수정헌법 19조는 이렇게 밝힌다.
미국 시민의 투표권은 성별을 이유로, 미합중국 또는 어떤 주에 의해서도 부정되거나 제한되지 아니한다
친구에게 그의 친할머니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친구의 친할머니는 매를 맞으셨다. 거실 벽엔 ‘사랑의 매’가 걸려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매로 할머니를 때리셨다. 사랑해서가 아니다. 구타를 동반하는 사랑은 없다. 할머니는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셨다. 집안 남자만 학교에 가는 상황도, 매를 맞는 것도, 심지어 재산상속을 받지 못한다는 점도 당위적으로 받아들이셨다. 그녀에게 차별은 숙명이었다.
한국 여성들에겐 ‘차별’이란 주홍글씨가 찍혀있었다. 1981년 UN이 <여성차별 철폐협약>을 발효한 뒤로 30년이 지났지만 ‘유리 천장’은 아직 남아있다. 한국 여성 임원 관리자 비율은 세계 123개국 중 114위다. OECD 국가 중에선 일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꼴찌 경쟁을 하고 있다. 국내 100대 기업에선 남성 임원 기준 98명 당 여성 비율은 2명 정도다. 공기업에선 여성 임원 기근 현상이 벌어진다. CEO스코어에서 발표한 <2016년 상반기 시장형/준시장형 30개 공기업 전체 임원 성비율>에 따르면 전체 임원 139명 중 여성 임원은 단 한 명도 없다.
한국 여성은 사회적 역할을 부담해야 했다.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은 한국 여성들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한국 여성정책 연구원이 내놓은 <여성가족 패널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여성 가사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151.99분이었다. 남성은 17.81분에 불과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가사에 시간을 10배 이상 소비하고 있었다. 여성이 자기계발에 시간 투자를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풀이된다. 이 같은 현상은 여성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말 30대 여성의 경력단절 비율은 53%에 달한다. 워킹우먼 두 명 중 한 명은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일을 관둔다는 의미다.
여성들은 ‘유리 천장’을 직시하고 있었다. ‘사람인’이 직장인 738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유리천장 여부’를 조사한 결과, 54.3%가 ‘있다’라고 응답했다. 응답자들은 ‘직책자를 남직원으로만 임명할 때’나 ‘여직원들이 승진에서 밀릴 때’ 유리천장을 실감했다. 아직 남성 중심 문화가 남아있다는 의미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OECD 국가 중 한국이 ‘유리천장 지수(Glass-ceiling index)’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차별’은 ‘최초’의 이름을 달고 등장했다. 미디어는 여성 인재 등용을 이벤트처럼 대서특필했다. 무의미한 것에 의미가 부여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 특별해졌다. 최초의 여성 장관 ‘임영신’, 첫 여성 사법고시 합격·첫 여성 변호사 ‘이태영’ 등이다.
현 정부에선 ‘유리천장을 깬’ 여성들이 등용되고 있다. “나의 적은 북쪽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주변의 남군과 문서 쪼가리들이었다”라고 발언한 보훈처장과 ‘파격인사’라 불리는 외교부 장관 후보자다. 이들에겐 모두 ‘여성 최초’나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파격적인 행보를 밟고 있는 최초의 원더우먼들이다.
최근 영화 <원더우먼>이 국내에 개봉했다. 책 <원더우먼 허스토리>에 따르면 원더우먼의 원작자 ‘윌리엄 몰튼 마스턴’은 첫 여성 히어로의 탄생 배경에 대해 “여성은 약점으로 인해 강점을 멸시당했다”며 “이를 해결할 명백한 방법은 슈퍼맨의 힘과 훌륭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매력을 전부 갖춘 여성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별해져야만 했던 이 히어로가 웃픈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