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워터, 트렌디 아이템(Trendy item) 사다리에 오르다
인수가격 7억달러(약 7,800억 원), 2006년 미국 내 매출 3억 1500만달러(약 3,500억 원), 2010년 글로벌 매출 272% 상승. 글라소 비타민워터(Glacéau Vitamin –water)의 이야기다.
음료시장은 레드오션(Red ocean)이라 불린다. 강자가 존재하는 춘추전국시대다. 경쟁도 치열하다. 한치 앞 상황도 예상치 못한다. 시장을 군림하던 코카콜라는 뉴-코크라는 악수를 둬 권좌에 금이 가기도 했고, 세븐업(7-Up)은 코카콜라의 대항마로 갑자기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시 상황에서 비타민워터는 비탄산음료 부문 강자로 떠올랐다. 음료 브랜드들이 내뿜는 PR들 속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낭중지추다. 소비자들은 정보의 포화상태에서 비타민워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비타민워터의 메시지는 ‘트렌디(Trendy)’였다. 비타민 워터는 트렌드 세터들(Trend Setter)의 잇(it)아이템이 되고자 했다. 트렌디 아이템이란 사다리의 정상에 깃발을 꽂고자 했다. 이 사다리의 권자를 선점하고자 했다.
비타민워터의 선점 전략은 성공했다. 코카콜라는 2004년 물에 비타민을 탄 음료수를 수천억원에 사들였다. 미국에서만 한 해에 인수가격의 절반을 벌어들였다. 국내에도 비타민워터 열풍이 불었다. LG생활건강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비타민워터는 2009년 6월 국내 출시 후 1년만에 매출기준 1,000% 성장했다.
비타민워터는 트렌드에 민감한 2030세대의 욕구와 공명했다. 2009·2010년 글로벌·국내 트렌드와도 맞물렸다. 두 해는 비타민워터의 성적이 가장 좋았고, 국내에도 진출했던 시기다. 비타민워터는 트렌드세터들의 머스트-해브-아이템(Must Have Item)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TV PPL을 진행하고 팝업스토어를 세웠다. 당시 가장 핫한 연예인들을 내세워 광고도 제작했다.
비타민워터의 성공을 잭 트라우트와 앨 리스가 쓴 『포지셔닝』으로 분석한다.
커뮤니케이션 과잉 시대, 강력한 전략 ‘포지셔닝’
21세기는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세상이다. 소비자들은 수많은 메시지에 강요받는다. 소비자들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메시지들에 귀를 막아버린다. 자신만의 필터로 정보들을 가려서 듣기도 한다. 기업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고객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이유다. 기업이 잘못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경우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도한다. 투자대비 효율을 누리는 시대의 종말이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공중에서 증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해법은 ‘단순한 메시지’다. 메시지를 단순하게 만들어 고객과 소통하는 방법이다. 단, 메시지는 상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서 나와야한다. 고객에게서 나온 메시지여야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 포지셔닝은 상품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 고객의 마인드에 어떤 행동을 가하는 것이다. 즉 잠재 고객의 마인드에 해당 상품의 위치를 잡아 주는 것이다. 단순한 메시지로 고객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기억하도록 하는 방법이 포지셔닝이다.
포지셔닝은 ‘선점’이다. 제 1원칙이자 절대 법칙이다. 어디를 선점해야하는가. 고객의 마음을 다른 기업들이나 상품보다 먼저 점령해야한다. 포지셔닝에 따르면, 고객들은 한정된 인식의 지도를 마음 속에 두고 있다. 이 지도엔 다채로운 상품이나 기업들이 의미체계를 이루고 있다. 포지셔닝은 이 지도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그곳에 도달한 다음 상대의 마음이 바뀔 수 있는 동기를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다. 포지셔닝은 고객의 마음 속에 들어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바로 ‘첫 번째가 되는 것’이다.
포지셔닝의 두 저자는 다른 저서에서도 ‘선점전략’을 역설한다. 잭트라우트와 앨 리스가 쓴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는 선점 전략의 단서들의 속속 등장한다. 둘은 이 책에서 성공 비결은 소비자의 마음 속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것이라 주장한다. 고객의 마음 속에서 최초의 제품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시장에서 최초가 되기 보다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최초가 되는 편이 낫다고까지 말한다. 마케팅은 제품의 전쟁이 아니라 인식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어떤 제품으로 ‘인식’되는가가 중요하다. 메시지가 제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와 결을 같이한다. 최고의 제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고의 제품이라는 말은 환상에 불과하다. 객관적인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따위도 없다. 최고의 제품 역시 없다. 마케팅 세상에는 소비자나 소비자의 기억 속에 자리잡는 ‘인식’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외 다른 모든 것은 환상이다.
소비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제품을 인식시킬 것인가. 인식될 모습을 선택하는 것도 포지셔닝 전략에 필수 부가분한 요소다. 제품 이미지가 단순해야 고객이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단순한 메시지가 필요한 이유다. 메시지가 단순해야 고객의 마음 속에 자리잡을 수 있다. 기업은 제품이 내세울 수 있는 다채로운 장점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한다. 하나의 메시지를 위해선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한다. 심플리즘(Simplism)의 대가 ‘스티브 잡스’도 1997년 ‘애플 세계 개발자회의’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집중해야 할 대상에 대해 ‘예’라고 말하는 것이 참된 집중이라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미를 완전히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집중이란 그 밖의 다른 좋은 아이디어들에 대해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신중하게 선택해야합니다. 저는 실제로 우리가 한 일 못지 않게 하지 않은 일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수많은 것들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혁신입니다.
비타민 워터의 포지셔닝
비타민워터의 메시지는 ‘트렌디’였다. 비타민워터가 행한 거의 모든 전략이 ‘트렌디’에 맞춰졌다. 제품을 패션아이템으로 자리잡도록 했다. 비타민워터를 마시는 것만으로 고객이 자신의 ‘트렌디함’을 표현할 수 있도록 제시했다. 이러한 비타민워터의 전략은 성공궤도를 그리던 당시 트렌드와 맞물렸다.
▶ 2009·2010년 트렌드
2009년과 2010년, 당시 소비트렌드는 표현가치로 정리된다. 미국의 트렌드 분석 연구 기관인 ‘트렌드와칭 닷컴(trendwatching.com)은 2010년 글로벌 소비트렌드 중 하나로 플럭셔리(Fluxury)를 꼽았다. 플럭셔리는 기존 럭셔리와 다르다. 럭셔리(luxury)와 유동성을 뜻하는 플럭스(flux)의 합성어로, 유연한 럭셔리를 의미한다. 플럭셔리는 돈만 있으면 구입할 수 있는 비싼 명품이 아니라 희소성과 독창성을 지닌 제품을 말한다. 이러한 제품은 고객이 자신만의 무언가를 소유하며 개성을 표현하며 소장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특성을 지닌다.
소비자들은 가치지향 소비도 즐겼다. 소비트렌드가 필요에 기반한 과거의 합리적 소비에서 소비자가 갖고 싶어하는 ’욕구‘지향 소비로 옮아갔다. ’내가 정말 갖고싶은 것인가‘가 중요한 소비 의사결정의 기반이 됐다. 소비자들은 제품이 담고 있는 경험과 감성을 사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사는게 아니라 자동차로 누릴 즐거움을 사고,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는게 새로운 경험과 추억을 만드는 방법이 됐다. 소비자들은 상품에 담긴 경험, 감성, 스타일, 아우라를 구매했다.
국내에선 고객의 스타일을 표현해주는 제품이 트렌드가 됐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2010년 소비트렌드로 ’스타일‘을 꼽았다. 스타일의 독재가 시작된 것이다. 디자인이 핵심이 아니였던 제품들도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 고객의 개성을 표현해 줄 수 있어야만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트레이딩 업 소비 경향이 늘어 갔다. 트레이딩 업이란 상향구매라고도 한다. 중저가의 상품을 구매하던 중산층 소비자가 고품질이나 감성적인 만족을 위해 비교적 저렴한 신 명품 브랜드(new luxury brand)를 소비하는 경향을 말한다. 비타민워터는 고가의 식품보다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작은 사치‘였다.
▶ 비타민워터가 ’트렌디 아이템 사다리‘에 오른 방법
비타민워터는 단순 음료가 아니라 트렌드를 주도하는 ’패션아이템‘이었다. 글라소는 젊은 층을 이끄는 셀러브리티를 기용하거나 핫한 방송에 간접광고 상품으로 진입하는 방법으로 비타민워터를 포지셔닝했다.
먼저 랩퍼 50센트(cent)와 광고촬영을 진행했다. 50센트는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랩·힙합 부문에서 수상한 랩퍼다. 비타민워터는 그의 이름을 담아 ’Fomula 50‘이란 한정판도 내놨다. 아시아권에선 아이돌 ’빅뱅‘의 지드래곤과 함께했다. 지드래곤은 비타민워터와 중국에선 광고를, 국내에선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4년 집행된 TV광고도 트랜드에 방점을 찍었다. 비타민워터는 아이돌 2ne1의 ’CL‘, 랩퍼 ’버벌진트‘와 광고를 촬영했다. 둘은 자신만의 인생을 살라는 메시지를 광고에서 전달한다.
간접광고도 집행했다. 미국에선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와 <가십걸>에, 국내에선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 자사 제품을 집어넣었다. 예능 <무한도전>에도 나왔다. 효과는 상당했다. 소비자들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먹는 음료라 인식했다. 국내에서도 트렌드 세터들이 비타민워터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세워진 ’팝업스토어‘도 이러한 흐름에 한몫했다.
글라소 비타민워터는 독특한 병 디자인 덕도 봤다. 섹시한 디자인은 트렌디함을 한껏 부각 시켰다. 더글라스 홀트의 『컬트가 되라』에선 비타민워터의 디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흰 바탕에 검은색 글씨체를 사용하는 약제상 디자인코드를 청량음료 카테고리에 적용해 새로운 미적 감각을 만들어냈다. 반투명 분홍, 선홍, 형광 노랑 등 각기 다른 물 색깔은 아이맥 컴퓨터 색상 미학을 연상시킬 정도로 혁신적이다.
그 결과 트렌드를 주도하는 20대가 비타민워터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20대 10명중 약 4명(38%)이 비타민 음료 중 비타민워터를 택했다.
비타민워터는 트렌디 아이템 사다리 정상을 꿰찼다. 당시 소비자들은 비타민워터를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마치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당시 비타민워터는 국내에선 유통사 ’LG생활건강‘의 성장을 견인했다. 2010년 LG생활건강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비탄산음료는 파워에이드와 같은 기존의 브랜드와 글라소 비타민워터 등 신규 브랜드의 성장으로 36% 매출 성장을 이뤘다. 비탄산음료의 매출 비중도 32% 증가했다. 신세계 센텀시티의 생수전문매장 ’워터바‘에선 비타민 워터가 스테디셀러였다.
현재 비타민워터의 명성은 예전만치 못하다. 트렌디 아이템 비타민워터의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