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과 실제 사이의 줄타기
99%의 거짓과 1%의 진실이 더 효과적이다
히틀러 내각의 선전장관 ‘폴 요세프 괴벨스’가 뱉은 말이다. 괴벨스는 대중 선동 정치의 천재라 불렸다. 괴벨스 말은 모든 독일 가정에 보급된 라디오로 전파됐다. 당시 독일인들은 라디오를 ‘괴벨스의 입’이라 불렀다. 히틀러와 나치즘은 ‘괴벨스의 입’을 기반으로 기세를 펼쳤다. 괴벨스는 이런 말도 남겼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선동가의 입으로 히틀러는 훌륭한 지도자가, 유대인은 파멸 대상이 됐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정당화됐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거짓은 사실이 됐다. 사람들은 허상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최근 콘텐츠 제작사 ‘셀레브-Sellev’에 페이스북 팔로어 조작 의혹이 일었다.
셀레브는 팔로어 100만 명이 ‘자발적’으로 즐기고 공유한다는 사실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구독자 100만 중 약 90%가 동남아시아 유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저들의 자발적인 활동이란 문구엔 물음표가 찍힌다.
동남아권 유저들은 페이지 광고에 일단 좋아요를 누른다. 동남아 국가로 페이지 광고를 집행하면 빠르게 팔로어를 늘릴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동남아 국가엔 팔로어와 좋아요를 인위적으로 얻게 해주는 ‘좋아요 공장’도 몰려있다. 좋아요 공장을 통해 돈을 주고 구매한 페이지에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유저가 몰려있는 이유다. 셀레브 구독자 중 한국사람은 약 10%인 9만 9,000여 명에 불과했다.
100만이란 숫자는 진실 같은 허상이었다. 수많은 유저들이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모습이 그려지지만 이는 미지수다. 한국어 콘텐츠를 동남아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유하는 그림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국민의당에선 ‘문준용 녹취 조작’ 사건이 벌어졌다.
국민의당은 지난 대선 기간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자의 아들 준용씨가 특혜 입사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대선을 불과 나흘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됐지만 이는 사실처럼 받아 들어졌다.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도 해당 의혹이 등장했다. 문 후보는 의혹으로 꽤나 곤욕을 치렀다.
의혹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국민의당 당원 이유미 씨가 제보한 관련 자료들은 모두 조작이었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야기가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실제로 나타났단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허상과 실제가 혼재된 세상에서 살아간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이 현상을 ‘시뮬라크르’라 말한다. 시뮬라크르는 실재 같은 허상과 이 허상이 실재를 대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세상에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을 침범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허상과 실재가 역치 된다. 가상과 실제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주객이 전도된다. 중요한 게 중요하지 않게 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게 된다. 가상세계인 SNS가 실제인 일상보다 우선시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이퍼 리얼리즘 작가 정종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원본이 복제를 카피하고, 실재가 가상을 따라 하는 현상이다.
브랜드도 허상과 실제 사이에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도록,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괴벨스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한다. 이른바 ‘고도의 사기’다. 브랜드는 아이덴티티라 불리는 허상과 로고나 제품/서비스란 실제의 혼합체다. 어디까지가 허상이고 어느 지점이 실제인지 모호하다. 코카콜라는 열정이나 재미일까, 단순한 설탕물일까.
브랜드는 허상에 방점을 찍는다. 본질인 제품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이미지에 집중한다. 이미지가 사람들의 마음에 소구해서다. 미디어판을 뒤흔드는 넷플릭스의 탄생일화도 사실 허구다. 넷플릭스의 브랜드 스토리는 크게 두 가지다. 창업자가 비디오 <아폴로 13>을 빌렸다가 연체료 40달러를 물어야 했던 경험과 매달 돈을 내면 언제든 다닐 수 있는 헬스장의 비즈니스 모델을 결합해 넷플릭스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이 스토리는 '창조적 연관 짓기'의 대표 사례로 등장하며 넷플릭스를 창의적인 회사로 포장했다. 심지어 창업자 헤이스팅스는 본사에 책상조차 없다. 대표까지 판의 틀을 깨는 행보를 취하니, 넷플릭스는 대단히 창의적인 회사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브랜드의 본질은 제품과 서비스에서 나온다. 둘은 실제다. 테슬라 모터스와 스페이스 X의 CEO ‘일론 머스크’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제품에 집착한다. 비정상적이라 불릴 만큼 제품의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 테슬라 차량의 바디는 알루미늄을 고집했고, 차내 LCD 패널은 17인치 여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자동으로 나오는 차량 손잡이나 재활용 우주선도 모두 그의 집착에서 탄생했다.
셀레브가 팔로어 조작 의혹에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이유도 제품에 있다. 셀레브의 힘은 영상 콘텐츠에서 나온다. 셀레브의 인터뷰 영상은 한 개인의 삶에 집중한다. 진실되고 진심이 담긴다. 영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질문을 보면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영상들은 휘발성이 짙은 콘텐츠 세상에서 영구적으로 살아남았다. 사람처럼 생명을 얻은 콘텐츠다.
사랑받는 브랜드는 인간적이다. 탐스슈즈, 프라이탁, 파타고니아, 옥쏘 등 이들 브랜드는 소비자의 영혼을 울린다. 자신들의 생각을 제품과 서비스로 솔직하게 피력한다. 우리는 생명이 없는 브랜드를 살아있는 것처럼 감상한다. 이쁘다던가 멋지다던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적인 브랜드의 승리다.
하지만 사람다운 브랜드도 결국 허상이다. 인간처럼 실제 같은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도 새로운 허상을 탄생시키는 과정이다. 사실을 위해 가짜를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브랜더는 허상과 실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운명이 아닐까. 하늘도 땅도 아닌 반 허공에서 줄 타는 광 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