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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 Oct 06. 2023

앞과 뒤가 다른 작가들을 만날 때

출판사 마케터도 이왕이면 좋은 작가님과 함께 하고 싶다고요

보이는 대로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던 사람들의 찐 모습을 보는 순간에 물밀듯이 덮쳐오는 허탈함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니까. 예전에 업무 특성상 미디어와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었는데, 카메라 앵글 안과 밖에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 많이 본 뒤로는 나는 내가 직접 관계를 맺고 경험해 보지 않으면 보이는 대로 사람을 잘 평가하지 않는 편이다. 


다른 업계에 비하면 매너 있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여있는(물론, 내 생각이다) 출판업계에는 그런 일이 없을까? 아니, 있다. 개인적으로는 꽤 이름 있는 몇 명의 작가에게 실망한 적이 있다. 업무적으로 얽혀서가 아니라 정말 우연히 독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찐 모습을 목격한 썰이다.


수준있는 작가 A

A 작가는 그 분야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다. 많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복수의 베스트셀러를 가지고 있어 강의도 많이 하는 분이다. 한 번은 오프라인 행사가 있다고 해서 조금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알짱거리고 있었다. 참고로 나는 출판업계 관계자이지만, 많은 작가와 책을 사랑하는 독자이기도 해서 조용히 많은 곳을 기웃거리는 편이다. 아무튼 그렇게 주변을 돌다가 더 돌다가는 돌 것 같아서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남은 시간을 여기서 죽이려고 커피를 주문하고 돌아서는 순간 커피숍 창가 가장자리에 A 작가가 일행과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정말 우연히 운명처럼 비어있는 자리가 마침 그 옆자리뿐이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오늘 행사에 참여하려고 온 독자예요!"라고 하이텐션으로 인사를 하기에는 커피숍과 그 테이블 분위기가 쫌 애매한 상황이었고, 주문한 커피가 있으니 취소하고 나가기도 애매해서 그냥 모른 체 하고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원치 않게 A 작가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오늘 제가 어쩔 수 없이 나오기는 했는데요. 다음부터는 이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무슨 말씀인지 충분히 알았고, 다음부터는 꼭 참고하겠습니다. 작가님."

"정말 수준도 안 되는 사람들이랑 같이 뭘 하는 거 자체가 좀 그래요. 저를 오랫동안 보신 분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보아하니 그 날 행사에 같이 하기로 했던 다른 작가 몇 명이 있었는데, 그 작가들이 본인의 수준과 맞지 않는다며 같이 행사를 하면 지금까지 쌓은 본인의 이미지(?)에 도움 될 게 없다는 말 같았다. A 작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은 출판사 관계자인 듯 싶었고. 사람들 앞에서는 온갖 좋은 말과 인자한 미소로 응하던 그의 날 선 말과 행동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A 작가 앞에 앉아 있던 출판사 관계자의 씁쓸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A 작가를 볼 때마다 그날 그가 말하던 '수준'이 무엇인지 심히 궁금할 뿐이다.


사진 찍는 거 좋아하는 작가 B

B 작가의 북토크가 모 서점에서 꽤 규모 있게 진행이 된다고 해서 역시나 일찍 그곳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명성을 들어왔던 분이라 어떤 이야기를 할 지 궁금해 먼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갔다. 역시 시간이 남아 서점에서 시장조사(?)를 겸하고 있는데, B 작가도 나처럼 시장조사를 하는 지 이 책 저 책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서점에서 하는 큰 행사다 보니 늦지 않게 일찍 도착한 것 같았다. 그날은 좀 설렜다. 나는 어떤 유명한 사람을 봐도 그닥 설레거나 설레발을 치지 않는데, 오랜 시간 궁금해하던 B 작가를 눈 앞에서 보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성큼 다가가 말을 건넸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오늘 작가님 뵈러 온 독자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작가님과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제가 예전 사회생활 할 때부터 너무 뵙고 싶었던 분이라서요."

"(급 정색하며) 저는 처음 본 분들과 사진을 찍거나 하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그러고 그는 나에게 등을 돌리고 저 멀리 다른 분야의 도서들이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순간 정색하며 차갑게 말하는 B 작가에게 서운한 감정이 일었지만, 이 역시도 그의 철학이라고 생각했기에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났다. 북토크가 끝나고서 나가려는데, 저 멀리서 너무나 환환 얼굴로 사진을 찍고 있는 B 작가의 모습이 보였다. 도대체 누구와 사진을 찍는 건지 궁금해서 다가가 보니, 그날 북토크에 참여했던 셀럽 몇 명들과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구면인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인지도 있는 누군가와는 처음 본 사이임에도 사진을 찍는 B 작가를 보며 처음 본 분들과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그의 변명이 너무나 궁색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그냥 솔직히 말하지. 일개 독자는 유명하지 않아서 혹은 본인의 브랜딩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별로 사진 찍고 싶지 않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다소 냉정하고 또렷하게 조언을 건네던 그의 말이 그 뒤로는 썩 와닿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인스타에 자랑스럽게 찍은 사진을 올려 둔 작가를 언팔했다. 그래! 나 뒤 끝 있는 사람이다. 


글 쓰기를 배우려면 입금부터 하라던 작가 C

첫 책을 출간하기 전, 막막하던 시절에 만난 작가 C가 있다. 나름 글 쓰기로 꽤나 이름을 날리던 분인데 당시에는 나는 출판업계에 종사하지도 않았고, 그저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일개 독자였다. 책을 쓰려고 마음은 있지만 안 쓰던 글이 어느날 갑자기 뚝딱!하고 써지질 않으니 참 답답해 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추천을 믿고 C 작가가 쓴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에게 작은 조언이라도 구하고 싶어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메일을 썼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는 바쁘니 문자로 소통하자며 선뜻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꽤 설레는 마음으로 통화를 했다.


"작가님, 출간을 목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작가님 책을 읽고 작은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블라블라"

"네, 보내주신 기획안과 샘플원고 모두 살펴 봤습니다. 그런데 A도 없고, B도 없고, C도 없고....블라블라"

"아...있는 게 없군요...네. 바쁘실텐데 조언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부분들 꼼꼼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무엇보다 글에 기본기가 없어요. 기본기는 스스로 익히려면 시간이 오래걸립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분들을 위해서 강의를 하고 있어요. 안내 문자 드릴테니 수업을 일단 들어보세요."


그가 보내온 문자에는 수백 만 원 상당의 비용 안내와 강의 커리큘럼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에이씨! 이게 뭐야 다단계도 아니고!! 솔직하게 정말 기분이 더러웠다. 진정성이라고는 1도 안 느껴지는 그의 조언을 괜히 구했다 싶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그의 앞에 붙은 현란한 수식어와 이미지에 현혹되어 그 강의를 듣고 있을 지 걱정도 되었다. 여전히 C 작가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그를 우리 작가님, 우리 작가님 이라고 떠 받드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은 것 같다. 


C 작가는 나에게 기본기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그래도 꿋꿋하게 글을 써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메롱. 그 강의를 듣고 그가 말했던 글의 기본기가 나아질 수는 있었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바랬던 건 정말 까댐이나 세일즈가 아닌 따뜻한 조언이었다. 독자를 좀 진심으로 대해달라. 독자는 작가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단 말이다.



출판사 마케터가 최전선에서 작가와 책을 지켜내는 일을 하는 건 맞지만, 가끔 이렇게 앞과 뒤가 다른 작가들을 마주하면 현타가 온다. A, B, C 작가를 담당하는 출판사 관계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분명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예비 작가가 있다면 분명히 기억하면 좋겠다. 모든 일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출판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결국 순리대로 사람의 마음이 통해야 서로 보듬고 지켜낼 수 있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그냥 우리 작가라고 우리 책이라고 언제까지 마냥 지켜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반대로 마음이 동하면 지키지 말라고 해도 끝까지 작가와 책을 지켜낼 사람들 역시 출판 마케터다. 출판 마케터도 사람이다. 그러니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함께 하면 참 좋겠다.


나는 서울 국제 도서전에 배민 부스에서 받은 '작가' 뱃지를 가방에 달고 다닌다. . 작가는 작가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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