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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 Oct 20. 2023

메이저 출판사 대표님들과의 면접 썰

메이저 출판사로 이직하지 못하는 이유

올여름 즈음에 두 곳의 메이저 출판사 대표님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운 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나를 좋게 봐주던 출판업계 관계자를 통해서 마침 자리가 오픈되어 있던 출판사와 기회가 닿았다. 나름 기대도 걱정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자리를 옮기지 못했다. 왜? 지금부터 옮기지 못한 그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A 출판사는 정확하게는 메이저와 중견 출판사 사이쯤 되는 사이즈에 꽤 긴 역사를 가진 곳이다. 기획보다는 외서의 비중이 높아 보이는 이 출판사는 가지고 있는 책에 비해 마케팅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출판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약 자리를 옮긴다면 내가 세팅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약속한 시간에 출판사로 방문해 대표님과 본부장님이라는 분과 2:1로 약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담당자가 메일로 20~30분 정도 진행될 것이라고 한 것에 비해 면접 분위기는 꽤 화기애애해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서로 궁금한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되어 인터뷰 중간에 나는 딱히 이 자리가 면접 자리라는 것을 까먹을 정도로 매우 편하게 느꼈다. 전반적으로 나도 이 출판사와 해당 포지션에 매력을 느꼈고, 반대로 출판사에서도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느꼈다. 마지막엔 구체적인 R&R과 직책까지 이야기 나눴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고 일어나려는 찰나 본부장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팀장님, 제가 가장 중요한 걸 안 여쭤 봤네요."

"아, 네. 말씀하세요."

"이력서에 연봉이 기재가 안 되어 있던데요. 현재 연봉과 희망 연봉을 알 수 있을까요?"

"현재 저는 블라블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희망 연봉은 블라블라입니다."


순간 깊은 정적이 흘렀고 나는 직감했다. 이곳으로 자리를 옮길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출판업계는 정말 꽤나 많이 박봉이다. 내가 대기업에서 받던 연봉을 20%나 줄이고 이 업계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 마저도 이 출판업계에서는 부담스러운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연봉을 받는 건 아니니 절대 오해하지 않기를. 이 날 나는 메이저 급 출판사 이런 반응을 보고난 뒤 자리를 옮기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출판업계 관계자들이 서로 연봉 정보를 공유해서 만든 엑셀 파일이 있다. 출판업계의 열악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자고 만든 이 파일을 우연히 공유받아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말을 잃었다. 할말하않. 어지간히 책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서 이런 월급 받으면서 일하지 못할 텐데...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으니까. 


작년에 한 메이저 출판사 대표님의 알음알음 요청으로 사적인 자리에서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대표님이 그런 말을 했더랬다. 출판업계는 사람들의 처우부터 개선하지 않으면 출판 업계 사이즈가 절대 커지지 않을 거라고. 그럼에도 그 출판사의 처우도 많이 개선되지 않은 걸 보면 경영하는 입장에서도 쉽게 바꾸기 어려운 일은 맞는 거 같다. 


간간히 채용사이트에 올라오는 공고를 볼 때가 있다. 


신입/경력 1~3년, 연봉 2,600~2,800(협의 가능)


2023년 최저 연봉이 24,728,880원이다. 정말 최저 연봉보다 아주 조금 더 받는 수준에서 사람을 채용하려는 출판사가 아직도 많다. 어떤 업계보다 정말 책을 좋아해서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 하는 이들에게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출판사가 많아지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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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출판사는 그냥 누구나 메이저라고 생각하는 메이저 출판사다. 이곳 역시 친한 선배님이 추천해 주었다. 사전에 실무진에서 요청한 자료를 전달했고, 검토가 끝난 후 대표님과의 인터뷰 자리가 마련되었다. 사실, B 출판사에서 내가 해보고 싶은 건 업무는 너무나 명확했다. 하지만 그 소신 때문에 역시 B 출판사로 자리를 옮기지 못했다. 


"팀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앞으로의 출판 마케팅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독자와의 스킨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앞으로 출판사의 성패를 가를 거라고 확신합니다."

"스킨십에 대해서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코로나 시국 이전만 하더라도 출판사 중심의 일방적인 마케팅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는데요, 코로나를 거치면서 빠르게 독자가 주도하는 출판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B 출판사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면 과감하게 오프라인 중심으로 독자와의 접점을 확대하고 그곳에서부터 컨텐츠를 생산해 나가는 게... 블라블라..."

"그래도 마케팅은 온라인과 SNS 중심이 대세이고 효과적이지 않나요?"

"지금 당장의 효과만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마케팅은 현장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책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오프라인에서 독자를 직접 만나는 것이 앞으로 출판마케팅의 트렌드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자가 더 이상 과거처럼 수동적인 독자로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저자와 출판사와 소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B 출판사는 온라인 중심의 마케팅 활동을 전개해 주길 원했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당장의 성과가 중요할 수 있으니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오프라인 중심으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앞도적인 출판 생태계 구축을 원했다. 온라인 마케팅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시작해 온라인에서 끝나는 컨텐츠가 아닌 오프라인에서 시작해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를 커버하는 컨텐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생각하는 마케팅 방향성이 크게 달라서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온라인/SNS 중심으로 마케팅 활동 하겠다고 하고 살짝 MSG 쳐서 그럴싸하게 말하면 자리를 옮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것을 굳이 애써가며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출판 마케터로서 최우선으로 지향하는 것은 독자와의 '스킨십'이다. 18년 동안 마케팅을 해오면서 그리했던 것처럼 결국 모든 문제는 현장에 있고, 그 문제에 대한 답 역시도 현장에 있다고 믿는다. 특히, 책이라는 물성과 텍스트를 소비하는 독자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온라인에서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같은 눈높이에서 진정서 있게 소통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출판사가 결국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독자는 결국 그런 출판사를 원하고 알아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만나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면접 보던 날 자주 가는 파주출판단지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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