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어떻게 살 것인가
봄이 와서 그런 것은 아니다. 요즘 내 마음이 요란한 것은. 늘 생각하지만 유독 요즘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떻게 살 것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 노래 가사 말처럼 ‘다 그런 게 아니겠니’라고 차치하기엔 우리의 삶은 너무 괴이한 것을.
나만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그저께 잠자리에 들기 전 첫째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왜 살아있다고 표현하는 걸까? 나는 그게 너무 궁금하고 너무 신기해.” 아이의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에 나는 별빛을 예로 들어 현문에 우답을 건넸다. 우리가 밤하늘에 보는 별빛은 이미 실존하지 않는 별일 수 있는데 우리는 그 빛을 보고 별이라고 말한다고.
여기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다. <내일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제갈건 작가다. 나는 꽤 오래전에 풍문을 통해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의 책이 나온다는 이야기에 당연히 거칠게 살아온 족적에 대한 에세이일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그의 책이 ‘논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꽤 큰 인지부조화를 느꼈다.
<내일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제갈건과 논어, 어떤 맥락도 없어 보이는 이 두 단어의 간극에 대한 증명의 시간이다. 지역을 평정한 일진에서 알콜중독자 그리고 지금은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논어를 학문하는 젊은 학자이자 서예가. 그런 그의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다.
'지과필개(知過必改)'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아주 오래전 첫 서예대회를 나갈 때 선생님이 나에게 지정해준 터라 평생을 잊은 적도 까먹은 적도 없는 사자성어다. “자신의 허물을 알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라는 뜻인데, 제갈 건 작가가 이에 딱 맞는 인물이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책 중반까지는 일말의 의심을 가지고 읽었다. ‘지난 시절 그 과오를 정말 다 버린 것이 맞을까’하는 그런 의심. 회개하고 반성했다 하고 결국 되돌아가는 인간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이런 의심을 지워내고 응원하게 된다. 계속 그렇게 학문하여 깨달은 것들을 세상에 넘겨주기를 바라게 된다.
책 속에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를 보고 있다보면, 작가가 부모로부터 큰 사랑과 변함없는 지지를 받아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그런 견고한 마음이 있었기에 거센 방황 뒤에도 작가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제갈건 작가에게 어머니가 공자요 예수요 부처님이다. 나도 나의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
그런 책이다. 논어가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라면, 이 책은 공자의 이야기를 제갈건 작가가 기록한 2024년의 논어다. 고리타분하지 않고 허들이 높지 않아 논어 입문용으로 좋은 책이지 싶다. 요즘 무슨 트렌드다시피하게 어설프게 출간한 잠언집보다 훨씬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자신이 좀 요란하다고 느낀다면,
이 책이 조금 덜 요란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 인(仁)이란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은 늘 더불어 사는 곳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인(仁)은 두(二) 사람(人)이다. 수학에서 ‘1+1’은 2가 되지만, 철학에서 ‘1+1’이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