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큐멘터리
2020년 5월 18일 제주에 사는 한 가족을 만났다. 당시 나는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놀고 있던 백수였다. 놀 때는 역시 제대로 놀아야 하므로 우리는 제주도에 매우 자주 가서 머물렀다. 사촌 누나 집이 있었고, 코시국이라 항공권이 1만 원, 심지어 5천 원도 안 했기 때문에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놀겠다는 의지는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주었다. 그 인연이 효영작가와 그 가족이다.
제주에 자주 내려갔지만 외곽에 사는 누나 집에서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수렵 활동이 전부였다. 삼동을 따먹고, 꽃꿀을 빨아먹고, 민트잎을 따서 차를 끓이고, 바닷가에서 보말을 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수렵 활동에 진심이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수렵 활동에 지쳐갈 무렵! 누나가 말했다. “산딸기 따러 갈까? 오케이 알았어. 잠깐만!” 누나는 부랴부랴 어디로 전화를 걸었고 지금 바로 출발하면 된다고 했다. “제주에 입도해서 사는 진짜 멋진 가족인데, 너네들도 좋아할 거라고. 그 집 앞에 산딸기가 엄청 많다고. 우리와 같은 나이의 남매도 있다고.” 그날 우리는 효영작가가 내어준 앞마당에서 비를 맞으며 엄청나게 많은 산딸기를 땄다. 그 날이 2020년 5월 18일이고, 그날이 효영작가를 처음 만난 날이다.
<닭큐멘터리>는 사실 효영작가와 필 그리고 하늬, 하늘 두 아이의 이야기다. 닭은 그저 거들 뿐. 짧으면 짧고 길면 길지도 모르는 5년 동안 효영 작가네 가족과 우리 가족은 계속 교류하며 지냈다. 그 사이에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효영 작가는 정말 작가가 되었고, 이 책에 등장하는 슈퍼만능울트라갭숑짱 필은 정말 자타공인 만렙(못 하는 게 없는 사람이다. 내가 정말 좋아함 갑분 고백.)이 되었다. 하늘이는 여전히 바닷가에서 삽 한 자루 들고 땅을 파고 있고(어른 키 만큼 파 버림) 하늬는 책에도 등장하는 닭들을 품에 꼭 껴안고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 <닭큐멘터리>를 읽으면서 때로는 <효큐멘터리> <필큐멘터리><늘큐멘터리> <늬큐멘터리>를 떠올렸다. 일상이 다큐고 일상이 이야기인 효영 작가와 그 가족을 애정한다. 효영 작가가 이 책을 쓴 이유가 하나였다면, 나 역시도 이 책을 읽은 이유가 하나다. 나는 이 가족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마침, 그것이 너무 참신한 닭이라는 주제고.
어제 배송 온 이 책을 자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 단박에 읽었다. 개인적인 인연이 투영되어 너무 재미있게 읽기도 했지만, 그 인연을 거두고 객관적으로 읽어봐도 너무 재미있는 글감과 이야기다. 나의 책친구들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개인적인 바람은 이 책에 등장하는 효영작가의 남편 ‘필’의 이야기도 언젠가 책으로 꼭 나왔으면 좋겠다. 양봉도 하니까…<봉큐멘터리>로 출간해서, 그 집 앞마당에서 부부 합동 북토크 하면 어떨까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암튼, 효영 작가님은 다음 작품 얼른 준비해주시고요.
이 책을 나의 책친구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다.
모처럼 책을 읽고 기분 좋은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