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심리상담을 받은 횟수가 두 자릿수에 육박하자, 상담사는 이번 심리상담을 통해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중간점검을 해보자고 했다.
심리상담을 받기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나는 내 감정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길 만한 사건들,
존경하지만 대하기 어려운 교수님께 보내야 할 카카오톡 인사에 실수를 하는 것과 같은 자질구레한 사건들에 대하여 나는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는 게 밝혀진 것 같이 느낄 때가 많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나 자신은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그 어떤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단순한 실수라 하더라도 나는 크게 당황하고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새기며, 나의 실수로 인해 그동안 내가 쌓아온 평판이라던지 실적이 모두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가끔은 내 삶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예전이라면,
이런 감정적 동요로 인해 또 다른 실수를 해서 더욱 자책감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경우가 빈번했지만, 요즘은 최초로 나의 실수를 자각한 순간부터 시작되는 감정적 동요에 침잠하여 휩쓸리기보다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자의 시점에서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미지냐면,
내가 사는 집에 불이 나긴 했지만, 그 불이 어디에서 났는지, 왜 났는지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마지막에는 받아들인다.
아, 내가 이런 사소한 실수에도 밑도 끝도 없이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경향이 있네.
그렇게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다음은 조금 수월해진다. 예전처럼 또 다른 실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차가워진 머리로 이 실수를 어떻게 만회할지 궁리해 보는 것이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적절한가’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적절한가’하고.
물론 감정적 동요를 야기하는 모든 일들에 이렇게 잘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나는 때때로 내 인생이 끝난 것 같은 바닥을 알 수 없는 우울감에 빠지기도 하고, 또 너무나 우울한 나머지 8~9시간의 의미 없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현실에서 도피하곤 한다.
그래도 가끔은 내가 이렇게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그리고 아주 자그마한 싹을 틔운 나의 이런 모습은 오랫동안 내가 갖고 싶었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
나는 내친김에 심리상담을 통해서 내가 얻고 싶은 것도 조심스레 피력했다.
'오랜 기간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를 힘들게 했던 왕따, 가정폭력의 기억을 깔끔하게 잘 정리해서 상자에 넣는 것‘이라고.
다시 그 기억들이 제 마음대로 함부로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그러자 나의 상담사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의 목표는 과거의 기억을 봉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들을 현재의 시점에서 제대로 바라보고, 현재의 나에게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라고.
최종 목표는 지금 나의 존재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그 얘기를 듣자, 나는 이 잔인하고 처절한 글쓰기를 통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다.
지금 내가,
모든 것을 때려치고 도망치고 싶은 내 자신을 꾸역꾸역 달래 가며 실타래처럼 엮어가고 있는 이 글쓰기는,
40년간 케케 묵혀 두었던 비밀을 처음으로 외쳐보는 ‘대나무 숲’이고, 나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사람들에 대한 ‘고발장’이며 그리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라는 것을.
그래서 문득 떠오른 고통스러운 기억에 몸부림 치며 내 인생의 가해자들에 대한 폭로전이 되다가도, 때로는 큰 마음먹고 산 비싼 커피 한 잔에 용기를 얻어 찬찬히 과거의 기억들을 분석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때 그 고마웠던 친구들이 불현듯 떠올라 고마움과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 것 같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조금씩 좋아지고는 있지만, 나는 아직도 ‘부모’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가빠오고 눈물이 난다. 나를 질식시킬 것 같은 이 거대한 산과 같은 기억이 나를 짓누르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우공이 산을 옮기는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산을 파내고 그 산을 정면으로 마주해서 현재의 나를 단단하게 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