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근원
나 자신을 보다 더 잘 알기 위하여,
심리상담의 과정에서 일주일 동안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감정을 단어로 정리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하루에 느끼는 여러 감정 중 가장 강렬했던 감정은 무엇이고, 그 감정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육하원칙에 따라 정리해야 하는 숙제를 제출하면서 문득 일주일 동안 가장 강렬한 분노를 느꼈던 순간을 떠올리자, 과거에도 나는 유사한 상황에서 자주 분노한 적이 있음을 깨달았다.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MBTI 검사에 따르면, 나의 MBTI는 ‘ESTJ’다.
외향적, 현실적, 이성적, 계획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나는 ’계획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사람인 것 같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공부에 관해서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잘 지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각종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부터 수능시험, 그리고 국가고시에 이르기까지 나는 ‘좋은 성적’, ’시험 합격‘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위해 결전의 그날까지 공부해야 하는 내용들을 총망라해서 각 날짜별로 그날그날 해야 하는 학습량을 정하고 꼼꼼하게 완수 여부를 기록했다.
이런 방법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득한 것이다.
일주일에 2~3회 경찰이 출동할 정도의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집에서 나의 학습 태도와 학습량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지.
좋은 성적표와 시험합격증만 가져오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였으니 더더욱.
아주 어릴 때부터 살아남을 길은 공부밖에 없었던 나는, 필사적으로 한정된 자원과 시간을 활용해서 ’어떻게 하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다 ‘계획‘이라는 방법을 찾았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제일 먼저 구매하는 것도 한 해의 일정을 꼼꼼하게 기록할 수 있는 ’플래너‘였다.
2~3일에 한 번씩 집이 뒤집히는 난리가 나도, 내 학습계획은 무너지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계획적인 나는 이미 루틴처럼 일어나는 그런 상황까지 고려해 계획한 학습량을 완수할 수 있는 방안까지 마련해 놓았으니까.
9년간 왕따를 당했을지언정 사실 집보다 안전한 곳은 학교였다. 그곳에서는 적어도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맞거나, 누군가를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또는 물건이 부서지는 피해는 당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교실보다 더 좋았던 곳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소장도서도 몇 백 권에 불과한 학교의 낡아빠진 도서관이었다. 유명한 왕따라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도 없어서, 사실 학교에서 나는 공부밖에 할 일이 없기도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합계 12년을 개근하면서, 나는 최대한 오랫동안 합법적으로 학교에 머물며 계획된 학습량을 지켜나갔다.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틀어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집에서 탈출하기 전까지, 부모의 보호를 받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시간들은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했다.
집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동요하게 되는 순간은 가정폭력 속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 그리고 협의는 물론 사전통보도 없이 ABJ에 의해 시골 깡촌에 있는 할머니 집이나, 다른 지방에 있는 친척집에 억지로 끌려갈 때였다. 나에게는 물론 엄마에게도 사전 협의나 통보 없이 친가 쪽 친척들이 우리 집에 갑작스레 방문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그것은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집에서 공부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으니 학교에 가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러나 집을 떠나 다른 지역에 있는 친척집으로 끌려간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동하는 차에 타기 전, 소극적이나마 싫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 심정적으로 가기 싫다는 것은 차치하고 ‘중간고사가 3일밖에 안 남았다’던지 ‘대학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논술고사가 바로 다음 주다’라는 등의 정당한 이유를 대고는 했다- ABJ는 ’오늘 갔다가 오늘 올 거다 ‘, ’금방 올 건데 까탈스럽게 굴지 마 ‘, ’남들 다하는 공부인데 너 혼자만 유별나게 군다‘라는 말로 묵살하고는 했다. 그렇게 도착한 할머니 집이나 친척 집에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ABJ는 만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었고 당일치기 일정이라고 내뱉은 본인의 말은 기억도 하지 못했다.
아직 ABJ에게 기대라는 것이 조금 남아 있었을 무렵에는, 집에 가자며 울고 왜 약속을 안 지키냐며 화도 내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윽박’과 피부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명백한 ‘분노’ - ABJ 뿐만 아니라 거기에 있는 모든 친척들로부터의 - 그리고 곧 후려 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였기 때문에 나는 나중에는 그냥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끌려갔다. 어그러진 계획을 어떻게 만회할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계산하며.
만취한 ABJ는 친척들 앞에서, 유달리 뛰어난 내 학교성적과 학업성취들을 두서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자랑했고 그것이 모두 자신의 헌신적인 희생에 의한 것인 마냥, - 지금 생각하면 ‘폭삭 속았수다’에 나오는 ‘양관식’ 캐릭터와 같이 본인이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성애가 충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듯싶다 - 의기양양해했다.
나의 뛰어난 학업성적이 자랑스러웠다면, 내가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김치볶은밥 같은 간단한 요리도 가능했던 나이기에, 중요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나를 그냥 집에 혼자 두고 갔다면 오히려 나는 ‘아, 그래도 ABJ가 공부하라고 시간을 주는구나’라며 감사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어떻게 공부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고, 관심을 가질 필요도 느끼지 못한 ABJ에게 자신의 체면을 살려줄 자식으로 이용당하면서, 그리고 나의 ‘생존’과 직결되는 계획이 틀어지는 경험이 쌓이면서 ‘분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 깊은 곳에서 점점 쌓여갔다.
반복된 경험은 그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강화한다.
기존 계획에 없던, 내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이벤트’에 대하여 갈수록 분노하는 마음이 강해졌다.
심리상담을 받기 전까지 나는 이런 감정적인 반응에 대하여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내가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네’라고 생각했을 뿐.
나는 왜 ’계획이 어긋나는 상황‘에 대하여 ’분노‘하는가.
단순히 ABJ에 대한 분노였다고 한다면 집을 탈출한 지금까지도 비슷한 상황에 분노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 감정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계획이 틀어지는 것에 대한 ’분노‘는 ‘ABJ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이 나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한다는 생각’, 그리고 ‘나의 생존과 직결되는 계획이 틀어짐으로써 나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생각으로 인한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ABJ는 나를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로 여겼기 때문에, 나의 계획은 물론 나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아 사전 협의나 통보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즉흥적인 일정에 나를 끌고 감으로써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아, 지금 생각난 건데,
‘가정에 충실한’,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위해서 또랑(개울가)에도 빈번하게 즉흥적으로 끌고 간 적도 있구나. 정말 아이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더라면, 우리 삼 남매의 성장 발달에 맞추어 개울가에서 수영장으로, 가끔은 영화관이나 박물관 등 - 내가 자란 지방에는 무료 또는 저가로 입장할 수 있는 곳이 많아서 개울가에 가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혔다 - 에도 데려갔을 법한데 우리 가족의 여가는 늘 개울가였다.
그것도 해수욕장처럼 물놀이를 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 아니라 근처에 ‘입수금지’ 표지판이 세워진 시골의 그런 물가. 거기서도 ABJ가 우리 삼 남매와 놀아준 적은 없었고 ABJ는 그저 거기에 우리를 데려다 놓은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낚시와 음주를 즐겼다. 엄마가 바리바리 싸 온 먹거리들을 집어먹으면서.
넘어져서 여기저기 멍들기 일쑤였던 울퉁불퉁한 돌들이 잔뜩 깔린 개울가, 매번 화장실을 찾느라 쩔쩔매던 시간, 물에 들어갔다 나올 때면 미끄덩거리는 몸을 씻을 곳이 없어 난처해하던 순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개울에 가는 것을 싫어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비록 여름한정 이벤트였을지라도. 그래서 지금도 나는 개울가는 물론 해수욕장에 가는 것도 싫어한다.
아무런 즐거움도 없는, 오히려 살얼음판 같았던 개울가에서, 그리고 친척집에서 멍하니 보내는 시간들이 얼마나 아까웠던가.
차라리 그 시간에 학교에 있었다면 시험공부라도 했을 텐데 -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가 공부가 엄청 좋은 공부벌레여서가 아니라 공부만이 유일한 생존수단이던 사람이었기에 이런 생각을 했다 - 이 낭비하는 시간들을 어떻게 메꿀 수 있을지, 메꾸지 못한다면 이번 시험 성적은 어떻게 나올지, 성적이 떨어진다면 내 부모가 그리고 다른 애들이 나를 얼마나 괴롭힐지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계획에 어긋나는 상황에 대한 분노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게 되자, 상담사는 내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지금까지 좋은 성적이나 시험합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계획을 세우고 지키는 방법‘이 유효한 선택이자 나를 지키는 적절한 방법이었을거에요.
그러나 ‘내가 계획을 세우고 지켰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한 것인지‘ 아니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계획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인지’ 구별해야 할 것 같아요
아, 시간이 흐를 수록 모든 것은 변한다.
나 조차도.
과거에 유효하고 적절했던 방법이 현재에도, 미래에도 유효하고 적절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의 나에게도, 미래의 나에게도.
계획에 집착하고, 계획이 틀어지면 분노하는 현재의 나에게 그저 계획만 고집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그리고 집을 떠나 어느정도의 안전을 확보한 나에게 아직도 유효한가.
어차피 현실적으로 계획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목표달성을 위한 길은 많이 있다.
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적절하고 유효한 방법이 ‘계획’만이 유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다시 유효하고 적절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여야 할 시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