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나의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소리를 질러야 하나. 통증이 온몸을 가득 채우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왜 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 잘 참는 아이였다. 아니 잘 참아야만 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여기저기 부딪히고 찢어지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 토요일은 마루 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책상과 걸상을 교실 뒤로 몰아두고 선생님이 탁탁 마룻바닥에 왁스를 찍어 놓으면 우리는 걸레를 바닥에 대고 신나게 밀어나갔다. 선생님의 칭찬과 인정을 먹고살았던 나는 그날도 가장 앞장서 걸레를 밀고 나갔다.
미끌,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미끄러졌다. 오른쪽 팔꿈치 아래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났다. 맙소사 엄청나게 큰 마루 가시가 내 팔에 박혀버렸다. 어쩌지? 내 머릿속엔 이미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 팔을 보고 있었다.
어머 너 그게 뭐니 그렇게 큰 게 박혀버렸네. 병원에 가서 빼야겠다. 지금 집에 가서 꼭 병원에 가 보렴.
이제와 생각하면 그 선생님은 왜 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청소를 하지 않고 집에 간다는 것이 마냥 좋아 가방을 들고 신나게 신발주머니를 돌리며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로 다가갈수록 나의 발걸음은 느려졌다. 슬슬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토요일인 오늘은 아버지가 일찍 퇴근해 있을 것이다. 아참, 오늘 오후에는 보건직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시립 의료원에 예방주사를 맞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 앞 놀이터에서 어떻게 하면 아버지에게 혼나지 않을까를 고민했다.
한참을 서성대고 있자니 5학년이던 형이 집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 인사를 하고 방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엄마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추궁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엄마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벌써 집 앞에 나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기회를 노린다. 의사 선생님과 나와 둘 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오면 팔의 가시를 봐 달라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간염 예방접종을 위해 공보의 아저씨와 둘만 앉아있게 되었고 나는 팔의 가시를 보여주며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해 달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한참 동안 내 팔을 쳐다보고 가시의 길이를 손으로 만진 다음 어디론가 나갔다. 그리고 바깥에서 희미하게 공보의 아저씨와 아버지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억나는 한 마디는
‘과장님 어떻게 애가 혼날까 봐
무서워서 벌벌 떨어요.’라는 말이었다.
아저씨가 미워졌다.
배신자.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돌아온 공보의 아저씨는 내 팔에 간염 예방주사를 놓았다. 아픈 주사야. 잘 참을 수 있겠지. 야 너 진짜 잘 참는구나. 그리고 외과로 가서 다른 아저씨가 내 팔에 있는 가시를 뽑아 주었다. 자, 아플 수도 있어 옳지 잘 참는구나.
나는 가시를 뽑고 다섯 바늘을 꿰매고 파상풍 주사를 맞는 동안 단 한 번의 비명도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들은 나에게 잘 참는다고 칭찬했고 나는 그렇게 고통을 잘 참는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는 아버지가 또 어떻게 화를 낼지 엄마와 나에게 또 소리를 지르지나 않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에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참으로 이상하지. 어린 시절의 기억일 뿐인데. 또다시 응급실에서 다른 곳은 괜찮나요?라는 질문에 네 괜찮습니다. 선생님. 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어. 나 지금 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픈데. 무릎은 멍이 들었나? 왜 이렇게 아프지? 반대쪽 허벅지는 왜 이렇게 저리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나는 타고 있는 휠체어에 실려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엑스레이를 찍으면서도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지만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나는 잘 참는 아이였으니깐.
엑스레이를 찍고 돌아와 배정받은 침대에 걸터 앉아 있으니 조금 전 들어왔던 꼬마 아이가 나의 다리를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심한 척 듣고 있으니 이 아이도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다. 맹장염으로 아픈 배를 참다가 복막염이 되어서야 응급실에 실려 온 것이었다. 아. 이 아이는 왜 잘참는 아이가 되었을까.
"아저씨, 발목이 왜 그래요? 안아파요?"
"어, 아파. 무지 아파. 너도 배 아프지? 아프면 무조건 아프다고 해야 하는 거란다."
나는 마치 어린 시절의 나라도 만난 것 처럼 그 아이에게 당부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응급실에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곳 병원에도 스트리트 스마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 참지마라. 무조건 비명을 질러야 한다.
의사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정도 다쳤는데 실신하지 않은 것이 용하다고 했다. 나는 실신은커녕 사고가 나자마자 비명을 몇 번 지른 것 이외에 응급실에서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이후에 벌어질 많은 어려움의 원인이 되었다.
둘째, 의심해라.
이는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매우 중요한 체험적 지식이라 생각된다. 나의 사고 소식을 듣고 뛰어 오는 사람은 두 가지 부류이다. 하나는 나의 가족, 지인들이고 다른 하나는 이 사고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람이다.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게 속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상대방 보험사는 연락이 와서 보험금 지급을 위해 당신이 얼마나 다쳤는지를 알아야 하니 의료정보 제공에 동의한다는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직접 보험 청구를 해야 하는 불편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잠시 후 병원에 도착한 사람은 내가 이 병원 응급실로 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마포서에서 피의자 진술이 끝나자마자 음료수를 손에 쥐고 도착한 가해자였다.
"아니 왜 오셨어요. 근데 왜 안 멈춘 거에요?"
"제가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고였기에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 볼 수 조차 없었다. 내가 그를 외면하자 그는 씨씨티비를 봤더니 파란불이더라구요.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보험청구를 직접해야 하는 것은 뭐고, 횡단보도 위에서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파란불은 뭐지?
이게 무슨 소리람. 더 이상 내가 상대하기가 버거워졌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는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랐다.
우주임.
그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려다 늘 귀찮은 일로만 그를 찾는 것 같아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기의 연락처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본 후에 나에게 대안이 없음을, 내가 지금 염치를 챙길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