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임.

by 진퇴양난
우주임.

그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려다 늘 귀찮은 일로만 그를 찾는 것 같아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기의 연락처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본 후에 나에게 대안이 없음을, 내가 지금 염치를 챙길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전화는 끊어졌다. 또 어디선가 바쁘게 돌아다니며 누군가를 구해주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럴 때 그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거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는 그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이런 이야기하기 염치없는데, 나 교통사고 났어. 지금 병원이야.'

그에게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남기는 것만으로도 한결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우주임.

군 시절 알게 된 군대 동기의 절친. 군대 동기도 아니고 군대 동기의 절친과 십 년 넘게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우연히 알게 되어 형, 동생을 하며 벌써 15년 이상 가까이 지내고 있다.

이 친구야 말로 앞서 말한 스트리트 스마트의 화신이다. 그를 만나거나 통화를 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친절함과 다양한 지식에 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연유로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일을 봐주느라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이 친구는 자동차, 오토바이, 보험, 렌터카 등 바퀴와 엔진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기계적 상식과 그것을 운용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크고 작은 행정적인 업무, 사고처리까지 모든 것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실무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의 탁월함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고교시절 이야기부터 들어 보는 것이 좋겠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우리의 우주임은 그 나이의 고등학생이 으레 그러한 것처럼 오토바이에 미쳐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범상치 않았는데 친구들이 고작 오십씨씨 스쿠터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 그는 피나는 아르바이트를 해 리터 급의 이탈리아 수제 바이크를 끌고 다녔다.


그의 요란한 등교는 머지않아 학생부장 선생에게 적발되었는데 우주임의 탁월함은 이미 학교에 널리 알려졌던 터라 학생부에서는 우주임의 압수한 오토바이를 어디에 보관할 것인가로 회의가 열렸고 회의 결과는 당시 유일하게 보안장치가 가동 중이던 체육관의 이순신 동상 뒤 편에 보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아. 이순신과 오토바이라니.

그 기괴한 조합은 고등학생 우주임을 그 일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물로 만들었고 우주임은 위대한 오토바이 탈환 계획을 세우게 된다. 당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한 피씨방에서 우주임은 영어 사전을 찾아가며 보안 시스템의 도면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당시 보안 시스템의 보안이 허술했는지 우주임은 일주일 간의 시뮬레이션 끝에 안전하게 보안 장치들을 해체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나기 전 다시 보안 장치를 조립해 가동해 두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이 완전범죄는 그다음 날 다시 학생부 선생들의 회의를 소집하게 했다. 이번 회의는 우주임의 보관 중이던 오토바이가 절도를 당했다. 경찰에 도난 신고를 하는 것은 학교에 분란을 일으킬 수 있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으니 학생부 선생들이 돈을 모아 중고 오토바이 값의 절반 정도인 오백만 원을 우주임에게 주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 시각, 멀찍이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유유히 등교를 마친 후 책상에 엎드려 전날의 피곤함을 풀고 있었던 우리의 우주임은 갑작스러운 학생부의 호출을 받고 걸렸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모아준 두둑한 돈 봉투를 보자 우주임은 상황을 순식간에 파악했고 잠시 그 돈을 받을까도 생각했지만 그의 성정 중에 가장 탁월한 점이라 할 수 있는 정직과 소심함이 차마 그 봉투를 받아 들지 못하게 했다. 그는 선생들에게 어제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학생과장의 분노의 몽둥이질로 그 사건은 끝이 났으며 이 일은 아직까지도 그 일대의 고등학생들에게 전설로 남아있다.



네 형,
어쩐 일이세요?


예의 그 상냥하고 과도하게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우주임은 병원으로 지금 당장 출발할 것이며 어떤 사인도 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급히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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