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임이 한참을 원무과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30분 후 나는 리모델링이 막 끝나 아직 간호사 스테이션 조차 설치되지 않은 병동의 한 병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주임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너무도 궁금했지만 발목의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들었다.
병원에서의 첫째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 이곳이 아직 공사가 덜 끝난 곳이긴 하구나. 새벽부터 물건을 옮기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5시 30분.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난 것이 얼마만이었나.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아침 이 시간에 일어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 이제는 나조차 믿기지 않는다.
그 시절 나는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하는 신학생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 오랜 시간 동안 신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참으로 간사한 것이, 몸을 다치고 나니 신에 대한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부활 전 금요일. 예수의 수난을 기억하는 금요일이다. 신학교에서는 오늘 아침 금식을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데 때마침 밥을 가져다주었다.
한 숟갈을 들자마자 나는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단식에 십 년 만에 동참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내 입맛이 없는 것도, 약이 독한 것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병원 오고 있어?
아침 안 먹었지? 사 와서 여기서 같이 먹자.’
예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경건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부기가 빠져야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어제의 말씀과는 달리 오늘 오후 세시에 수술을 하겠다는 말씀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간호사 선생님이 간단한 수술 전 검사와 문진을 하러 들어왔다. 오후에 수술을 해야 하니 지금부터 금식이며 물도 마셔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침 드셨죠?라는 말과 함께.
아. 인간이 이렇게 간사하다.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아침식사를 그리워하게 되다니. 때마침 아내가 맛있는 냄새와 함께 병실로 들어왔다. 아침부터 돈가스를 사 오다니. 주님 수난 성 금요일 아침에 돼지고기 튀김이라니. 불경한 이교도 같으니라고. 중세시대였으면 장작불에 올라갔을 것이다. 괜히 영문도 모르는 아내에게 짜증을 낸 다음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신부님, 어제 교통사고가 나서 오후 3시에 수술합니다. 기도 중에 기억해 주세요.’
이럴 때에만 신과 신부 친구들을 찾는 나에게 자비로우신 친구 신부님들은 온갖 따뜻한 말과 기도로 나를 위로했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가 세상을 떠난 시간, 오후 세시가 되었다. 막상 수술실로 갈 때가 되자 온갖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마취가 잘 안 되는 체질이면 어떻게 하지? 몸은 마취가 되어도 각성상태로 수술을 받아서 트라우마가 생기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내가 술을 잘 먹는 체질이니 마취도 잘 안 듣지 않을까? 마취 깰 때 욕을 하면서 깨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내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마취 중에 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을 하며 수술실에 도착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아내는 내 손을 잡고 수술실 입구까지 와 주었다. 거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장기 이식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는 의학드라마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야, 안 죽어. 오버하지 마.”
“어, 너 섭섭해할까 봐 오버 해 본거야. 안녕.”
그럼 그렇지. 네가 그럴 리가 없지. 수술대 위에 누웠다.
“환자분 성함은 진퇴양난 씨 맞으시죠?”
“네”
“오늘 수술받으시는 발은 어느 쪽 발목이시죠?”
“오른쪽이요.”
“오늘 8시부터 물을 포함해서 금식하셨죠?”
“네. 아니 약을 먹기 위해 한 모금 마셨습니다.”
“흔들리는 치아나 임플란트 하신 치아가 있나요?”
“없습니다.”
“마취 시작하겠습니다.”
왼쪽 팔에 무언가가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몸 가운데를 거쳐 오른쪽, 다음에는 코에 무엇인가 확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진퇴양난님?”
“수술 끝났나요?
제가 뭐 이상한 소리를 하지는 않았나요?”
“네 그런 거 없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해요.”
아.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마취에서 깨자마자 첫 질문이 마취 중에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라니.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은 도대체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병실로 돌아오니 시간은 두 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회복과 통증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통증이 심할 때는 무통주사의 버튼을 누르라고 말해주었다.
군 생활, 국군병원에서 근무했던 나는 이 주사의 성분에 대해 알고 있다.
아직 수술 후의 진통제 기운이 남아있어서 아직은 통증이 없었지만 나는 주사의 버튼을 꾹 하고 눌렀다.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한밤중이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병실에 혼자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30분에 한 번
누를 수 있는 이 주사가 있다.
이 주사를 누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 주사를 맞으며 인터넷으로 바티칸의 십자가 경배 예절 중계방송을 봤다. 아침의 돈가스보다 조금 더 불경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판단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겨우 잠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아편전쟁 때 영국 놈들은 진짜 나빴다. 성 금요일에 돈가스를 먹는 자 영원한 지옥불에 빠질 지어다, 등의 헛소리를 하다 곧 다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