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수업 걱정과 전원

by 진퇴양난


내가 입원했던 날, 우주임이 어떻게 공사도 덜 끝난 병실을 구하게 되었는지 듣게 되었다.


그날은 원무과의 수습직원이 데스크를 지키고 있었고 우주임은 그에게 내가 단독 병실을 써야 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설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직원보다 더 상세한 내용들을 설명해 주면서 – 그 직원이 결정할 수 없으니 당직 책임자에게 연락할 것과 병원 규정들을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 그날의 당직자와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개인 병실을 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규정의 허점들을 꿰뚫고 있는 우주임의 도움을 받더라도 마냥 개인 병실을 쓸 수는 없었다. 다음날 출근한 원무부장은 전날 담당이었던 수습직원과 당직책임자에게 왜 자신이 퇴원한 뒤에 들어온 환자가 개인병실을 승인받았는지에 대해 추궁했다. 그리고 병실로 올라온 원무부장은 나에게 자신의 사정을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어제 들어오실 때 저희 측에서 승인해 드린 것은 맞지만 원래 비상 병실은 이틀 정도밖에 쓸 수 없어요.”

“하지만 저는 온라인 비대면 강의도 해야 하고 사실 제가 코도 심하게 골아서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될 텐데요.”

“아... 코를 고신다고요. 그래도 저희는 최대로 편의를 봐 드려도 5일 이상은 봐 드릴 수 없습니다.”




아, 다인실에서 어떻게 강의를 할 수 있지? 진통제의 강력한 효과로 통증이 없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그때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강의를 할 수 있는 조용한 병실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또 우주임에게 전화를 걸었고 우주임은 5일이면 충분하다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나름 괜찮은 실천적 판단력과 사회생활의 상식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교통사고 한 번으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쓸모없는 지식처럼 느껴졌다. 그의 말은 큰 병원의 상급병실에서 오래 머물게 되면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자동차 보험에서 청구를 승인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5일 정도가 한계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주임이 찾아 둔 대안은 수술 후 경과를 보고 이동이 가능해지면 집 근처의 정형외과 의원의 입원실로 옮기자는 것이다. 개인 병원의 입원실은 상급병실이라 하더라도 큰 병원의 일반 병실보다 저렴하니 보험사에서도 불만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집 근처에 그런 병원을 찾아 원무과에 전화를 해 두었다는 말과 함께.


나는 강의를 하는 것뿐 아니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이기도 하다. 해야 하는 강의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내가 들어야 하는 강의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듣고 있는 과목의 교수님들께 메일과 문자를 보냈다. 교수님들은 수업보다는 나의 건강을 걱정해 주셨고 때 마침 코로나로 인해 이번 학기의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될 계획이니 가능하다면 병실에서 들어서 휴학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 보자는 말씀을 해 주셨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


수술 부위의 통증은 진통제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리가 너무 아팠고 의사 선생님께 통증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씀만 해 주셨다. 그렇게 5일이 지나갔고 나는 집 근처의 정형외과 의원으로 전원을 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사인할 것과 신청할 것이 많았다. 진단서와 의무기록들을 복사하고 전원에 대한 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라는 서명을 해야 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내가 수술을 마치고 아직 정신을 차리기 전에 아내에게 비급여 주사에 대한 사인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안 그래도 건강한데 20만 원짜리 영양주사를 3대나 맞았던 것이다.


아. 이렇게 또 하나 배우게 되는구나.
잠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곳이었구나.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엠뷸런스 기사님이 도착했다. 나는 병원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엠뷸런스를 타고 집 근처 병원으로 이동했다. 엠뷸런스를 타기 위해 나간 병원 입구는 낯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병원 입구를 통과하기 위해 열화상 카메라를 통과하고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진료시간이 끝난 저녁 시간에 병원 응급실로 들어왔으니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코로나를 다시 실감했다.


병원 입구를 나서자 눈부신 햇살을 마주했다. 말 그대로 눈부신 봄날의 햇살이었다. 개강 연기와 비대면 수업기간 중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창문을 통해 바라본 봄볕이 아니라 직접 봄 햇살을 맞으니 내 처지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엠뷸런스에 누워 옆을 보니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의 집을 지나쳐 병원으로 향했다. 집을 지날 때는 왠지 모를 서러운 생각이 들어 마음이 울컥했다.


새로운 병원에 도착했다. 원무과장님은 우주임과 통화를 했고 사정을 들었다는 말을 했다.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나의 의무기록을 유심히 보고 나서 선생님은


“왜 벌써 병원을 옮기시죠? 아직 수술한 지 나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병원에서 진통제와 드레싱 밖에 하는 것이 없길래 집 근처 조용한 병원으로 옮기고 싶었어요.”

“조용히라... 저희 병원 조용하지 않은데...”


아. 내가 뭔가 실수한 것일까.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 제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비대면 강의를 위해서 혼자 지낼 병실이
필요하기도 해서요.


선생님은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와 과목 등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더 하고 나서 2인실을 혼자 쓸 수 있도록 해 주겠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 드레싱을 한 다음에 스플린트를 다시 맞춰 주었다. 이럴 수가. 스플린트를 다시 대었을 뿐인데 사라지지 않던 다리의 통증이 덜해졌다. 내가 갑자기 통증이 덜해졌다고 하자 선생님은 그럴 리가 없다고 쿨하게 대답하셨지만.


병실을 배정받고 올라와 있자니 친구 마노가 찾아왔다. 마노는 나의 신학교 동창인데 나보다 1년 먼저 신학교를 그만두고 의대에 진학해 정신과 전문의가 되었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모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세상에 의미 있는 일들은 많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 할 수 있는 일도 많다는 큰 깨달음을 얻고 올 가을에 고향으로 가서 본업인 내면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외면의 아름다움을 가꾸어 주는 클리닉을 차릴 계획을 가지게 되었다.


상담과 약물치료가 아닌 레이저와 슈 링클, 보톡스를 통해 사람들의 정신도 건강해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개원을 위한 노하우를 배우느라 선배 병원에서 근무하는데 세 시간 반을 운전해 병문안을 온 것이다.


“야. 이제 진짜 살 빼야 된다.”

“의사들은 와 늘 하는 소리가 똑같노.”

“아니다. 니 지금 몸무게로는 절대로 발목 재활 몬한다. 병원에서 주는 밥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말고, 밥을 반공기 남기면 좋고, 아침 거르면 더 좋고.”

“야. 이래 독한 약을 먹는데 밥을 안 먹으면 안 되지. 밥을 잘 먹어야 뼈도 잘 붙는 거 아니가.”

“뼈 붙으라고 사골국물 끓여 먹는 소리 하고 있네. 지금이 뭐 조선시대가. 뼈는 수술이랑 약으로 붙이는 거지 밥으로 붙는 게 아니라, 그리고 위염 걸리는 게 낫지. 내가 정형외과 의사는 아니지만 니 그 몸으로 절대 재활 안 된다는 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래. 네가 단순히 위로를 위해서 여기까지 왔을 리가 없지. 이 기회를 타서 나에게 잔소리를 하기 위해 왔겠지.


“니 자꾸 그라믄 내가 확 지방 흡입하고 위밴드 할끼다. 돈은 아부지한테 받으께.”


아, 이제 잔소리를 넘어 영업까지 하는구나. 마왕의 죽음 이후 우리에게 암묵적 금지어가 되었던 위밴드 이야기까지 하는 걸 보니 니가 곧 개업을 하긴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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