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어느 날, 경기도 양평의 몽양기념관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바람이나 쐴 겸 하루 시간을 내어 훑어보던 중, 우연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평일 오후 4시쯤이라 관람객은 거의 없었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혼자 관람하는 중에 해설사로 보이는 분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혹시 작가세요?" 책을 한 번 내본 것이 전부인 저에게는 다소 갑작스런 질문이었습니다.
'작가라고 해도 될까?'라는 생각과 '어? 티나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 뭐 그냥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라고 버벅거렸습니다.
그분은 저를 이끌며 여운형 선생의 일대기를 매우 상세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혼자 둘러보았으면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공간이었지만,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폐관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그 한 시간 남짓한 동안, 그분은 오롯이 저 한 사람을 위해 설명을 이어가셨고, 덕분에 여운형 선생의 파란만장한 삶을 떠올리며 가슴이 찌릿했습니다.
마지막 전시물을 설명하고 그분은 저에게 두가지를 부탁했습니다. 하나는, 몽양 선생에 대해서 글을 쓸거면 선생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고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오해가 많다는 말과 함께, 그분의 진짜 모습을 알리는 글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죠.
두번째로, 역시 양평에 있는 지평리전투기념관을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 전시되어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누구냐는 질문에 '젊은 노장이죠. 가 보시면 압니다'라며 빙긋 웃었습니다. 젊은 노장? 이쯤 되면... 안 갈수가 없죠.
그 다음 주에 지평리전투기념관을 찾아갔습니다. 지평리는 우리가 잘 아는 지평막걸리의 고장 그곳입니다. 산으로 둘러쌓인 포근한 느낌을 주는 동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전 당시 연합군과 중공군 사이 가장 치열한 전투가 있었습니다. 이 전투는 연합군이 중공군을 이긴 최초의 전투였고 이를 계기로 전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내용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언듯 기념관 밖의 풍경과 잘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관람 중에 '젊은 노장'으로 예상되는 분을 만났습니다. 1차,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랑스의 전쟁 영웅인 랄프 몽클라르 장군.
그는 58세의 나이에 자신의 계급을 중장에서 중령으로 낮추고 대대장으로서 한국전쟁에 참전하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중장 계급에 맞는 규모의 부대를 참전시키기에는 프랑스 정부의 외교적 부담이 컸다고 합니다. 그가 말한 참전 이유에서 그의 신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터로 떠나며 만삭(!)의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 인간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몽클라르 중령 전시물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감흥이 조금 가시고 나자 그 해설사님이 몽클라르 중령을 왜 '젊은 노장'이라고 말했는지 이해됐습니다.
나이와 무관하게 정말 몸도 마음도 생명력으로 가득했던 분, 그런 느낌이 전달되었습니다. 위대한 군인을 희화화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정말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조용한 지평리를 차로 한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연히 만난 한 해설사님의 가이드로 기념관, 박물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자주 다녀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