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플랫폼 전쟁은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 주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두 데이터 플랫폼 기업의 전략 기사를 보다가 그 단면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두 기업이 성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AI와 애플리케이션 영역으로 침투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여기까지는 흔한 시장 변화입니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데이터 주권'에서 일어납니다.
이 플랫폼들이 AI 앱을 만들고 구동하려면 양질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대개 그 데이터는 거대 SaaS 기업(A사)의 CRM 등에 쌓여 있죠.
고객은 이 데이터를 데이터 플랫폼으로 옮겨와 혁신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A사의 입장은 다릅니다. '내 플랫폼의 데이터를 가져가서, 결국 나와 경쟁할 AI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걸 우리가 그냥 허용해야 할까?'라는 것이죠.
A사 역시 AI를 내장해 수익 모델을 지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니까요. 결국 A사는 결단을 내립니다. 데이터를 자기네 성 밖으로 옮겨가려면 비싼 값을 내게 하여 사실상의 ‘데이터 통행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그들은 데이터를 옮기지 말고 필요할 때마다 잠시 들여다만 보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언뜻 보면 옮기는 수고와 비용을 덜어주는 배려 같지만, 본질은 데이터라는 알맹이를 자기네 성 안에 끝까지 묶어두겠다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 역사는 반복된다
여기서 강한 기시감을 느낍니다. 2010년대 중후반, 한 거대 ERP 기업(B사)이 시행했던 데이터 추출 정책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B사는 자사 데이터의 외부 연동에 추가 비용을 부과했고, 시장은 들끓었습니다.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었죠.
성장 한계 극복과 경쟁사 견제를 위한 기업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 아이러니
가장 흥미로운 건, 그 시절 B사를 가장 강하게 비판했던 기업이 바로 지금의 A사라는 점입니다.
당시 A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객의 데이터는 고객의 것이다. 통행세는 구시대적 발상이다.'
그리고 그들은 ‘개방’을 무기로 B사의 고객을 흡수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지배자가 된 지금, A사는 과거 자신이 비판하던 그 정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도전자는 항상 개방을 말하고, 지배자는 성벽을 쌓습니다. 이것이 플랫폼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비즈니스의 생리입니다.
기술의 흐름은 점점 더 개방과 연결을 지향합니다. 반면 플랫폼 비즈니스는 성장의 정점에 가까워질수록 통제와 수익 방어라는 현실적인 과제를 함께 떠안게 됩니다.
이는 기업의 모순이라기보다 플랫폼 비즈니스가 성장하며 마주하는 구조적 문제에 가깝습니다.
플랫폼 기업의 절박함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출발점이 고객이라면, 그 결정권 역시 고객에게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