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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리혜성을 기다리며

by 최종일

어릴 적 제 꿈은 천문학자였습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는 순간, 제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었죠.

꿈을 키워가던 중, 1986년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바로 핼리혜성의 지구 방문이었습니다. 핼리혜성은 약 76년 주기로 돌아오는 혜성으로, 맨눈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당시 과학잡지들은 ‘일생에 단 한 번 볼 수 있는 혜성이 온다’라고 광고했고, 제 심장은 요동쳤습니다. 천문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지 불과 5년 만에 이런 우주적 이벤트가 찾아오다니!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던 것 같습니다.

핼리혜성은 1985년 11월부터 관측이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지구로 접근할 때 한 번, 돌아서 나갈 때 한 번, 총 두 번의 관측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죠.

과학잡지에는 핼리혜성을 관측하는 데 필요한 준비물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천체 지도, 천체망원경, 삼발이, 나침반, 플래시, 방한복 등. 대부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천체망원경과 삼발이였습니다. 다행히 제가 살던 도시에 천체망원경을 판매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 천체망원경을 사달라고 졸랐지만, 탐탁지 않아 하셨습니다. 그게 천체망원경인지, 제 꿈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판매점에서 아버지는 가격을 보시고 깜짝 놀라셨고, 저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천체망원경은 별로 쓸 일이 없다. 대신 쌍안경을 사줄게." 눈치를 살피던 판매점 사장님도 아버지를 거들었습니다. "배율이 높은 쌍안경이면 핼리혜성을 볼 수도 있어요."

결국, 배율 높은 쌍안경을 사 왔습니다. 다만 삼발이가 없어 손으로 잘 고정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12월 중 날씨가 맑은 날 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지방 도시에서도 변두리였고, 추수가 끝난 논은 바람이 거세고 몹시 추웠습니다.

불빛이 거의 없는 논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준비한 천체 지도로 방향을 확인했습니다. 과학잡지에는 위치와 각도까지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죠. 운이 좋으면 맨눈으로도 보일 거라고 했으니, 이제 완벽하게 관측 준비를 마쳤습니다. 가슴이 설렜습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도록 혜성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쌍안경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느라 목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새벽 1시, 바람은 더욱 거세졌고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들었습니다.

떨리는 손 때문에 쌍안경 속의 별들이 휙휙 지나갔습니다. 다시 30분을 더 버텼지만, 혜성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쌍안경의 배율이 너무 낮은 걸까? 사장님이 날 속인 게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흔들리는 쌍안경 렌즈 속으로 하얀 선이 주욱 지나갔습니다. 0.5초 남짓한 짧은 순간. 너무 놀라면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고 하죠. 그 순간, 제 온몸의 털이 전부 일어서는 기분이었습니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핼리혜성이었습니다. 태양계 끝에서 76년을 날아와, 마침내 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다시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쌍안경을 들고 아까 그 위치를 살폈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죠. ‘정말 76년을 날아와 찰나의 순간만 보여주고 가버린 건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미 몸은 심각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새벽 2시가 가까워진 시각, 집에 도착해 부모님에게 자랑했습니다. 부모님은 '빨리 자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한참을 뒤척였습니다.

다음 날, 방학 중 비상소집일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자랑했습니다. 물리 선생님은 놀라며 칭찬해 주셨고, 친구들은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너무나 뿌듯한 하루였습니다.

그날 저녁, 가족들과 함께 9시 뉴스를 보는데 핼리혜성 관련 보도가 나왔습니다. 핼리혜성은 당시 과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큰 관심사였으니까요. 그런데 뉴스에서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소백산 천문대에서 며칠간 관측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현재 혜성의 궤도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관측이 어렵습니다."

‘뭐? 내가 성공했는데 소백산 천문대는 실패했다고?’ '내가 그렇게 취직하고 싶어하는 소백산 천문대 실력이 이 정도라고?' ‘혹시 우리나라에서 나만 본 건가?’ 수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후 1986년 4월, 핼리혜성이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떠나기까지 국내 여러 천문대에서 지속적으로 관측을 시도했지만,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끝내 혜성을 관측하지 못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2023년), 핼리혜성을 다시 찾아보니 현재 원일점(태양에서 가장 먼 지점)에 있다고 합니다. 저와 조우(!) 한 후 38년을 날아 가장 먼 곳까지 도달한 것이죠. 그리고 이제, 다시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타원 궤도의 꼭짓점에서 방향을 틀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천문학자가 되지 못해서 인지 여전히 별을 좋아합니다. 지금부터 38년 후, 2061년이 되면 다시 핼리혜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꼭 천체망원경을 준비할 겁니다.




#핼리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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