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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Sep 10. 2020

톳밥과 찹쌀 옹심이 미역국

처음 먹어보는 음식


작년에 제주 시누이가 좋은 톳을 한 박스 보내준 적 있다. 일본에 수출하는 거라는데, 내가 보기에도 톳이 신선해 보여 봉지 봉지 담아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그러고 보니, 이따금 맘 카페에 젊은 엄마가 시어머니가 보내준 김치를 나눠 먹겠다고 내어놓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나랑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이거 어떻게 해 먹어?

톳은 친구들에게 생소한 식재료였다.


인터넷 찾아보면 다양한 톳 요리가 나와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톳밥이다. 굴이 있으면 금상첨화!

작은 돌솥이 있으면 좋다. 없으면 냄비도 괜찮다. 불려놓은 쌀과 불려놓은 톳을 살살 섞어서 앉히고 밥물이 끓어올라 넘칠 때 불을 줄이고 굴을 넣으면 된다. 간장 양념장에 비벼 먹는다.


톳밥을 먹을 때는 비빔밥 먹을 때와 달라야 한다. 절대로 간장 양념을 한꺼번에 넣어 비비지 않는다. 그릇 귀퉁이에서부터 살살 양념을 끼얹어 먹어야 한다. 그래야 간장, 참기름, 톳, 쌀밥, 각자의 맛이 입안에서 살아있다. 톳밥에서 바다 냄새가 난다.




대구에 살다가 제주 며느리가 됐더니 풍광만큼 음식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분지와 섬이니 음식의 식재료부터 완전히 달랐다. 친정인 대구에서는 된장국 미역국을 즐겨 먹지 않았다. 된장은 주로 찌개로 먹었고, 미역국은 생일에 먹는 음식이었다. 어쩌다 된장국을 먹을 때는 마아가린을 넣어 먹기도 했다.


시댁에선 텃밭에서 갓 뽑은 얼갈이배추를 쑹덩쑹덩 썰어 넣은 된장국이 밥상에 빠지는 법이 없다. 모든 국의 베이스 국물은 멸치 우린 에 된장 푼 것이다. 거기에 배추가 들어가거나 미역이나 무가 들어간다. 생선과 돼지고기 수육. 고사리, 표고 같은 반찬이 곁들여진다.  


강한 맛에 길들여진 입맛에 심심한 국이 맛있을 리 없었다. 당최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어, 투덜거림을 속에 담고 살았는데 시간이 흐르자 차츰 그 맛을 알게 됐다.

가볍게 푸르르 끓인 된장국의 시원 달콤한 맛은 바로 전까지 밭에서 자라고 있던 식재료에서 나왔다. 표고의 깊은 향은 제주의 검은흙 때문인지 모른다. 고사리의 쫄깃함은 여리디 여린 고사리만 채취하는 마을 할머니들의 손길 탓인지도. 돼지고기 수육을 어머님은 된장이나, 파, 마늘 같은 양념 아무것도 넣지 않고 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비린 맛 하나 없었다.

모든 음식이 참 맛있었던 건 어쩌면 처음 해 보는 시골 부엌일의 고달픔 때문이었까.


겨울에 제주에 가니 텃밭에 당근이 널려 있었다.

몇 개 주워 왔더니, 어머님이 파지 당근이라 했다. 상품성이 떨어져 팔지 못하고 버리는 당근이다.


-그거 뭐 하러 가져온?

-아깝잖아요.

-좀 주련?

-이거면 되는데….


어머님은 부엌칼을 들고 씩씩하게 나가더니 푸른 잎 달린 붉은 당근을 한 소쿠리 뽑아오셨다. 아버님이 꼼꼼하게 묶어준 당근 박스를 낑낑거리며 들고 와서 제주 당근이라고 자랑하며 나눠먹었다.





갑자기 눈이 많이 내렸다.


밖에서 밥 먹기로 했는데 친구가 감기 걸려 못 나오겠다고 했다. 냉장고를 뒤지니 찹쌀가루가 있었다. 대구 중심가 백화점 가는 길에 작고 정갈한 한식집이 있었다. 비빔밥도 맛있었던 그 집의 특별 메뉴가 찹쌀 옹심이 미역국이었다. 비 오는 으슬으슬한 날 뜨겁게 먹었던 기억이 났다.


찹쌀은 익반죽을 해야 한다. 소금 한 꼬집 넣은 팔팔 끓는 물을 조심스레 부어가며 찹쌀가루를 뭉친다. 물은 많으면 질고, 적으면 반죽이 되지 않는다. 팥죽의 새알심도 이렇게 만든다. 채반에 백 원짜리 동전 크기 만한 새알심을 붙지 않게 나란히 늘어놓고 미역국을 끓인다. 위에 얹을 쇠고기 꾸미를 미리 만들어 두면 편하다. 끓는 미역국에 마지막으로 새알심을 넣고 동동 뜨면 불을 끈다.


미역국이든, 팥죽이든 새알심이 뜰 때면 엄마는 항상 이때 나를 낳았다는 말을 했다. 동지 팥죽 새알심 떠오를 때 아기를 낳은 걸 엄마는 잊지 않았다. 구 남매 맏며느리로 들어와 연이어 세 딸을 낳았으니, 그날을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처음 먹어보는 거다.

친구들은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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