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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Sep 18. 2020

강남 입성(入城)

달력 속 그림

 

강남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있다.


A는 한 십 년 전에 대치동 아파트에 입주했다. 그 무렵 나를 만나러 한 번 내려왔는데 많이 힘들어 보였다.


A와 나는 졸업 후 2년간 같은 직장에 근무했다. 당시에도 A는 특이했던 게 옷을 자주 사지는 않는데 한 벌을 사면 최고급으로 샀다. 80년대에 ‘프랑소와즈, 이원재’ 같은 메이커를 사 입었다. 메이커에 무관심한 나는 A 때문에 이 메이커를 아직 기억한다. 우린 둘 다 국립대를 나왔고, 당시 대부분 친구들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하지만 이따금 A는 돈을 모아 그런 옷을 샀고, 옷은 A에게 정말 잘 어울렸다.


결혼 후 나는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했고, A와 소식이 끊어졌다.


바람결에 드문드문 A 소식을 들었다.

A는 결혼했고 남편 학위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 팍팍한 유학 생활 중에 아기를 낳았고, 아기를 키우면서 다른 유학생 아기를 돌봤다. 자투리 시간에는 영어 과외를 했다. 같이 유학 생활을 한 다른 친구가 내게 알려줬다. 어찌나 열심히 사는지 미국 유학생들 사이에서 A는 전설이라고.


이십 년 만에 나를 만나러 온 A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야기했다. A의 시댁은 생활비 나올 곳이 아들밖에 없었다.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A는 결혼 후 평생을 시댁에 오이조를 보냈다. ‘오이조’란 말은 그날 A와 둘이서 웃으며 말이다. 교회에 십일조 보내듯, 월급의 이십 퍼센트를 시댁에 보냈다. 백만 원을 벌면 이십만 원을, 오백 만원을 벌면 백만 원을 꼬박꼬박.


귀국해서 A가 남편의 공무원 월급으로 어떻게 살았을지 나는 안 봐도 보는 듯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아이들을 가르쳤다. 낮에는 학원 강사로 밤에는 집에서. 그러다가 대치동에 아파트 분양이 있길래 신청했고 당첨된 거다. 그때만 해도 강남이 지금 같지 않았다.


재미있었던 건 그러고 나니 A가 평소 만나던 친구들이 모두 이상해졌다는 거다. 그동안 아끼느라 사고 싶은 것 못 샀던 A는 막상 집을 사고 보니, 그동안 참고 산 게 억울해서 반지를 하나 사서 끼고 나갔는데, 친구들 표정이 모두 변했다.


-어떻게 친구들이 그럴 수 있니?

A의 억울한 표정을 보고 나는 엄청 웃었다.

-당연하지. 조금만 더 참지 그랬니.


이 무렵 여유가 생기자 A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밥을 해주러 간 것이다. 나가는 돈이 한 달에 백만 원 정도였는데 처음엔 너무 아까워서 돈을 세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했다.


-이 피 같은 돈을 남에게 주다니! 내가 어떻게 돈을 모았는데. 그러다 문득 주위 친척들 중에 아무도 남을 위해 이렇게 돈을 쓴 사람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시댁도 마찬가지야. 그래, 그들 모두를 대신해 내가 봉사한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마음먹었지.


A는 가톨릭 신자다. 낮엔 일하느라 성당 갈 시간이 없어서 늘 새벽 6시 미사를 다녔다. 새벽에 눈을 뜨면 성당 가기 전 103위 성인 기도를 한다. 절간에서 절하듯.


-특이한 게 시작할 때 절하고 마칠 때 절하고 이런저런 지향으로 절하면 이게 108번 절하게 되는 거야.


매일 새벽 절을 하는 게 운동이 되어서인지 A는 허리에 군살 하나 없었다.


아무런 이해 관계없는 옛 친구에게 A는 실컷 하소연하고 서울로 갔다. 그 후엔 잠잠하다. 친구들과 관계가 회복된 모양이다.


 대치동 아파트 값은 날마다 올랐다. 하루가 다르게. 지금은 얼마쯤 할까. 삼십억, 사십억? 어느새 우리 집의 열 배 가격이 되었다. 그만큼 우리 사이도 멀어졌을지 모르지만, 나는 A가 운이 좋아서 그런 부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A에게 강남 아파트는 자연스레 다가온 선물이다.

누군들 A처럼 살면 그리 되지 않을까.




한동안 손자 키운다며 모임에 안 나온 친구 소식을 어제 들었다.

우리는 단순히 그 친구가 바쁘고 힘들어서 못 나오는 줄 알았다. 친구는 일 년간 부동산 공부를 해서 아들을 드디어 강남에 입성시켰다고 했다.

얼마  아들에게 서울 근교 아파트를 사 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사이 강남이라니….

친구는 이제 둘째 애를 경기도에 입성시킬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이전에도 한 번씩 친구는 아이들은 강남에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흘려 들었다. 별 관심이 없어서.


-그렇게 까지….

수다 떨던 우리는 잠잠해졌다.


짧은 순간, 그동안  읽고 글 쓰려고 허우적거린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강남 강남 노래하지만 나는 실감하지 못한다. 달력 속 그림 같이 바라 볼뿐. 


다들 자기가 좋아하는  걸어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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