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한 십 년 전에 대치동 아파트에 입주했다. 그 무렵 나를 만나러 한 번 내려왔는데 많이 힘들어 보였다.
A와 나는 졸업 후 2년간 같은 직장에 근무했다. 당시에도 A는 특이했던 게 옷을 자주 사지는 않는데 한 벌을 사면 최고급으로 샀다. 80년대에 ‘프랑소와즈, 이원재’ 같은 메이커를 사 입었다. 메이커에 무관심한 나는 A 때문에 이 메이커를 아직 기억한다. 우린 둘 다 국립대를 나왔고, 당시 대부분 친구들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하지만 이따금 A는 돈을 모아 그런 옷을 샀고, 옷은 A에게 정말 잘 어울렸다.
결혼 후 나는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했고, A와 소식이 끊어졌다.
바람결에 드문드문 A 소식을 들었다.
A는 결혼했고 남편 학위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 팍팍한 유학 생활 중에 아기를 낳았고, 아기를 키우면서 다른 유학생 아기를 돌봤다. 자투리 시간에는 영어 과외를 했다. 같이 유학 생활을 한 다른 친구가 내게 알려줬다. 어찌나 열심히 사는지 미국 유학생들 사이에서 A는 전설이라고.
이십 년 만에 나를 만나러 온 A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야기했다. A의 시댁은 생활비 나올 곳이 아들밖에 없었다.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A는 결혼 후 평생을 시댁에 오이조를 보냈다. ‘오이조’란 말은 그날 A와 둘이서 웃으며 한 말이다. 교회에 십일조 보내듯, 월급의 이십 퍼센트를 시댁에 보냈다.백만 원을 벌면 이십만 원을,오백 만원을 벌면 백만 원을 꼬박꼬박.
귀국해서 A가 남편의 공무원 월급으로 어떻게 살았을지 나는 안 봐도 보는 듯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아이들을 가르쳤다. 낮에는 학원 강사로 밤에는 집에서. 그러다가 대치동에 아파트 분양이 있길래 신청했고 당첨된 거다. 그때만 해도 강남이 지금 같지 않았다.
재미있었던 건 그러고 나니 A가 평소 만나던 친구들이 모두 이상해졌다는 거다. 그동안 아끼느라 사고 싶은 것 못 샀던 A는 막상 집을 사고 보니, 그동안 참고 산 게 억울해서 반지를 하나 사서 끼고 나갔는데, 친구들 표정이 모두 변했다.
-어떻게 친구들이 그럴 수 있니?
A의 억울한 표정을 보고 나는 엄청 웃었다.
-당연하지. 조금만 더 참지 그랬니.
이 무렵 여유가 생기자 A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밥을 해주러 간 것이다. 나가는 돈이 한 달에 백만 원 정도였는데 처음엔 너무 아까워서 돈을 세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했다.
-이 피 같은 돈을 남에게 주다니! 내가 어떻게 돈을 모았는데. 그러다 문득 주위 친척들 중에 아무도 남을 위해 이렇게 돈을 쓴 사람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시댁도 마찬가지야. 그래, 그들 모두를 대신해 내가 봉사한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마음먹었지.
A는 가톨릭 신자다. 낮엔 일하느라 성당 갈 시간이 없어서 늘새벽 6시 미사를 다녔다. 새벽에 눈을 뜨면 성당 가기 전103위 성인 기도를 한다. 절간에서 절하듯.
-특이한 게 시작할 때 절하고 마칠 때 절하고 이런저런 지향으로 절하면 이게 108번 절하게 되는 거야.
매일 새벽 절을 하는 게 운동이 되어서인지 A는 허리에 군살 하나 없었다.
아무런 이해 관계없는 옛 친구에게 A는 실컷 하소연하고 서울로 갔다. 그 후엔 잠잠하다. 친구들과 관계가 회복된 모양이다.
대치동 아파트 값은 날마다 올랐다. 하루가 다르게. 지금은 얼마쯤 할까. 삼십억, 사십억? 어느새 우리 집의 열 배 가격이 되었다. 그만큼 우리 사이도 멀어졌을지 모르지만, 나는A가 운이 좋아서 그런 부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A에게 강남 아파트는자연스레 다가온 선물이었다.
누군들 A처럼 살면 그리 되지 않을까.
한동안 손자 키운다며 모임에 안 나온 친구 소식을 어제 들었다.
우리는 단순히 그 친구가 바쁘고 힘들어서 못 나오는 줄 알았다. 친구는 일 년간 부동산 공부를 해서 아들을 드디어 강남에 입성시켰다고 했다.
얼마 전아들에게 서울 근교아파트를 사 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사이 강남이라니….
친구는 이제 둘째 애를 경기도에 입성시킬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이전에도 한 번씩 친구는 아이들은 강남에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는 흘려 들었다. 별 관심이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