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원영선・ 전신화 옮김, 문학동네
맏딸인 엘리자베스는 열여섯 나이에 어머니가 가졌던 권한과 지위를 모두 물려받았다. 미인인 데다 아버지를 많이 닮은 그녀는 그 영향력이 늘 대단했고, 아버지와 사이도 좋았다. 반명 두 딸은 찬밥 신세였다. 메리는 찰스 머스그로브 부인이 된 덕에 겉으로나마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앤은 아버지에게도 언니에게도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앤은 기품 있고 온화한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 레이디 러셀에게는 단연코 앤이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한 대녀이자 아끼는 친구였다.
앤은 그를 이해했다. 그녀를 용서하지 못하면서도 냉담하게 대할 수도 없었으리라. 지난 일로 그녀를 탓하고 부당할 만큼 크게 분개하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안중에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갖게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날 가졌던 감정의 편린이었고, 대놓고 인정하진 못하는 순수한 우정이었으며, 그가 지닌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의 증거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녀의 마음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자신이 기쁜 건지 고통스러운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큰 고통을 겪긴 했지만 저는 제가 한 일이 옳았다고 믿을 수밖에 없어요. … 제 친구의 충고에 따랐던 것이 전적으로 옳았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그분의 충고가 옳았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건 아마도 결과에 따라 좋은 충고였는지 나쁜 충고였는지 가려지는 그런 경우였던 것 같아요. 물론 저러면 어떤 비슷한 상황에서도 그런 충고는 절대 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하려는 말은 그분의 말을 따른 것이 옳았다는 거지요. 그러지 않았다면 약혼을 유지했겠지만 당신을 포기한 것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을 거예요.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테니까요. … 강한 의무감은 여성이 물려받을만한 괜찮은 자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