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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Sep 27. 2020

결정 장애

한우갈비, 돼지갈비, LA갈비



화요일 산에 가서 가을바람 쐬며 친구들과 김밥을 먹기로 했는데, 전날 점심 무렵부터 몸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체온을 재니 37.5도였다. 걱정이 된 건 이틀 전 기차 타고 대구를 다녀온 때문이다. 감기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얼른 김밥 주문을 취소하고 약속을 일주일 연기하자고 친구에게 연락했다.


-열 오른다고? 으으으 알았어.

친구는 당황해하며 얼른 전화를 끊었다.


전화로 감염되진 않는데….


다행히 하루 지나 열이 내렸다. 감기가 오려다 몸의 면역력이 “오기만 해 봐!” 문 앞에서 기세 등등하게 지키고 있는 걸 보고 일찌감치 도망친 것 같았다. 산에 가는 데 아무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산행 약속을 취소한 것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만에 하나 바이러스 감염이었으면 어떡할 뻔했어.  손녀를 돌보는 친구도 있는데.

이번 경우는 쉽게 결정했다. 잘못된 결정의 결과가 눈에 보였으니까. 하지만 최근 들어 나는 부쩍 결정하는 게 어렵다.

 

어찌나 생각이 많은지, 오늘 아침에는 오죽하면 친구에게 문자로 물어볼 뻔했다.

-얘, 이번 추석에는 한우 갈비, 돼지갈비, LA 갈비 중 어느 걸 만들까?


물론 대답은 당연히 한우 갈비 겠지만 그게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아이들이 집에 올지 안 올지에 따라 다르고, 언제 오는지에 따라 또 다르다. 한우는 또 얼마나 비싼지. 만들어 놓으면 먹을 것도 없다.


오래전 아랫집에 마산이 고향인 친구가 살았다. 그녀는 손님을 초대할 때마다 돼지갈비와 콩나물 미더덕찜을 만들었다. 그 무렵은 다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쇠갈비 찜은 꿈도 못 꿨다. 돼지고기의 비린내를 잡아 만든 갈비찜은 썩 훌륭했고, 당연히 요리 실습을 거쳐 우리 집의 단골 메뉴가 됐다. 기특하게 가격은 또 얼마나 착한지.


갈비찜이란 게 고기를 풀어서 물에 담가 놓으면 양이 많아 보여도 만들고 나면 얼마 되지 않아서 먹다 보면 늘 아쉽다. 잘 만들어 놓으면 쇠갈비 찜인지, 돼지갈비 찜인지 모를 때도 있는데.


결국 나는 동네 정육점에 수입 LA 갈비를 주문했다. 이것도 맛있다. 무엇보다 만들기가 간단하다. 주문하고 나서 아침 신문을 보는데,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LA 갈비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사진빨이라는 건 알지만, 녀석은  뼈가 보이지 않을 만큼 살이 두툼했고, 붉은 살 사이에 하얀 마블링이 실금처럼 그어져 있었다. 게다가 가격은.

이런? 더 싸잖아. 킬로 당 6천 원이 빠지네.


나는 고민에 빠졌다. 3 킬로면 만 팔천 원이다. 주문을 취소할까? 결정해야 했다. 고민하던 나는 결국 주문을 취소하지 않았다.


웃으실지 모르지만, 나는 나이 든 사람은 일단 점잖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규칙을 가능한 지켜야 하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도. 행간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미 눈치채셨으리라. 모두 나에게서 찾기 힘든 덕목이라 아쉬워서 그런다는 것을.


'점잔'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말이나 행동이 경솔하지 않고 묵중한 태도다. '사람이 점잖다'라는 말은 몸가짐이 음전하고 품격이 고상하고 됨됨이가 품위 있고 의젓하다는 뜻이다. 이런 사전적 의미 외에 '점잖다'라는 말을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나이 들었다'라는 뜻으로 읽는다.


나는 정해진 규칙이 이해되지 않고, 마음으로 수긍하지 못하면 잘 안 지키려 드는 버릇이 있다. 욕심은 또 얼마나 많은지. 공모전에 글을 냈다가 연락이 안 오면 다운돼서 글은 왜 쓰나, 머리를 땅에 찧고 세상 다 산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몰론 아무도 모르게 집에서만. (비유이니 감안하시라) 다시는 내가 공모전에 글 내나 봐라, 하고는 다음번에 멀쩡하게 원고를 내기도 한다. 꿈과 희망은 늘 새롭게 다가오는 법이라.

그렇지만 차츰 좋아지고는 있다.

규칙을 어기고는 금방 뉘우친다. 내가 이런 성질이 있지, 하면서. 글쓰기는 입상에 안달복달하기보다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몇 천 원 때문에 이랬다 저랬다 해서 정육점 주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저런 욕심을 조금 비울 수 있는 건 나이가 주는 장점이기도 하다.


대형 마트와 동네 정육점은 정리했지만, 그래도 아직 나는 마음에서 한우갈비, 돼지갈비, LA갈비를 내쫓지 못했다. 결과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은 결정하기 어렵다. 오랜만에 애들이 오는데 한우갈비 샀어야 하는 것 아닌가.




친구 M은 수술 후 항암 처치를 마치고 정기 검진을 받던 와중에 영국 엑스터에 갔다. 평생 꿈꾸던 대학 공부 대신 석 달 간의 사설 어학원 생활이었지만, 나는 이 용감한 일을 글로 쓰고 싶었다.


-네 일을 내가 써도 되니?

물었을 때, M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응, 괜찮아. 써도 돼. 나는 머리와 심장이 수긍하면 지나가.


돌아보면 인생은 크고 작은 결정의 연속이었다. 머리가 앞서는 결정도 있었고, 심장이 앞서는 결정도 있었다.

진학, 취직, 결혼, 퇴직, 이사. 한숨 돌리고 나니, 자식에 대한 여러 결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와 심장의 균형이 잘 잡힌 결정도 있었고, 어느 하나만 앞선 결정도 있었다. 하지만 되돌아가서 다시 하래도 별로 나을 것 같지 않다.


나이 들면 복잡한 게 싫다. 그러니 결정도 가능하면 빨리 내린다. 아이들 목소리가 듣고 싶으면 기다릴 것 없이 내가 전화하고, 보고 싶은데 오지 못한다면 우리가 만나러 간다. 그러면 서운할 것도 마음 복잡할 것도 없다.


가게에서 건네받은 LA갈비는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품질이 았다. 갖가지 양념으로 고기를 재워 냉장고에 넣었다. 까짓것 이번에 LA갈비 다음에 돼지갈비, 그다음에 한우 갈비 만들지 뭐. 미련이 남는 건 몽땅 해봐야 깔끔하게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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