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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Sep 28. 2020

영혼의 글쓰기

프리덤 라이터스(Freedom Writers)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좋은 글이 어떤 글이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처음에 나는 글쓴이가 만족스레 여기는 글이라 말할 것 같다. 그런 글이 있냐고 내게 물으면 나는 쉬이 대답하지 못한다. 고민에 빠진다. 내가 쓴 글들을 떠올려 보지만, 딱히 어느 글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결국 좋은 글이란 작가가 만족하는 글 보다 읽는 이들이 좋아하는 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독자는 어떤 글을 좋아할까. 어떤 글에 반응할까. 글을 쓰기도 읽기도 하는 나는 작가의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는 글을 좋아한다. 나도 그랬는데, 그 마음을 나도 알 것 같아, 이런 것들.

글을 매개로 독자는 작가를 만난다. 그러니 바로 눈앞에 있는 듯 작가를 느낄 수 있는 글이 가장 좋은 글이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을 깨우쳐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결국 좋은 작가가 되는 길인 것 같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런 기교 없는 거친 글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글에서 우러나는 진솔함 때문이다. 그런 글을 나는 작가의 영혼이 쓴 글이라 말하고 싶다. 독자는 그런 글들을 재빨리 알아본다. 영화 ‘프리덤 라이터스(Freedom Writers)’에는 학생들이 쓴 투박한 글들이 나온다.




1944년 에린 그루웰은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리스 윌슨 고교에 부임한다. 2 년 전 이곳에서 로드니 킹 사건이 일어났다. 집단 폭행과 인종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다. 학교는 자발적 인종 화합 프로그램으로 이전에 다니던 백인들 대부분이 떠난 상태였다. 라틴, 아시아, 아랍, 흑인, 백인이 한 교실에서 수업한다. 교사들은 학교를 일종의 소년원으로 생각한다. 그러기에 복종과 규율만 가르쳐 졸업시키면 그만이다. 교실이 마치 도시의 축소판 같다. 학생들은 자기의 영역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허리와 발목에 권총을 차고 다닌다. 그들에게 새로 온 교사는 믿을 수 없는 백인일 뿐이다.

그루웰이 품었던 이상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학생들은 웃지 않고, 서로 얼굴도 보지 않는다. 더군다나 첫날 교내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한다. 그루웰은 고민한다.


어떻게 저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들을 서로 화합하게 할 수 있을까?


그루웰이 ‘줄 게임’을 고안했다. 교실 가운데에 선을 긋고 질문을 던진 다음 해당되는 사람은 선에 나와 서는 게임이다.

-가수의 새 앨범을 가진 사람. 신작 영화를 본 사람.

-에이, 시시하다.

 학생들 몇 명이 가볍게 움직인다.


-마약을 구입하는 곳을 아는 사람.

-주변에 갱 친구를 한 명이라도 아는 사람.

-친구들 중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 네 명 이상인 사람.

-친구들 중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사람.


이제 교실 뒤편에 서 있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모두 나란히 줄에 서서 맞은편 급우를 바라본다. 다들 비슷한 상황이라는 걸 깨닫는다.


'쟤도 나처럼 친구를 잃었구나!'


수업 시간에 인종적 특징을 비하하는 그림이 돌고 있는 걸 본 그루웰은 대학살도 이렇게 사소한 걸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대학살이 뭐예요?


학생들의 질문에 그루웰은 직접 대답하지 않는다. 학생들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도와주기만 한다. 학생들은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견학하고, 참상의 생존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루웰은 그들에게 글쓰기와 책 읽기를 가르치고 싶다. 하지만 고등학생인 그들의 읽기는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읽히고 싶어 하는 그녀를 선임 교사가 비웃는다.

그루웰은 학생들이 책에 흥미를 가지게 ‘갱단 이야기’를 사 주고, 점차 수준을 높여 '로미오와 줄리엣'을,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다녀온 후에는'안네의 일기'를 사서 건네준다. 그리고 그들에게 노트를 선물한다.


-노래, 시, 뭐든 상관없어요. 항상 펜을 가지고 다니며 영감이 떠오르면 쓰세요.


-모두가 전쟁이다. 난 엄마가 죽을 때까지 매 맞는 걸 봤다.

-친구가 총을 주워 왔는데 오발사고가 났다. 소년원에 간 첫날밤, 난 밤새 울었다.

-셔츠를 걷으면 멍이 보여요. 문을 나설 때마다 총에 맞을까 두려워요.

-학교엔 뭐 하러 가는 걸까.

-매번 누군가를 때려 갱단에 집어넣는 건 세례와 같다.

-학교에 가는 첫날 오빠가 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평등을 위해 투쟁하는 우리들을 그들은 갱단이라 부른다. 우린 3대째 갱단 집안이다. 인종, 자긍심, 명예, 영역을 두고 싸운다.




그들의 일기를 읽은 그루웰은 충격을 받고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한다.


-이런 애들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전 사회사업가가 아니에요.

-1년만 다니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렴. 네가 그들을 구할 수는 없어.


그런데 학생들이 점차 변한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전 죽지 않고 열여덟 살까지 살 겁니다.

-엄마처럼 열여섯에 아이를 낳진 않을 거예요. 저는 우리 가족 중 처음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싶어요.



거리에서 마약을 팔던 학생이 집으로 돌아간다. 동족의 살인을 눈감아주던 학생은 재판정에서 진실을 말해 무고한 이를 구한다.


그루웰은 학생들의 일기를 모아 책을 만든다.

학생들은 안네를 숨겨줬던 미프 기스를 만나고 다. 축제로 돈을 모은 학생들이 미프 기스를 초청했다.


당신이 나의 영웅이라는 한 학생의 말에, 미프 기스가 아니라고 답한다.


-그게 옳은 일이기에 한 것입니다. 우린 모두 평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소박한 방법으로 불을 켜서 방을 밝힐 수 있어요. 당신들이 영웅입니다. 매일을 영웅으로 살고 있어요.


한 사람의 관용과 헌신이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그루웰이 관용으로 학생들은 바라보지 않았다면 그들은 애초에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을 것이다. 헌신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돌보지 않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몸과 마음을 다하여 도와주는 일이다. 에린 그루웰이 그랬고, 미프 비스가 그랬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본 학생들은 변화를 갈구하게 된다.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았지만 이렇게 무의미하게 죽을 순 없다는 생각, 누구도 자신을 함부로 하게 놔둬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미래에 대해 꿈을 가지게 된다. 영화 ‘프리덤 라이터스(Freedom Writers)’는 윌슨 고교 203호 교실 150명의 학생들의 일기,『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가 원작이다.




엄마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나는 사흘간의 일들을 글로 썼다. 울컥울컥 했지만, 나는 그 감정들이 무척 소중했다. 잊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이 깨끗이 비워져서 어떤 것도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브런치에 글을 썼는데, 매일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기자가 추모란에 글을 올릴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가족의 내밀한 일들이 많이 담겨 있기에 망설였다. 동생의 허락을 맡아야 했다. 브런치에 쓴 글을 동생에게 보냈다. 내 글을 가족에게 보여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동생이 가족 카톡방에 내 글을 올렸다. 모두 고요했다. 잔잔하게 잘 썼다고 언니들이 말했다. 글은 신문에 등재될 것 같다.


다음날 동생이 그간 쓴 일기 중 한 장을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동생은 대학교 다닐 때부터 일기를 썼다고 했다. 우린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2019. 9.15. 날씨 맑음.
야간 근무를 마치고 새벽에 돌아오니 엄마가 거실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며칠 째 집에 혼자 있어서 지겨운 모양이다. 아침도 안 먹고 있어 갈비탕 남은 것 퍼다 주니 잘 드신다. 3일째 먹는 갈비탕 맛있다 하신다. 이유가 있었다. 며칠째 갈비탕을 먹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기가 찬다. 혼자 생각했다. 치매가 이런 면에서는 좋은 점도 있구나. 누가 보면 효자인 것 같이 생각도 하겠지만 "나는 참 나쁜 놈" 이란 생각이 든다.


형제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건 영혼의 더께를 제거하는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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