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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Sep 29. 2020

마실

오일장의 김치 장수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던 3월 초, 아파트 앞에는 여전히 오일장이 열렸다.


뉴스에서 계속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라고 말하지만, 일용직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에겐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먼 세상 이야기인지 모른다.


오일장에는 김치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다. 그녀가 판을 벌이는 장소는 장의 가장 외곽 횡단보도 앞이어서 물건을 사고 집에 올 때 나는 늘 그녀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된다.

그곳에는 펼쳐놓은 살림이 많다. 얼음물 담긴 큰 대야에는 여러 종류의 완제품 김치가 들어있고, 옆에 놓인 작은 대야에는 소금물에 절여놓은 배추가 있다. 그리고 온갖 야채들, 김치를 담는데 필요한 쪽파, 마늘, 무, 배추, 총각무, 같은 것들이 나란히 늘어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특이한 건 그곳에는 늘 김치 장수 외에 아주머니들이 서너 명, 많을 때는 대여섯 명이 함께 있다. 나지막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그들은 뭔가 이야기를 하면서 김치 장수의 일을 거든다. 쪽파 껍질을 벗기고, 배추를 다듬고, 마늘을 깐다. 그들이 일당을 받고 일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난번 장에서 듣기로는 한 사람을 고용하면 밥 사주고 간식 챙겨주느라 인건비가 족히 십만 원은 넘는했다. 그리 큰돈을 지불하고 사람을 쓸 정도로 김치 가게는 여유 있지 않다.

일을 거드는 아주머니들 나이는 대략 60대에서 7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그들 중에 엽렵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모여 앉아 종일 느긋하게 수다를 떨며 김치가게 일을 거든다.


그날 나는 열두 시가 조금 넘은 점심 무렵 그 앞을 지나갔다. 가게 한가운데에 푸짐하게 된장찌개가 끓고 있었다. 찌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걸로 봐서 주인아주머니는 가스레인지도 갖고 다니는 것 같았다. 사과와 귤을 담았던 큰 박스가 궤짝 위에 옆으로 드러누워 밥상이 되었다. 늘어놓은 반찬은 서너 가지 정도였는데 가짓수는 많지 않아도 모두 그릇에 그득그득 넘칠 정도로 담겨 있어서 음식을 준비하는 이의 넉넉한 마음이 느껴졌다. 장터에서 급하게 한 끼를 때우려고 먹는 밥이 아니었다. 주위의 빈한한 여건과 달리 식사는 풍성해 보였다.


그리고 그 밥솥.

검은 쌀을 적당히 섞으면 그런 빛깔이 된다. 주인아주머니가 주걱으로 부드럽게 솥에 담긴 보랏빛 밥을 뜨고 있었다.  밥은 거의 스무 명은 먹을 정도였다. 밥상 둘레에 모여 앉은 그들의 시선은 모두 밥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이 매번 모이는 이유를 나는 그제야 알았다. 주인아주머니는 늘 푸짐한 점심을 그들에게 제공했던 것이다.




요즘 보기 드문 풍경 하나가 가을에  배추 뿌리를 파는 것이다. 하얗게 원추 모양으로 다듬은 뿌리를 볼 때면 나는 저걸 무슨 맛으로 먹나 생각했다. 어릴 적 우리 집에 놀러 오던 경태 엄마는 배추 꼭지나 배추 뿌리를 좋아했다. 예고 없이 가족 밥상에 끼어든 미안함을 그리 표현했는지 모른다. 그녀도 생선은 머리가 맛있다는 우리 어머니 세대였으니.


경태 엄마는 우리 동네 마당발이었다. 거의 매일 이 집 저 집 놀러 다녀서 집집이 속 사정을 다 알았다. 어느 집 숟가락 개수가 몇 개인지도 알 정도였다. 그녀의 남편은 집에서 뭔가 발명품을 만들었는데, 그녀의 기대와 달리 매번 별로 성공하진 못했다.


경태 엄마는 부엌에 들어오면 건넛집 이야기를 하면서 상에 숟가락을 얹었고, 빨래를 걷고 있으면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집에 누가 사는지를 슬며시 알려주면서 걷어온 빨래를 갰다. 그녀는 동네의 온갖 소문을 물어 날랐고, 그러다 보니 어느 집에 혼기 찬 아들이나 딸이 있는 것도 알았다. 한두 번 중매를 했는데, 성공하니 재미있어서 나중에는 본격적으로 중매쟁이로 나서기도 했다.

그녀는 성격이 수더분해서 잘 웃었고 누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화내는 법이 없었다. 경태 엄마처럼 이렇게 집집이 놀러 다니는 걸 우리는 ‘마실 다닌다’고 말했다. 돈이 드는 일도 아니었고 고양이 손도 필요할 때여서 상부상조하니 서로 좋았다.


'마실'은 당시 결혼 한 여자들의 일종의 놀이 문화였는데, 후일 십 대 후반이 된 나도 밤에 동네 친구네 집에 갈 때면 밤마실 다녀오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에 살아서 어디 놀러 갈 곳 마땅치 않은 아주머니들에게 오일장의 배추 장수는 멍석을 깔아 주었다. 닷새마다 아침이면 그들은 느긋하게 집을 나와서 종일 이곳에 모여 일을 거들어주고 차려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간다.


물론 그들이 걱정이 됐던 건 사실이다. 지금이 어느 땐가. 감염을 막느라 혼밥과 침묵이 미덕이 된 시기에 마스크도 안 쓰고 종일 마주 보고 수다를 떨다니. 찌개를 저렇게 함께 숟가락 담그고 먹어도 괜찮을까. 움츠러든 마음에 문득 '로세토 효과'가 떠올랐다.


1960년대 펜실베이니아주 로세토 지역에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해 살았다. 학자들은 이 지역 주민들의 심장병 발병률이 평균보다 유난히 낮다는 걸 발견했다. 울프 박사와 브룬 박사는 30년을 추적 조사한 끝에 결과를 이렇게 발표했다.


 “사람들이 가족과의 이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을 때 이웃이 따뜻하게 도와주는 문화가 그 원인이며. 공동체가 나를 지켜 주리라는 신뢰가 있을 때 개인은 건강해진다.”


솥에 가득 든 보랏빛 밥을 배부르게 나누어 먹고, 부글부글 끓는 된장찌개를 소담스레 떠먹으며 고민을 털어놓고, 등 두들기며 위로해주는 그들에게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가오지 않을 것 같았다. 혹시 오더라도 온 줄도 모르게 슬그머니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들은 즐거워 보였다.


몇 달만 지나면 나아지려니 여겼던 코로나 감염은 육 개월이 지난 추석 무렵에는 앞으로 몇 년을 갈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추석 장을 보러 나온 나는 김치 가게에 들렀다. 명절이니 상에 햇김치를 올리고 싶었다. 아주머니들은 그 사이에 인원이 더 늘었다. 오늘은 일곱 명이나 됐다. 서너 시 무렵이었으니 점심식사는 아니다. 간식일까? 추석 전이라 아주머니가 기분 좋게 한 턱 낸 것 같았다. 그들 앞에는 커다란 탕수욕 접시가 두 개 나란히 놓여 있었다.  탕수육 먹은 지가 언제였더라. 절인 배추를 고르는데 자꾸 시선이 그쪽으로 갔다.


김치 가게 아주머니는 절인 배추를 이것저것 뒤적이더니 그중에서도 제일 큰 배추를 골라줬다. 좀 전에 김치를 사러 온 사람에게도 그녀는 비슷해 보이는 봉지 중에서 큰 걸 골라주고 덤으로 작은 열무김치도 얹어줬다.


배추를 받고 돈을 지불하니 아주머니가 허리를 펴고 주름진 얼굴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사 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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