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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Oct 03. 2020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브런치 100번째 글


지난 5월 브런치 작가가 된 후 60편 정도 글을 썼다. 돌아보니 2,3일에 한 편이다. 나름 열심이었다 할 수도 있고, 묵히지 않은 설익은 글을 내놓았다 할 수도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기간에 나는 이전에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겪었다. 주변 상황은 흉흉했다. 늘어나고 줄어드는 확진자 수에 따라 사회는 긴장과 이완을 반복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니 온라인에 관심이 쏠렸다. 소셜 미디어를 드나드는 횟수가 잦아졌다. 답답한 마음에 공개 글을 올렸다가 거칠고 무례한 댓글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소통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후부터 나는 댓글을 잘 읽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한 사회에 무너지기 쉬운 나의 자존감을 스스로 지켜야 했다. 만일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까?


품위라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 아픈 친구를 방문하고, 장례식에서 유족을 위로하는 것, 기다리는 줄을 새치기하지 않는 것 같은 단순인 일들을 떠올린다.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을 쓴 독일 작가 악셀 하케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처음 생각한 품위도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 정도였다.




이틀 전 남편과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국물이 시원한지 남편은 커어 커어 하며 국물을 맛나게 들이켰다. 맞은편에 앉아서 밥을 먹던 나는 갑자기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뒷자리에서 식사하는 젊은 부부가 흉볼 것 같았다.


-소리 내지 말고 먹어요.

-뭐가 어때서. 맛있게 먹으면 되지.

내 말이 퉁명스러웠는지, 무안해진 남편이 볼멘소리를 했다.


보통 품위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은 일상의 도덕, 생활 속 예절을 떠올린다. 그러고는 타인에 대한 이해는 한쪽으로 치워버린다. 사실 품위는 이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를 소홀히 여긴다. 키케로는 타인을 향한 모욕을 내려놓는 것이 품위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했다.


이 글을 읽었을 때, 나는 순댓국을 먹다 남편과 다툰 일이 떠올랐다.

품위 없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당시 나는 매너 없이 음식을 소리 내어 먹은 남편이 품위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품위 없었던 사람은 남편을 타박한 나였다.


품위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용어 자체가 어딘지 모호하고 상대적으로 보였다.


1941년 독일 장교 하인리히 힘러는 딸의 학급 문집에 이렇게 적었다. “언제나 품위 있고, 용감하며 관대하게 살아야 한다.” 2년 후 그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나치 친위대원들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직하고, 품위 있고, 충실하며, 동지애를 가져야 합니다. 이는 우리와 같은 피를 가진 동지들에게만 해당되며, 그 외에 다른 이들에게는 절대 해당되지 않습니다.”

대학살을 저지른 자가 품위를 유지하자고 동료들에게 권고한다. 이렇듯 품위는 각자의 관점에서 다르게 읽힌다.





 2003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선두를 유지하던 랜스 암스트롱이 넘어지자 뒤따르던 한스 울리히는 멈춰 서서 암스트롱이 다시 일어나 달릴 때를 기다렸다. 결과적으로 울리히는 우승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울리히가 보여준 태도는 대중의 기억에 남았다. 그는 우승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자 했다.


2001년 일본 신오쿠보 역에서 취객이 선로로 떨어졌을 때,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은 그를 구하려고 선로에 뛰어들었다.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도 함께 뛰어들었다. 취객과 이수현, 세키네 시로 모두 사망했다. 급박한 순간 이수현은 선택을 고민했을까? 품위 있는 태도는 항상 이성적 선택은 아니다.


1955년 미국 앨라배마주의 한 버스에서 로자 파크스가 체포되었다. 당시 흑인들은 뒤쪽 유색 표시 칸 의자에 앉아야 했다. 그날 로자는 유색 칸 좌석의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백인 좌석이 차자 운전기사는 로자에게 일어설 것을 요구했다. 로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미국 인권 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품위 있는 삶이란 이런 것 같다. 한스 울리히, 이수현, 세키네 시로, 로자 파크스 같은 이들이 산 삶.


우리는 매 순간 그런 결정의 상황에 놓인다. 선한 것과, 선과는 거리가 먼 것. 극히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결정은 지금껏 각자가 살아온 삶의 태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태 인생에서 무엇을 위해 애썼는지는 이때의 결정에서 드러난다.


친구가 좁은 골목을 지나가다 주차된 차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냈다. 현장을 목격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두려움에 떨면서 부서진 차를 몰고 도망친 친구는 잠시 후 부서진 차의 주인을 찾아 알릴 결심을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쌓아온 것들이 앞일을 예측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이후에 뉴스에서 뺑소니 사고 소식을 들을 때면, 전처럼 그들을 함부로 욕하지 못한다고 했다. 공포가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켰으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간의 배움과 노력이 없었더라면 한순간 그들과 별다르지 않은 선택을 했으리라는 걸 친구는 깨달았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르웰린의 아내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안톤 쉬거를 만난다. 그는 동전을 꺼내서 앞뒷면을 잘 선택하면 살려주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여자는 그 제안을 거부한다. ‘동전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란 말에 살인자는 의아해한다. 누구나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운 좋게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었다. 당신의 동전 놀음에 내 목숨을 걸지 않겠다며 여자는 품위 있는 죽음을 맞는다.




2005년 덴마크의 한 일간지에 무함마드가 포탄 모양 터번을 머리에 얹은 모습을 그린 만평이 실렸다. 전 세계 무슬람이 분노에 휩싸여 피의 보복을 다짐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괴테르트는 품위란 결국 한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달려 있는데 이 과정에서 폭력을 지양할 때 품위 있는 사회가 된다고 했다. 말하자면 타인과 공감하고 협력하는 것이 품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사회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도덕적 규범과 사회 공동체를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측면.
결속과 분열이 이루어지는 한가운데에 중간 세계가 있다. 이 중간 세계에서 개인은 타인과 조율하고 화합하며 성장해간다. 품위가 존재해야 할 곳은 바로 이 영역이다.


실제 내가 십 년 넘게 알아 온 한 젊잖은 남자는 온라인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은 이미 코로나 블루를 앓고 있는지 모른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가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그가 갈망하는 관심을 거부한 이들을 비난하고 헐뜯기 시작한다. (…)

‘르상티망 ressentiment(원한이나 분노, 질투 등의 감정으로 보통 강자를 향한 약자의 반감 및 증오)’은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흔들며 중독성이 있다. 소셜 미디어는 일종의 반향실로 작용하는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한데 모인 반향실에서는 기존의 미디어보다 공감대가 수월하게 형성되며 소리의 울림도 훨씬 크다. 그리하여 한마음을 가진, 같은 음을 가진 이들의 소리는 더욱 강렬해진다.

예컨대 반향실에서 형성된 증오가 정치권을 향해 공격적으로 드러난다면 그 원인은 정치권의 관심 유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전부터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정치권을 향해 관심을 강요하는 일환으로 증오의 감정이 표출되어 반향실 안에서 소리를 거대하게 키운 것이다.

(게오르크 프랑크, ‘관심의 경제학’)


인간의 감정과 본능은 수만 년 넘게 공동체 안에서 머물며 형성되었다. 이제 이 공동체를 잃으면서 인간은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사람들은 쉽게 분노하고 선동된다.


무함마드의 만화를 교육 자료로 사용한 프랑스 교사가 거리에서 이슬람 교인에게 살해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가 '표현의 자유, 믿음과 불신의 자유'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살해됐다며 시민의 단결을 촉구한다.

이렇게 무례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몇 달 전 산행을 갔을 때 물을 따러 주려고 종이컵을 꺼냈더니, 후배가 손을 저었다.

-전, 종이컵을 쓰지 않아요.

-왜?

-환경 때문에요.

후배는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 물을 마셨다.


후배는 종이컵을 보며 산에서 베어질 나무와 쓰레기 그리고 지구를 생각했다. 그에게 환경은 중요한 관심사였고,  자신의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숙고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2005년 오하이오 캐넌 칼리지 졸업식 축사에서 ‘인간에겐 기본 설정 값’이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자기중심적인 본성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경향을 말한다. 우리는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에겐 마음에 들지 않는 비열하고 몰염치하고 무례한 사람들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 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여기에는 모든 유형의 인간과 연대하려는 의식이 뒷받침되어 있다. 이 연대감은 우리가 인간다운 품위라 칭하는 가치의 근본적인 토대이기도 하다.

 

배움의 진짜 의미는 지식에 있지 않다. 타인들을 내 삶의 중심에 놓고 그들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할 자유가 있다는 걸 깨닫는 것, 이것이 진짜 자유이고 진정한 배움이다. 교육에서 실로 중요한 것은 ‘진실과 본질에 깨어 있으려는 자세’이다. 품위 있는 인간이 되려면 먼저 결심을 해야 한다.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을 활용해 자동으로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아 돌리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마트 앞에서 줄 선 이가 나를 방해하는 이가 아니라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 찬거리를 사러 온 지친 엄마라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를 처음 만나면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호의적인 자세로 대하겠다고 결심한다. 그게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나는 아침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오후에는 책을 읽는다. 이러한 습관이 그나마 한 방향으로 불어대는 세상의 바람에 휩쓸리게 했다. 읽고, 쓰기는 이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한 방법이다.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악셀 하케 지음 , 장윤경 옮김, 쌤 앤 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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