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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17. 2020

60대가 읽기 좋은 책?

어려운 건 안 돼, 술술 넘어가는 걸로.


읽은 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책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으면 좋은 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따금 드나드는 맘 카페에 60대 시어머니에게 추천할 책을 묻는 글이 올라왔는데, 아래에 답글이 별로 없었다. 대략 3,40대인 그들이 생각하기에 60대가 책을 읽는다는 게 낯설어 보였을까? 그 나이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좋아할지, 무엇이 가능할지 짐작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알랙산드로 로스포프는 과학자도 아니고 현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예순넷이라는 나이를 먹은 그는, 인생이란 것은 성큼성큼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만큼은 현명했다. 인생은 서서히 펼쳐지는 것이다. 주어진 하나하나의 순간마다 천 번에 걸친 변화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우리의 능력은 흥하다가 이울고, 우리의 경험은 축적되며, 우리의 의견은 -빙하가 녹듯 매우 느리지는 않다 해도 적어도 천천히 점진적으로 -진화한다. 소량의 후추가 스튜를 변화시키듯, 매일매일 벌어지는 사건들이 우리를 변화시킨다.『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서창렬 옮김, 현대문학


에이모 토울스의 책 두 권을 소개했다.『우아한 연인』과 『모스크바의 신사

그리고 문정희 작가의 시집 정도면 산뜻할 것 같다며 추천했다. ‘산뜻하다’는 표현보다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거라는 말이 조금 더 적절할지 모른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러고 나니, 오늘은 30대가 읽을 책을 추천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물론 글 쓴 이가 나한테 부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이는 여간 바쁘지 않고는 이런 경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알려주고 싶어서 입이 간지럽다.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사실, 이런 연령별 맞춤 독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편이다. 글을 배우고 익히는 어린이들이라면 모를까. 연령보다는 독서 수준에 따라 추천해 달라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평소 책에 관심이 없던 친구가 도서관에 가는 중이라며 전화를 했다. 외출도 못 하니 너무 심심해서 책이라도 빌려 읽어야겠다며.


"막상 빌리려니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어. 추천 좀 해 줘. 근데 절대로 어려운 건 안 돼. 술술 넘어가는 걸로."

"그래. 처음 도서관 가면 막막하지. 책은 많이 꽂혀있는데 뭘 골라야 할지 모르지."

친구의 마음을 이해했다. 도서관에 처음 갔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잠시 고민하다가 역시 에이모 토울스의 책을 추천했다.

잘 읽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제 만났을 때 물어볼 걸.


30대에겐 김연수, 김애란, 이기호 작가의 책을 추천했다. 진지하고, 유쾌 발랄한 작품들이 스쳐가듯 떠올랐기에.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과 G. k. 체스터튼의 『천천히, 스미는 :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도 권했다.    


나는 콜린에게 로버트와의 일을 얘기하는 상상을 했다. 그가 어떤 얼굴이 될지 상상했고 무슨 말을 할지 마음속으로 연습했다. 그러나 무슨 말을 떠올려 봐도 모든 것이 다 부정확하게 여겨졌다. 나 자신에게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를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김이선 역, 문학동네

                

“생쥐 같아.” 헨리가 새 여직원을 고용했을 때 아내가 말했다. “생긴 게 꼭 생쥐야.”
「약국」,『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권상미 역, 문학동네


 『시녀 이야기』와 후속작 『증언들』도 좋다. 『시녀 이야기』는 1985년 출간된 마거릿 애트우드(1939~)의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34년의 터울을 가진 두 작품은 '길리어드'라 불리는 전제주의 정권의 몰락을 그렸다. 오브프레드와 리디아 아주머니. 작품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의 나이와 작가의 나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작가는 자기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걸 선택했다.

                    

나는 닉을 다시 찾아갔다. 전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내 몸을 그에게 준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이 있어야 주지 않겠는가? 그가 나를 들여보내 줄 때마다 나는 베푼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으므로.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무모해졌고, 어리석게 모험을 했다. 그가 이젠 더 이상 들여보내 주지 않겠다고 말할까 봐 두려워하면서. 더 이상 규율을 위반할 수는 없다고, 목숨을 걸고 나를 위해 위험한 짓을 계속할 수 없다고 닉은 언제라도 말할 수 있었다. 아니, 더 이상 흥미가 없다고 말할까 봐 더더욱 두려웠다. 그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관용과 행운으로 여겼다. 그것 보라. 정말 파렴치하다고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김선형 역, 황금가지




맘 카페에 아이들 책에 대한 글은 많이 올라오지만, 본인들이 읽을 책에 관한 글은 드문 편이다. 아이 키우랴, 직장 다니랴, 그럴 여유가 없을 나이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책을 읽고 싶다며 도움을 청하는 글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생활환경이 바뀐 탓 같기도 했다.  


타인은 언제나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를 되뇌어야 배신당하지 않는다. 타인을 이해하려면 일단 급하지 않아야 한다.『바닷가 작업실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김정운, 21세기 북스

 

다음에 또 묻는 이가 있으면 나는 김정운 작가의 『바닷가 작업실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와 토니 포터(Tony Porter)의 『맨 박스(Man Box)』를 추천하고 싶다. 김 작가의 책에는 한국 남자들이 자기 자동차 앞을 막는 이에게 그토록 분노하는 이유가 나와 있다. 읽고나면 그래서 였구나, 하고 무릎을 칠지 모른다. 이 두 권의 책은 남자들에겐 필독서라는 생각이 든다.   


책 읽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던 내가 이젠 독서에 남녀 구별을 하고 있다. 추천과 상관없이 이 두 권의 책은 삼십 년 넘게 같이 살아온 옆 남자를 이해하는 데 살짝 도움이 되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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