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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18. 2020

친구들은 시켜먹는 줄 알았다

따뜻한 김 나는 음식을 담아내고 싶다


얼굴 본 지 다섯 달이 지났다. 이번엔 꼭 만나자고 친구들과 약속한 게 지난달이다. 그때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곧 끝날 줄 알았으니까. 이어서 2차 감염 사건이 일어났고 우린 바깥에서 만나는 게 불편해졌다.


"우리 집에서 만나지 뭐."

"괜찮겠어?"

"간단하게 시켜먹고 차 마시며 놀자."


그렇게 약속 날짜를 잡았는데.

식당의 메뉴도 정했는데.

주문하려고 배달앱도 폰에 깔았는데.


갑자기 음식을 만들고 싶어 진 거다.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음식을 주문하기보다는 따뜻한 김 나는 음식을 투박한 집 그릇에 담아내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니 소박한 음식이라도 직접 만들어 나누어 먹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예전에는 집집이 돌아가면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한 접시씩 장만해 모이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집으로 초대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 됐고, 초대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바깥에서 사 먹는 게 여러모로 경제적이고 합리적으로 여겨졌다.




돌나물 덮밥


지난주에 돌나물 덮밥을 했는데, 요리가 간단하고 맛이 좋았다. 돌나물과 버섯, 쇠고기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덮밥이다. 거기에 샐러드 한 접시 만들고, 도토리 묵 있으니 무치고…. 그렇게 나는 뚝딱 머릿속으로 메뉴를 짰다. 친구들에겐 말하지 않았다. 말릴 게 뻔하니까. 미리 준비할 것도 없으니, 친구들 도착 시간에 맞추어 두 시간 전에만 요리를 시작하면 됐다.





아침에 눈을 뜨니 사방이 어둑하다.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며칠 봄 같지 않게 더운 날씨가 계속되어서 자연스레 메뉴는 모두 찬 음식이 되어버렸는데…. 지금이라도 바꿔야 했다. 다행히 시금치가 있다. 이틀 전 동죽조개가 물이 좋길래 사서 육수를 만들어 놓은 게 남았다. 냉동실에 넣어둔 닭다리 살이 떠올라 닭찜도 만들기로 했다.



동죽 시금칫국



친구들은 예정 시각보다 조금 늦게 왔다. 현관을 들어서면서 투덜댄다. 다들 옆 통로로 들어가 우리 집을 찾았다 한다.  


"이사 온 지가 언젠데… 아침에 문자 보내줬잖아."


친구들은 삼 년 전 내가 살았던 옆 통로의 우리 집을 기억하고 있었다. 동 호수를 적은 문자는 건성으로 봤다. 머리에 새겨진 옛 이미지만 따라 간 거였다.


음식을 보더니 다들 한 마디씩 한다.


"힘들게 뭐하러 했어?"

"심심해서."

"시켜 먹기로 했잖아."

"심심해서."

친구들의 말에 나는 계속 "심심해서"라고 답했다.


그동안 계속 집에만 있었다. 두 달 넘게 가족 외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바뀐 환경에 잘 적응했다. 읽고 쓰고 강변을 산책하고 요리했다. 이 기간에 새삼 깨달은 건 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능숙하게 잘하진 못해도 음악을 들으며 요리하는 걸 즐거워한다. 물론 시간에 쫓겨 의무로 하는 건 별로지만.

마음이 우울할 때, 머리가 복잡할 때 음식을 만드는 건 꽤 괜찮은 일이었다. 요리하는 동안 잡념이 사라져, 마치고 나면 머리가 말갰다. 그러니 심심해서 음식을 만들었다고 말한 건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우리는 남편 직장이 인연이 되어 만난 사이다. 처음에는 누구의 부인으로 부르다가, 곧 누구의 엄마가 되었고, 이제 우리 이름은 사라지고 아이들 이름만 남았다. 만난 지 삼십 년 정도 지났기에  얼굴 빛깔만 봐도 뭐가 불편해서 저러는구나, 짐작한다. 그러니 묵은지 냄새 풀풀 나는 사이다.


친구들이 제각기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낸다. 후식으로 먹을 과자와 곁들여 먹을 부추김치, 우리의 오늘을 축하할 와인이 목에 리본을 단 채 등장한다. 약사인 친구는 자기 가족용으로 산 마스크를 한 장씩 나눠 준다. 아무런 의논 없이 가져온 그들의 선물은 오래 묵은 우정만이 줄 수 있는 소소한 배려다.


식사 마칠 때까지 주야장천 눌러쓰고 있는 친구의 모자를 억지로 벗겼더니 머리가 가관이다. 그동안 집에만 있느라, 미장원 출입을 삼가느라 헤어스타일이 엉망이다. "순이 머리 같아" 깔깔 웃다 보니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가 되었다.  


며칠 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다가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표정하고 딱딱한 얼굴이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입가에 팔자 주름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들어앉았다.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잃어버린 게 있었다. 사람 만날 일이 없으니 종일 입 다물고 있고, 게다가 웃을 일이란 없었던 게다.

다음 날 나는 강변을 산책할 때 마스크 속에서 계속 미소 짓는 연습, 웃는 연습을 했다. 입꼬리가 올라가 팔자 주름이 없어지기를 바라며.


잇몸을 드러내며 소리 내어 웃는 친구를 보니 행복했다. 나도 쟤처럼 웃고 있구나, 느낄 수 있었다.


친구들은 저녁 여섯 시가 되어서야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우린 당분간 돌아가며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음 달엔 아마 국수를 먹을 것 같다. 한 친구가 미리 자신 있는 메뉴를 선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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