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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19. 2020

해마다 이맘때면

왜 하필 우리 집이니?


뽀시락, 뽀시락.

고민이다.

봄이면 찾아오는 저 녀석들 때문에.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 집은 전쟁이 시작된다.


이사 온 집은 인테리어를 해 놓은 집이었다. 새로 손볼 게 없는 게 이 집을 선택한 이유기도 했다. 집을 고치거나, 철마다 가구를 옮기는데 나는 무심하다. 가구는 이사 올 때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다음 이사 갈 때까지 움직이는 법이 없다. 레인지 후드도 잘 틀지 않는다. 팬 돌아가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다. 그래서 후드 뒤편은 늘 고요하고 어둡고 조용하다.


부스럭. 덜거덕.

혼자 있을 때 들으면 섬뜩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주 작은 무엇이 내가 사는 공간을 침입했다.


“소방서에 연락해보면 어때?”

남편이 제안한다.


작년에도 그 전 해에도 남편은 같은 말을 했다. 몇 년 전 어느 조류학자의 강의를 듣다가 문득 생각나서 물었더니, 그는 소방서에 연락해 보라 했다. 전봇대 같이 손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벌이 집을 지으면 119 구조대가 사다리를 이용해 제거해 준다나. 그 말을 전해 들은 남편은 해마다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바깥에 나가서 우리 집을 올려다봤더니 -7층이라 잘 보이진 않지만 -다른 집과 달랐다. 구멍이 하나 더 있었다. 왜 저런 게 있을까? 집을 수리하면서 후드 배출구의 위치를 바꿨나 보다. 공사 마감을 제대로 안 했는지 가장자리가 우툴두툴하다.  철사인지, 콘크리트 조각인지가 가장자리에 둥글게 붙어서 마치 왕관을 쓴 것 같았다.

 

세상에, 녀석의 눈에는 저게 나무의 오목한 홈으로 보였나 보다. 좋은 곳 다 두고 이곳을 찾아오다니. 분명 엉뚱한 녀석이다.



 아파트는 지은 지 이십 년이 지났다. 그 해에 나라 잔치가 있어서 외국 손님들이 묵을 곳이 필요했다. 숙소로 쓸 아파트를 세우면서 정원에 고급 수종의 나무를 많이 심었다. 덕분에 세월이 지나면서 건물은 낡았지만, 숲은 갈수록 울창해졌다.


동과 동 사이의 메타세쿼이아, 튤립나무는 14층에 닿을 만큼 자랐다. 부엌 창으로 내다보면 봄에는 매화, 산수유, 목련, 살구로 울긋불긋 꽃 대궐이다.




숲이 짙어지자 새들이 모여들었다. 아파트 뒤쪽에 강이 있으니 새들이 살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산책할 때면 직박구리, 박새, 붉은 머리 오목눈이, 까치, 참새, 온갖 새들을 만난다. 포르르, 짹짹 소리 내며 날아다닌다. 청설모가 재빠르게 나무를 탄다. 느릿느릿 길고양이가 산책로를 지나간다. 맞은편 동 앞에는 아파트 8층 높이의 느티나무가 늠름하게 서 있다. 


저렇게 좋은 곳을 두고 왜 하필 우리 집 후드에 둥지를 틀었을까?





아침이면 베란다 창틀에 앉아 우리를 쳐다보는 녀석도 있다.


" 유리가 있는 걸 알까?"

"그럼, 쟤들 똑똑해."


강변 이어선지 우리 집엔 거미도 많이 찾아온다. 벌레가 두렵고 무서운 건 예측하지 못한 데서 불쑥 나타나기 때문이다. 두렵지 않으면 눈 질끈 감고 휴지로 누르지 않는다. 무섭지 않으면 벌레를 감싼 휴지를 화장실 변기에 떠내려 보내는 짓 따위 하지 않는다. 나도 누구처럼 신문지나 먼지떨이 위에 녀석을 곱게 얹어 춤추듯 창밖으로 날려 보내는 공덕을 쌓고 싶다.


혼자 집에 있을 때 후드에서 소리가 나면 은근히 무섭다. 갑자기 후드 뚜껑이 우당탕 열리고 둥지랑 아기 새가 쏟아져 나오는 상상을 한다. 그래서 난 오늘도 북적거리는 소리에 후드를 틀었다. 봐 주렸더니, 안 되겠어!


어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데 녀석들이 시끄럽게 재잘대는 게 아닌가? 아주 신났다. 귀 기울여 들으니 한두 마리가 아니다. 벌써 새끼를 낳았는지 모른다. 나는 마치 녀석들이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시끄러워. 이제 그만 이사 가!”

 갑자기 소리가 뚝 그쳤다.


내 목소리를 들었나 보다.




새는 봄에만 찾아왔다. 나무와 대지가 봄 냄새를 맡고 들썩이면 우리 집 후드도 어수선하다. 우린 늘 같은 말을 하고, 작은 나무 막대기로 레인지 후드를 몇 번 통통 두드리고, 그래도 시끄러우면 후드를 켜 놓는다. 한두 달 부스럭대는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봄이 지나간다.


소방서에 연락해보라고 남편이 말할 때마다 나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사다리차 타고 올라가 새가 있을지 모를 비좁은 구멍에 불을 비추거나 막대라도 집어넣으면 어떡하나. 만일 어미가 알을 품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럴 바에야 잠깐 참는 게 나았다. 나는 이미 녀석들에게 적응했는지 모른다.


우리 집을 찾아온 엉뚱한 새에게 묻고 싶다. 왜 하필 우리 집이니? 여기가 왜 좋아? 혹시 아직 알을 낳지 않았다면 건너편 느티나무로 이사 가는 건 어떠니. 뭐라고, 큰 새도 안 오고 바람도 불지 않아 따뜻하다고? 게다가 쥐랑 청설모도 올라오지 못한다고? 흠, 그럴 수도 있겠다. 고대광실도 마음이 불편하면 살기 싫은 법이지. 그렇게 마음에 들면 한 철 못 빌려줄 것도 없어. 단, 몸 풀면 얼른 떠나는 거야.


달력의 날짜는 벌써 오월 중순을 가리킨다. 우리 집 후드가 고요해지면 봄이 가고 여름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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