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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21. 2020

AI와 대화하기

지니도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걸까?


  나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는 아니지만 새로 접하는 것에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딸네 집에 며칠 있을 때 “기가 지니, 음악 틀어줘.” 하던 게 재미있어서 집에 오면 AI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건비 때문인지 통신사에서 설치 기사를 보내주지 않았다. 자가 설치를 해야 한다.


  이런 일을 할 때마다 우리는 다툰다. 남편도 나도 성질이 급하다. 한 사람이 열심히 설명서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다른 한 사람은 성급하게 기기를 켰다 껐다 하고, 리모컨을 서로 먼저 작동해 보려고 빼앗아 분란이 일어난다. 결국 남편이 “그럼, 잘하는 네가 해라.” 하고 손 털 기세가 되면 나는 급격히 기가 죽어 리모컨에 문제가 있는 양 물끄러미 들여다보거나 설명서를 다시 읽는 시늉을 한다. 남편이 베란다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와 다시 기기 작동을 해보려고 마음먹을 때까지.


  그러다 어느 순간 TV가 켜지고 연결이 잘 되었다는 신호가 팡파르처럼 울려 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집은 평화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된다. 성공 버튼을 누른 사람은 한껏 능력자인 양 으쓱대고, 지켜보던 사람은 상대를 인정하는 미소를 짓는다. 아무려면 어때, 고민이 해결됐는데. 나란히 앉아 눈 앞에 펼쳐질 신세계를 기다린다.


  “기가 지니, TV 틀어주세요.”

  “네?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TV 틀어달라고.”

  “…”


  뭐가 잘못된 걸까? AI가 알아듣지 못한다. 이런, “기가 지니”라고 부르는 걸 빠트렸다. 다시 반복해도 AI는 차갑고 냉랭한 목소리로 “무슨 말씀인지요?” 한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저녁 모임에서 무슨 말끝에 “TV를 털어”라고 했더니, 옆자리 남자가 “틀어”라고 고쳐줬다. 사투리가 문제였구나.


  “기가 지니, 소리를 크게 해 주세요.”

  잠시 머뭇거리더니 지니가 대답한다.


  “소리는 키워라 줄여라, 말씀해 주세요.”


  소리는 크게 하는 건가, 키우는 건가?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지니가 알아듣게 말하라고 남편이 타박한다. 참견이 듣기 싫다.


  “기가 지니, 다니엘(남편의 세례명) 보고 좀 조용히 있으라고 해 주세요.”


 




 

갑자기 TV에 성경 다니엘서가 뜨더니, 지니가 읽기 시작한다.


 “다니엘서 1장,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통치 제 삼 년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


  지니도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걸까?




  그동안 사투리 때문에 놀림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는 AI까지. 그런 놀림이 마음을 위축시키는 건 사실이다.

 상대는 이어지는 나의 뒷말보다 사투리에 집착해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놀린다. 그럴 경우 의연하게 대처한다고 꺼내는 게, 내 고향이 그 시대의 중심 도시였으면 표준말이 되었을 거라는 간 큰 이야기다. 농담 삼아 꺼내지만 이런 말을 할 때는 분위기 파악을 잘해야 한다. 정치, 고향, 종교 이야기는 하지 말라 했으니.

의견이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그런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그만하자고 딱 부러지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치점을 찾을 수 없다고 보는 거다. 분위기가 씁쓸해진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말이 점점 줄어든다.


  오르한 파묵은 2005년 11월 발간된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분열된 터키에 대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한다. 


터키의 동양적인 충동과 서양적인 충동 사이의 끝없는 대립이 평화롭게 해결되리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터키가 두 가지 정신을 갖는 것, 두 가지 서로 다른 문화에 속하는 것, 그리고 두 가지의 영혼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 저는 허구를 쓰는 작가이므로 그게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죽이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을 많이 하면 하나의 영혼만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분열되어서 아픈 것보다 더 문제지요. 제 생각은 그렇답니다. 터키의 정치가들, 즉 나라가 하나의 일관된 영혼을 가져야 하고 동양이나 서양 어느 한쪽에 속하거나 민족주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가들에게 제 생각을 알리고 싶답니다. 저는 일원론적인 관점에는 비관적이지요. 

 '작가란 무엇인가 1'(권승혁. 김진아 옮김, 도서출판 다른)


 

  “기가 지니, 재즈 틀어주세요.”

  “기가 지니, 이문세 노래 틀어주세요.”

  “기가 지니, 소리 키워주세요.”


  지니와 나는 제법 호흡이 맞을 것 같다.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더니 오른쪽에 놓인 서너 대의 무인 주문기 앞엔 사람들이 있고, 계산대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인 주문기를 한번 써 볼까, 하다가 나는 계산대에서 주문했다. 줄 설 필요가 없었으니까. 나오면서 보니 기계로 주문하는 사람들은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만지며 노는 것처럼 즐거워 보였다. 


혹시 그들은 낯선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는 게 불편한 건 아닐까? 표정 짓고, 말하고, 눈으로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성가신 건 아닐까? 어느 틈에 기계와 대화하는 게 더 편안하고 익숙한지 모른다. 

 

키오스크 시대가 되어간다. 슈퍼, 편의점, 식당처럼 우리 집도 남편과 주고받는 말보다 AI와 하는 말이 더 많아질지 모른다.



< 수필과 비평 작가회의 제25집 동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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