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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Oct 21. 2020

아름다움과 두려움, 죽음의 낯선 얼굴

『체르노빌의 목소리』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자동차로 집에서 십 분 거리에 공단이 있다. 그곳 플라스틱 공장에서 불이 난 적이 있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매캐한 냄새가 날아와 나는 창문을 닫아야 했다. 사이렌을 울리며 소방차들이 달려갔고, 불은 몇 시간 만에 꺼졌다. 우리는 불구경을 했고, 인명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1986년 4월 26일 1시 23분 58초.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제4호 원자로가 몇 차례의 폭발 후 무너졌을 때 벨라루스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불꽃을 바라봤을 것 같다. 아이들을 안아 들어 올리면서 그들은 일렁이는 불꽃을 봤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 가까운 농가는 발전소에서 3킬로미터 거리였으니, 우리 집에서 공단까지의 거리였다.


벨라루스는 우리가 ‘백 러시아’라 부르던 인구 1천만 명의 작은 농업 국가다. 사고 후 벨라루스는 485개 마을을 잃었고, 그중 70개 마을이 매장됐다. 정부는 사람들을 피신시키고, 우물을 메우고, 농작물을 뽑고, 동물들을 죽였다. 흙으로 흙을 덮었다. 하지만 이건 사흘이 지나서였다. 엉겁결에 친정에 돌려줄 빈 유리병을 들고 집을 나선 아낙도 있었다. 아무런 설명도 주의도 주민들은 지 못했다. 창문을 닫아야 한다. 밖에 빨래를 지 마라. 밭의 마늘과 감자, 버섯을 먹으면 안 된다. 이런 기본적인 생존 지침도 없었다.


 사람들은 세상을 아이처럼 보았다. 군사적 핵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거대한 버섯구름 모습이었고, 평화적 핵은 안전하게 빛 밝히는 전구 모습이었다. 사고 후 5천만 퀴리의 방사성 핵종이 방출됐고 그중 70퍼센트가 벨라루스에 도달했다. 국민의 5분의 1인 210만 명이 오염 지역에 거주했고, 그중 어린이는 70만 명이었다. 휘발성 물질이 대기 중에 올라가 6일 후에는 일본, 8일 후에는 중국, 10일이 지나서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측정됐다. 체르노빌이 세계적 문제가 되는데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땅 아래 흐르는 지하수를 차단하지 못했으면 방사능 오염수가 전 유럽으로 흘러갈 뻔했다.


인디언 타고타 족의 인사말에 ‘미타쿠예 오야신!’ 이란 말이 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의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근 20년에 걸쳐 자료를 모았다. 이 책은 블랙박스에 담긴 것 같은 그들의 목소리다. 다급한 현장 풍경이 있고, 대책에 무능한 정부, 진실을 은폐하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랑은 흘렀고, 삶은 이어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갔지만, 책임감 때문에 돌아서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소방관, 헬기 조종사, 광부, 군인, 고립된 유치원 아이들을 구하러 달려간 술주정뱅이 운전기사. 위기 상황에사람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영웅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주민들은 이게 색다른, 형체가 보이지 않는 새로운 전쟁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대피시키러 돌아다니던 사람들조차 민들이 권하는 음식을 같이 먹기까지 했다. 수습 대원들을 파견한 실무자들도 방사선 피폭에 대해 무지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왜 자기들 밭을 갈아엎고 마늘, 양배추를 뽑아내는지 이해를 못 했어. 집안으로 들어가니 오븐이 켜져 있고 고기를 굽는 중이더군. 측정기를 갖다 댔더니 이건 뭐, 오븐이 아니라 소형 원자로였소. "젊은이들 이리 오시오. 와서 듭시다. “ 부르더군.


원자로가 터졌을 때 노인들은 말했다. 우린 무서운 건 이미 다 겪었어. 그 전쟁(1941년부터 900일간 이어진 레닌그라드 봉쇄)에서도 살아남았잖아.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세상에 없어. 들판이나 숲에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꽃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벌이 보이지 않았다. 낚시를 하려니 지렁이가 사라졌다. 지렁이가, 평범한 지렁이가 순식간에 땅속 1미터 깊이로 들어갔다.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방사선은 형체가 없었다.


"아기를 가졌어요?"

"아니요."

의사의 질문에 여자는 남편을 돌보려고 거짓말을 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됩니다. 입 맞추면 안 됩니다. 만지면 안 됩니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능 오염 덩어리입니다.”

의사가 주의를 준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봤다. 아기를 가진 여자들은 유산하거나 사산했고, 정상이 아닌 아기를 낳았다.  


시간이 지나서 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말을 꺼냈을 때 당국은 불순한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그들을 매도했다. 친지들에게 소식을 알리는 전화는 자주 끊겼고, 신문에 기고한 글은 실리지 않았다. 그들은 ‘주의’ 경고를 받았다. 국가는 ‘적’과 ‘우리’, ‘협력’만 외쳤다. 주민을 어떻게 대피시켰는지, 어떻게 짐승을 데리고 나왔는지에 대한 기록물이 없다. 비극을 촬영하는 것은 금지되었고, 영웅만 촬영할 수 있었다. 항상 각서를 써야 했다. 결과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각서.


-첫 외국 기자들이 왔다. 첫 촬영 팀도 왔다. 그들은 플라스틱 멜빵바지에 헬멧을 쓰고 발에는 고무 덧신을 손에는 고무장갑을 꼈으며, 카메라까지 특수 케이스에 넣어서 가지고 왔다. 한편 그들을 수행한 우리 통역사 아가씨는 여름 원피스에 샌들을 신고 있었다.
-왜 새들이 눈먼 것처럼 창문에 떨어져 죽느냐고 운전기사가 의아해했다. 기사는 새가 정신 나가거나 잠이 덜 깬, 마치 자살하는 것 같았던 그 장면을 잊기 위해 일을 마친 후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였다고 했다.
달에 온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새하얀 백운석이 깔린 들판이 저 멀리 수평선까지 이어졌다. 땅의 오염된 지층을 벗겨내 매장하고 그 자리에 백운석 가루를 뿌린 것이었다. 지구가 아닌 것 같았다. 지구가 아니다.
오랫동안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이야기를 써보려 했다. 원고를 잡지사에 투고했다. 답변이 돌아왔는데, 내 글이 문학 작품이 아니라 악몽을 재구성한 거란다. 생각해봤다. 왜 체르노빌에 대한 글이 없을까? 우리 작가들은 아직 전쟁과 스탈린의 수용소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이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사회주의 수용소에서 살았다. 이제 소비에트 연방은 무너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 크고 강한 나라의 도움을 기다렸다. 내가 내린 진단은… 알고 싶은가? 감옥과 유치원이 섞인 곳. 거기가 바로 사회주의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사람이 국가에 마음과 양심, 심장을 내어줬지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 돌아온 것은 배급이었다. 그리고 각자 운에 따라 많이 받는 사람, 적게 받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공통점이라곤 그 배급이 영혼에 대한 대가라는 것이었다.


3주년이 되는 날, 벨라루스 야당은 시위를 계획했다. 정부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대청소를 시켰다. 공원에 인파가 모이기 시작했다. 인파는 점점 불어났다. 경찰이 도망가자, 권력이 사라졌다. 집회가 시작되었고, 평범한 사람들이 올라가 대본 없이 연설했다. 그곳은 체르노빌 재판소였다.


-사람은 사망 후 1천 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불타는 입자’는 계속 살 것이다. 그리고 이 먼지는 또다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우리는 아이들을 살리기로 했다. 20톤에 달하는 어린이용 식품이 실린 냉장 트럭이 몰다비아에서 왔다. 물건을 받아 든 남자가 울었다. 음식이 그의 아이들을 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운 이유는 누군가 그들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희망이 있다.
-3년 사이 풀밭에 앉아도, 꽃을 꺾어도 안 된다는 생각이 아이들 머리에 깊숙이 새겨졌다. 아이들을 외국에 데려가 숲에도 가고 수영해도 괜찮아했을 때 아이들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물에 들어갔다. 풀을 쓰다듬고…그 모습을 본 사람들만 안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세상을 되돌려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과거를,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돌려줄까?


이 책의 부제목은 '미래의 연대기'이다. 연대기(Chronicle)란 '시간'을 뜻하는 그리스어 'chronos'에서 온 용어로 상당한 기간에 걸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산문이나 운문으로 기록한 글이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작가는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 사고를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증언한다.


-조종사들은 내부 온도가 60도까지 올라가는 헬기로 하루에 네다섯 번씩 원자로 300미터 상공에서 200~300톤에 달하는 냉각제를 투여했소. 방사선 수치가 1천800 뢴트겐 인 상공에서 불을 내뿜는 구멍을 제대로 보려면 헬기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다봐야 했소. 나는 그들이 영웅이라고 생각하오.
-대피하는 길에 교회를 발견하면 모두 거기에 들어갔어요.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무신론자도 공산주의자도, 모두 빠짐없이 교회로 갔어요.
-체르노빌레츠. 체르노빌 야광 벌레. 아이들이 놀림감이 되었다. 아무도 곁에 오려하지 않았다. 따뜻한 4월의 비가 내렸다. 7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빗방울이 수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방사선이 무색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물웅덩이는 초록색이나 선명한 노란색이었다.
-한 마을에 차를 세웠는데 그 정적이 놀라울 정도였다. 새조차도, 아무것도 없었다. 길을 걸어도 적막했다. 사람이 떠나고 없어 민가가 죽었다 하더라도, 새도 한 마리 없었고 모든 것이 잠잠했다. 새 없는 땅은 그때 처음 봤다. 모기도, 아무것도 날아다니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말을 썼어요. 진짜 남자, 강인한 남자, 원자로와 싸우는 남자. 그야말로 야만 행위였어요. 자신을 위한 두려움이 없었어요. 체르노빌 이후 우리는 ‘나’라는 단어를 배우게 됐어요. 저절로 그렇게 되었어요.
-왜 동네방네 다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야? 지금 냉전 중이라는 걸 잊지 말게나. 불은 이미 다 껐어.
체르노빌 원자로는 핵폭탄의 주원료인 무기용 플루토늄을 생산했다. 이미 450 종류의 방사선 핵종이 땅에 내려앉았다. 이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을 350개나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물리에 대해 말해야 했다. 물리의 법칙을 논해야 하는데, 적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정부는 적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악당이 아니었다. 무식과 협력의 음모에 말려든 것뿐이었다. 그들이 습득한 삶의 원칙은 ‘튀지 말 것’, ‘잘 보일 것’과 같이 기계적이었다. 사람의 나라가 아니라 권력의 나라였다. 국가가 중요하다는 데엔 아무도 반기를 들지 않는다. 사람 생명의 귀중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위원회 간부들은 자기 자식들을 조용히 어디론가 먼 곳으로 보냈다. 그들은 답사할 때마다 방독면과 방호복을 갖춰 입었다. 민스크 외곽에 가축을 특별히 관리했다. 가장 혐오스러운 사실이다. 이제 역사로 남았다. 범죄의 역사로.




인간의 살갗 아래에는 얼마나 잔인함이 숨어 있을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줄리안 반스가 말한다. “역사는 승자의 거짓말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회고로 이어진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30년이 훌쩍 지났다. 우리가 이 사건에 대해 기억하는 건 무엇일까? 우리와 상관없는 먼 나라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 주민들의 대피. 콘크리트로 덮은 발전소. 사망률. 방사능 피폭 후유증.

2011년 3월 11일, 안전하게 지었다는 일본 후쿠시마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있었다. 

 2020년 10월 27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농도를 낮춰서 바다로 방류하겠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책을 읽고 싶었다.

오늘날 우리는 싸고 안전하다는 원전을 두고 다른 에너지원을 찾는 걸 미련하게 여기기도 하고, 원전에서 다른 에너지원으로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하느라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나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 말할 수 없었다.


사고가 난 지 5년 후 벨라루스의 어린이 갑상샘 암 발병은 30배 증가했다. 선천성 기형, 신장 질환 소아 당뇨도 늘었다. 10년 후 벨라루스 인의 평균 수명은 55세로 줄었다.

체르노빌은 과학에 대한 신의 경고인가? 과학이 문제인가, 그것을 다루는 인간이 문제인가?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인가?


체르노빌 원자력 연구소는 호기심 많은 유럽인들의 관광 상품이 되었다. 관광객들은 야생의 아름다움과 죽음의 두려움이 어우러진 도시를 살펴보고, 원자로 석관을 견학한다. 순국 영웅을 기리는 벽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점심을 보드카를 곁들여 먹는다. 하지만 그곳에서 낚은 생선을 먹거나 열매나 버섯을 따면 안 된다. 들꽃을 꺾는 것도 금지다. 체르노빌 원자로는 봉인되었지만 죽지 않았다.


한 과학자가 말한다. "화학이나 물리, 그런 것 말고 나는 이다음에 태어나면 양치기가 될 거요."



『체르노빌의 목소리』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새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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