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목소리』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사람들은 우리가 왜 자기들 밭을 갈아엎고 마늘, 양배추를 뽑아내는지 이해를 못 했어. 집안으로 들어가니 오븐이 켜져 있고 고기를 굽는 중이더군. 측정기를 갖다 댔더니 이건 뭐, 오븐이 아니라 소형 원자로였소. "젊은이들 이리 오시오. 와서 듭시다. “ 부르더군.
-첫 외국 기자들이 왔다. 첫 촬영 팀도 왔다. 그들은 플라스틱 멜빵바지에 헬멧을 쓰고 발에는 고무 덧신을 손에는 고무장갑을 꼈으며, 카메라까지 특수 케이스에 넣어서 가지고 왔다. 한편 그들을 수행한 우리 통역사 아가씨는 여름 원피스에 샌들을 신고 있었다.
-왜 새들이 눈먼 것처럼 창문에 떨어져 죽느냐고 운전기사가 의아해했다. 기사는 새가 정신 나가거나 잠이 덜 깬, 마치 자살하는 것 같았던 그 장면을 잊기 위해 일을 마친 후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였다고 했다.
달에 온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새하얀 백운석이 깔린 들판이 저 멀리 수평선까지 이어졌다. 땅의 오염된 지층을 벗겨내 매장하고 그 자리에 백운석 가루를 뿌린 것이었다. 지구가 아닌 것 같았다. 지구가 아니다.
오랫동안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이야기를 써보려 했다. 원고를 잡지사에 투고했다. 답변이 돌아왔는데, 내 글이 문학 작품이 아니라 악몽을 재구성한 거란다. 생각해봤다. 왜 체르노빌에 대한 글이 없을까? 우리 작가들은 아직 전쟁과 스탈린의 수용소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이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사회주의 수용소에서 살았다. 이제 소비에트 연방은 무너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 크고 강한 나라의 도움을 기다렸다. 내가 내린 진단은… 알고 싶은가? 감옥과 유치원이 섞인 곳. 거기가 바로 사회주의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사람이 국가에 마음과 양심, 심장을 내어줬지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 돌아온 것은 배급이었다. 그리고 각자 운에 따라 많이 받는 사람, 적게 받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공통점이라곤 그 배급이 영혼에 대한 대가라는 것이었다.
-사람은 사망 후 1천 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불타는 입자’는 계속 살 것이다. 그리고 이 먼지는 또다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우리는 아이들을 살리기로 했다. 20톤에 달하는 어린이용 식품이 실린 냉장 트럭이 몰다비아에서 왔다. 물건을 받아 든 남자가 울었다. 음식이 그의 아이들을 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운 이유는 누군가 그들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희망이 있다.
-3년 사이 풀밭에 앉아도, 꽃을 꺾어도 안 된다는 생각이 아이들 머리에 깊숙이 새겨졌다. 아이들을 외국에 데려가 숲에도 가고 수영해도 괜찮아했을 때 아이들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물에 들어갔다. 풀을 쓰다듬고…그 모습을 본 사람들만 안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세상을 되돌려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과거를,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돌려줄까?
-조종사들은 내부 온도가 60도까지 올라가는 헬기로 하루에 네다섯 번씩 원자로 300미터 상공에서 200~300톤에 달하는 냉각제를 투여했소. 방사선 수치가 1천800 뢴트겐 인 상공에서 불을 내뿜는 구멍을 제대로 보려면 헬기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다봐야 했소. 나는 그들이 영웅이라고 생각하오.
-대피하는 길에 교회를 발견하면 모두 거기에 들어갔어요.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무신론자도 공산주의자도, 모두 빠짐없이 교회로 갔어요.
-체르노빌레츠. 체르노빌 야광 벌레. 아이들이 놀림감이 되었다. 아무도 곁에 오려하지 않았다. 따뜻한 4월의 비가 내렸다. 7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빗방울이 수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방사선이 무색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물웅덩이는 초록색이나 선명한 노란색이었다.
-한 마을에 차를 세웠는데 그 정적이 놀라울 정도였다. 새조차도, 아무것도 없었다. 길을 걸어도 적막했다. 사람이 떠나고 없어 민가가 죽었다 하더라도, 새도 한 마리 없었고 모든 것이 잠잠했다. 새 없는 땅은 그때 처음 봤다. 모기도, 아무것도 날아다니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말을 썼어요. 진짜 남자, 강인한 남자, 원자로와 싸우는 남자. 그야말로 야만 행위였어요. 자신을 위한 두려움이 없었어요. 체르노빌 이후 우리는 ‘나’라는 단어를 배우게 됐어요. 저절로 그렇게 되었어요.
-왜 동네방네 다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야? 지금 냉전 중이라는 걸 잊지 말게나. 불은 이미 다 껐어.
체르노빌 원자로는 핵폭탄의 주원료인 무기용 플루토늄을 생산했다. 이미 450 종류의 방사선 핵종이 땅에 내려앉았다. 이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을 350개나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물리에 대해 말해야 했다. 물리의 법칙을 논해야 하는데, 적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정부는 적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악당이 아니었다. 무식과 협력의 음모에 말려든 것뿐이었다. 그들이 습득한 삶의 원칙은 ‘튀지 말 것’, ‘잘 보일 것’과 같이 기계적이었다. 사람의 나라가 아니라 권력의 나라였다. 국가가 중요하다는 데엔 아무도 반기를 들지 않는다. 사람 생명의 귀중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위원회 간부들은 자기 자식들을 조용히 어디론가 먼 곳으로 보냈다. 그들은 답사할 때마다 방독면과 방호복을 갖춰 입었다. 민스크 외곽에 가축을 특별히 관리했다. 가장 혐오스러운 사실이다. 이제 역사로 남았다. 범죄의 역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