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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Nov 22. 2020

되돌아보는 중국 여행

북경, 상해, 샤먼



-그때 다녀오길 정말 잘했지.

요즈음 친구들과 주고받는 말이다.


이렇게 외국 문이 닫힐 줄 누가 알았을까.


그것보다 험한 일은 세상에 없을 거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으로 900일 봉쇄를 겪은 러시아 할머니들이 그랬다지 않은가. 하지만 그 후 체르노빌 원전 사건이 일어났으니, 우리도 앞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겪기 전엔 알 수 없다.


브런치에서 제기 차는 중국 사람들에 관한 글 읽었다.

그게 언제던가? 아주 오래전이다. 북경에 갔는데 어른들이 제기 차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바둑 두는 것과 비슷한 놀이문화로 보였다. 중국 제기를 하나 사 왔다. 제기를 차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기념으로.


친구 아버지는 외국 여행을 할 때마다 더도 덜도 아닌 5 만 원정도의 기념품을 사 왔다. 돌아가시니 그간 사 모은 기념품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당사자에겐 소중한 추억이지만, 타인에겐 낯선 물건일 뿐이다. 버리는데 돈이 많이 들었다 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버려야 하는데, 아직 차곡차곡 쟁여두고 있다.

중국 제기는 우리나라 것보다 크다. 촌스러운 핑크색 깃털이 달려 있는데, 생각나서 꺼내봤더니 빛깔만 바랬을 뿐 여직 그대로였다.





2016년에 상해를 갔고, 19년엔 샤먼을 갔다. 앨범이 있기에 희미해졌지만 추억을 소환할 수 있었다. 제기를 산 북경 여행은 사진 폴더를 찾을 수 없었다. 날짜 안 적힌 인화 사진만 남아 있다. 십 년 전쯤 일 것 같은데. 디지털 문화의 문제점이다.




가족에게서 벗어나 처음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간 게 마흔아홉 되던 해 봄이었다. 전 해에 막내가 대학을 갔기에 새로운, 기대하지 않았던 세계가 펼쳐졌다. 그 무렵 좀 우울했다.

캄보디아 가는 데 인원 한 명이 부족하단 말에 덜컥 승낙했다. 남편은 불편한 눈치였다. 다음에 함께 가자고 했다. 못 들은 척하고 다녀왔는데, 준비 없이 간 여행이라 후유증이 컸다.


이전에 운동이라곤 해본 적이 없었다. 캄보디아의 궁에는 75도 각도의 계단이 있다. 가이드가 힘드신 분은 올라가지 마세요, 하는데 내가 힘든 분에 속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어서 내려왔다. 다음 날 버스 계단을 못해서 가방 나르고, 부축하느라 친구가 고생이 많았다. 다녀와서 병원에 갔더니 무릎에 물이 찼다고 했다. 그 여파로 무릎 모양이 울퉁불퉁 이상해졌다.


상해는 남편과 갔다. 공항에서 휠체어로 이동했다. 안 갔어야 하는데, 번복하는 게 귀찮아 미련스레 갔다. 한 달 전 식당에서 10센티도 안 되는 작은 턱을 못 보고 지나가느라 발목이 한 바퀴 돌아버렸다. 그 무렵 유행하던 통굽 신발을 신고 있었다. 순간 깨달음이 왔다. 아, 엄청 많이 다쳤구나. 택시 기사가 집으로 가려는 나를 말려 응급실로 데려갔다. 죽을 정도 아니면 병원에 안 가는 습관이 있다.

의사는 한 달 정도 반 깁스하면 될 것 같다 했다. 아닌가? 의사가 상황을 보자 했던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한 달 후 깁스를 풀고 상해로 날아갔다. 아니, 의자에 앉아서 갔다.





사진 속 나는 땀을 흘리고 있다. 아픈 표정이 역력하다. 지금 생각하니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붕대를 감고 여름 상해 거리를 남편 팔에 기대어 절뚝거리며 돌아다녔다. 중국은 내가 생각했던 중국이 아니었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팁을 주려 했더니 기사가 받지 않았다. 휘황하게 불 켜진 야경과 고개 젓는 기사의 얼굴이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난징 동루, 와이탄, 상해 임시정부, 신천지. 한적한 프랑스 조계지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소문난 맛집이라는 하이디타오에서 두 시간 넘게 기다려서 그 유명한 훠꿔를 먹었다. 애타게 기다리는 동안 우리 동네 샤브 집이 떠올랐다.


다녀온 후 발목 수술을 해야 했다. 저만치 앞서가는 마음을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시기였다.









3년 후 샤먼을 갔다. 시장에서 음식을 사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달걀 크기만 한 밀가루 안에 새우는 꼬리만 들어 있어서 친구들과 눈 껌뻑이며 쳐다보기도 하고 해산물은 믿지 말라는 충고에 제일 맛있었다는 굴전을 놓치기도 했다.


샤먼의 명물은 ‘트루’인데 황토 같은 흙을 높이 쌓아 올려 만든 집이다. 5층 정도 높이로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흙에 찹쌀을 섞는다 했다. 속이 빈 둥근 아파트를 연상하면 된다. 외적이 쳐들어오면 입구의 문만 닫으면 안전하다. 우물도 있으니, 그 안에서 몇 달이고 버틸 수 있다.


 내부는 무협지 영화의 객잔 같다. 숙박도 가능하다 친구들이 호텔과 비교하는 통에 관심을 드러낼 수 없었다.





수박만큼 큰 노란 과일을 먹었는데 귤이라 했던가. 기억이 희미하다. 시원한 오렌지 맛이었다. 풍토에 따라 귤이 오렌지도 되고 탱자도 되고 노란 수박도 되는 것 같았다. 길가에 나지막한 나무가 호박같이 큰 열매를 매달고 낑낑대고 있었다. 과일도 나라를 닮는 걸까?


호텔 옆 광장에 저녁이면 사람들이 나와서 군데군데 모여 춤을 췄다. 아이와 노인, 아가씨와 청년이 함께였다. 현대 무용, 고전무용이 뒤섞였다. 친구들과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따라 할 만한 곳에서 함께 춤을 췄다.





하얀 운동복을 입은 남자는 간단한 동작을 열심히 반복하고 있었다. 남자는 다음날 아침에도 등장했다. 스무 명 정도가 열심히 남자의 동작을 따라 했다. 광장의 춤꾼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저마다 독특했다. 사람들은 여기서 춤추다 저기로 옮겨가고, 정해진 팀 없이 자유로웠다.










기름진 음식을 즐겨 먹는데, 차를 마시고, 운동을 하니 건강한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운동 문화가 부러웠다.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민원 넣을까?



<중국 제기 차는 모습이 궁금하신 분은 여기, @Teddyblue님의 브런치로.>

https://brunch.co.kr/@daramy/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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