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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Nov 21. 2020

Four minutes(4분)

상처의 치유



트럭으로 피아노를 운반 중이다. 기사 옆에 쪽진 머리를 한 할머니, 크뤼거 선생이 앉아 있다. 어딘지 완고해 보이는 그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가 듣기에 거북하다. 이런 건 음악이 아니지, 불쑥 채널을 돌린다.


크리스 크라우스 감독의 2007년 독일 영화 ‘Four minutes(4분)’에는 슈만, 모차르트, 슈베르트 음악이 흐른다. 재즈와 힙합, 강렬한 크로스 오브 음악도 연주된다. 영화는 일면 음악 영화로 보이지만, 상처와 치유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꽁꽁 싸매 놓은 상처는 안으로 곪는다. 신선한 공기를 만나야 상처에 딱지가 앉는 법인데.


장례식장에서 파이프 오르간으로 모차르트를 연주하던 크뤼거 선생은 오르간 위 거울에 시선이 꽂힌다. 아래에 자기의 연주를 손으로 따라 하는 소녀가 있다.


‘포 미니츠’(2007년)는 실존 인물인 독일 최고의 피아니스트 트라우드 크뤼거 여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녀는 60년간 교도소에서 자원봉사로 피아노를 가르쳤다. 크라우스 감독은 크뤼거 여사의 삶에 흥미를 느껴 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기획하며 준비하는데 8년이 걸렸다. 독일 연극계의 대모라 불리는 모니카 블라이프트로이가 크뤼거 역을 맡아서 차고 무뚝뚝한, 자로 잰 듯 행동하는 독일 할머니를 연기했다. 거칠고 반항적인 제니 역으로 1200대 1의 경쟁을 뚫고 모델이며 록 밴드였던 한나 헤르츠스프롱이 뽑혔다. 그녀는 5개월간 연습 후 이 역을 대역 없이 해냈다. 영화는 2007년 독일 아카데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크뤼거 역의 모니카 블라이프트로이(Monica Bleibtrei)



제니 역의 한나 헤르츠스프롱( Hanna Herzsprung)



제니는 폭력적이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다. 크뤼거 여사는 자신을 억제하는 데 능숙하다. 여간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두 사람은 다르다.


-그건 소음이야. 흑인 음악이야.

-그건 제 거예요. 저라고요.


음악에 대한 견해부터 다른 두 사람은 어느 것도 공유하지 못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소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스승과 계속 말썽을 일으키는 제자는 사사건건 부딪힌다.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까? 무엇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피아노 교습 첫 시간에 제니는 감독하러 들어온 간수를 초주검이 될 정도로 두들겨 팼다.


그녀를 연습시켜 경연대회에 출전시킬 수 있을까? 경연대회에 출전하고 입상하는 일은 사회의 주류로 편입되는 일인데. 선생은 다친 간수에게 사과하라고 제니에게 말한다. 마지못해 제니는 사과한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를 간수는 거부한다. 그는 제니를 은연중 괴롭힌다. 제니는 경연대회에 출전할 수 없게 된다.


2차 세계대전에 간호사로 종군한 크뤼거 선생은 동성애 애인을 배신해 참혹하게 죽게한 자책으로 평생 혼자 살았다. 사과를 받을 친구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아름다움, 재능은 사라지고 없다.

제니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경연대회에 나갔지만 12살 되던 해 시작된 양아버지의 겁탈로 가출한다. 사귀던 남자의 살인죄를 뒤집어쓴 건 삶에 아무런 의욕이 없어서다. 양아버지의 사과를 제니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받아들일 수 없다. 크뤼거 선생은 천부적 재능을 썩히고 있는 제니가 안타깝다.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의 접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잘못을 뉘우친 간수가 제니를 도와준다. 감옥을 탈출해 참가한 마지막 4분의 연주는 사과받지 못한, 이미 사과받을 시기를 넘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제니의 상처를 보여준다.


제니는 피아노를 부수는 것 같은 연주로 청중에게 자신의 상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린다. 슈만의 A단조 콘체르트는 재즈와 힙합이 뒤섞인 제니의 독창적인 슈만 변주곡이 된다.


무대 뒤에서 연주를 듣던 크뤼거 선생이 포도주를 마신다. 술을 마시지 않았던 그녀 아닌가.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번진다. 재즈는 음악이 아니라던 그녀 아닌가.

청중의 기립 박수가 쏟아진다.


한 번도 인사한 적 없던 제니가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크뤼거 선생에게. 스승과 제자, 둘 다 자신을 옥죄던 굴레에서 벗어났다. 경찰이 다가와 제니의 팔에 수갑을 채운다.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면 사과한다. 사과는 받아들여지기도, 거부당하기도 한다. 왜 어떤 사과는 받아들여지고 어떤 사과는 거부당하는 걸까.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는 무의미하다. 때를 놓친 사과는 되돌릴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모든 걸 되돌려 놓을 순 없지만, 닫힌 마음을 열어주기도 한다.


승화된 천재의 광기가 초인적 능력을 보여줬는지 모른다. 그녀의 생애를 압축한 듯한 4 분간의 폭발적인 연주. 청중은 이해했으리라. 그녀의 삶을, 그녀의 상처를.




#포 미니츠 Four minutes(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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