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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Nov 30. 2020

요리 배우는 남편

쓰임이 많을 거야



-요리를 배워야 하는데.


퇴직을 일 년 앞둔 남편이 얼마 전부터 이 말을 입에 물고 다닌다. 아파트 옆 문화센터에 ‘아빠 요리교실’ 강좌가 있어서 몇 년 전부터 요리에 관심 있는 남자들은 거기를 다녔다. 별일 없었으면 남편도 그곳에서 요리를 배우면 됐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 이후 요리 교실이 문을 닫았다. 요리를 배울 곳이 없다.


꼭 요리를 학원에서 배워야 하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르쳐 주면 되지. 그게 별 건가. 찌개 서너 개, 국 끓이는 법, 정도 가르쳐 주면 되지 않을까? 나는 생각에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찌개는 기본으로 된장찌개, 김치찌개, 동태찌개를 가르쳐 주고, 거기에 호박찌개도 붙이자. 지난번에 맛있는지 이거 어떻게 만드냐고 물었으니까. 국은 미역국, 된장국, 육개장 정도면 되지 않을까? 육개장은 손이 너무 가니 뺄까? 콩나물국이나 북엇국을 넣어도 되겠다. 콩나물국은 검색해 보고 가르쳐 줘야겠는걸. 어떻게 된 게 만들 때마다 맛이 다르니. 선생이 어리바리 헤매면 학생이 무시할 거니까 미리 들여다보고 가르쳐야지. 죽도 메뉴에 넣어야겠지. 전복죽, 쌀죽, 호박죽. 머릿속으로 그려 봤다. 가능할 것 같았다.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은 나의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럴까?


남편에게 작은 노트 한 권을 던져줬다.

-여기에 반드시 기록해야 해.

-필요 없어. 다 기억해.

-아니야, 요리 교실에 가면 다 적어. 학생은 그렇게 하는 거야.


나는 작은 노트가 남편이 어딜 가든 따라다니길 원했다.  


-그럼 오늘부터 바로 시작하는 거야. 일주일에 한 번. 단, 재료 준비도 학생이 하고 뒤처리도 학생 담당이야. 그게 요리의 기본이거든. 


저녁 식사로 돼지고기를 구워 먹을 예정이었기에 나는 남편에게 고기 굽는 법과 브로콜리 데치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브로콜리 썰기, 씻기, 소금 한 꼬집 넣고 끓는 물에 데치기.


잠시 선생이 한 눈 파는 사이에 학생은 물이 끓기도 전에 브로콜리를 냄비에 넣고, 뚜껑을 얌전히 닫아 놓았다. 고기 굽는 건 평소에 하던 터라 별 문제가 없었다. 불을 조절하며 고기를 구웠고, 접시에 성격대로 수셈 하듯 나란히 담았다.





브로콜리를 먹다가 남편이 말했다.

-다음에 데칠 때는 소금을 더 넣어야겠다. 좀 더 간이 배도록.


황당해진 나는 데칠 때 넣는 소금은 간하는 용도가 아니라는 걸 설명해야 했다. 

-소금은 채소를 파릇파릇하게 하는 거야. 

갑자기 불안해졌다. 식용유와 올리브유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 남자를 가르칠 수 있을까? 참기름과 들기름의 차이도 모르겠지. 고춧가루와 고추장의 용도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래도 차츰 나아지겠지.


다음 주엔 된장찌개를 만들기로 했다. 두 가지 버전을 가르칠 계획이다. 차돌을 넣은 찌게랑, 멸치 육수를 넣은 찌게. 멸치 국물을 내는 게 번거로우니 손쉽게 하는 다시 팩을 사놓을 예정이다.


남편이 요리를 왜 배우려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별 말을 나누지 않는다. 둘 다 이미 알고 있다. 이걸 배워 놓으면 쓰임이 아주 많을 거라는 걸.




부산이 시댁인 친구는 한 달에 두 번 요리사를 불러서 음식을 만든다. 요리에 자신 없는 친구는 이 음식을 들고 시댁에 내려간다. 시댁 냉장고에 빼곡히 넣어두면 시어른은 2주간 그 음식을 드신다. 이렇게 한 게 벌써 3 년이 넘었다. 시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신 후 혼자 있는 서울 시아버지를 위해 음식을 몇 년째 만들어 가는 친구도 있다. 그녀도 매번 곰국이랑 김치, 갖가지 음식을 가져간다. 친정에 가는 길이라며 음식이 든 낚시 가방을 들고 기차를 오르던 친구를 만난 적도 있다. 이들은 자기 시간이 거의 없다. 쉰 후반,  예순 살이 넘었어도. 


합가 하면 되지 않냐고 물으면 어른들이 거부하신다고 한다. 불편하다고. 

그러고 보면 여자들은 음식을 만들 줄 아니 거동이 가능할 때까지 혼자 살 수 있다. 하지만 음식을 못 만드는 남자는 혼자 살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딸이든 며느리이 요양원이든.


남편은 퇴직하면 제주 시댁에 한 달에 반 정도를 가 있고 싶어 한다. 그때가 되면 시어른들의 연세는 아흔다섯이 된다. 지금도 정정하시니 백세 넘어 까지 괜찮을 것 같긴 하지만, 노인들은 하루를 모르지 않나. 아무래도 돌봐드리는 손길이 필요할 것 같다. 남편이 요리를 배우려는 이유다. 그때는 저 노트가 쓰임이 있을지 모른다. 


-우리 요리 교실의 이름을 뭐라고 할 거야?

-수산나 깡패 교실.

수산나는 내 가톨릭 세례명이다. 


퉁명스레 대답하던 남편은 막상 진지한 표정이 되더니 요리 노트 겉면에 이렇게 적었다.

‘수 선생 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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