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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13. 2020

다들 힘든가 보다

그래도 좋았던 하루



토요일 오전에는 주로 신문을 읽는다. 어쩌다 신문을 세 부나 받게 되어서 주 중에는 두 부를 겨우 읽고, 주말에는 미안해서 작정하고 전부 읽는다. 토요일 신문의 북 리뷰와 문화 칼럼을 좋아한다. 이번에는 게임 광고 동영상에 대한 기사가 있어서 그 영상을 한 번 찾아봤다. 9분짜리였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광고를 두 번 보기는 처음이었다. 등장하는 배우들로 봐서 제작비가 많이 들었을 텐데. 코로나 영향으로 활황인 사업도 있는지 모른다. 웃으라고 친구들 카톡방에 동영상을 올렸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게 뭔지 모르는 걸까? 울적한 걸까?


점심 식사로 국수를 만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남편에게 요리를 가르쳐 주면서 어느 틈에 매일 부엌에 나란히 서게 됐다. 고명으로 쓸 호박이 없어서 김치를 얹기로 했다. 어떻게 썰어? 묻기에 쫑쫑 썰어요, 했다.

잠시 후 김치는 복음 밥용으로 잘게 썰려 있었다. 젓가락으로 집으니 김치가 우수수 떨어졌다. ‘쫑쫑’이란 단어는 채 써는 것인가, 다지는 것인가.

말 귀 못 알아듣는다고 선생은 학생을, 먹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고 학생은 선생을 나무랐다. 김치가 국물에 둥둥 떠 다녔다. 맛은 괜찮았다. 학생이 최고의 맛이라고 엄지 척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식후에 남편은 꼭 담배를 한 대 피운다. 내가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오 년 전(벌써 그렇게 되었나?) 손자를 이 년간 돌보게 되었을 때 남편은 피우던 담배를 전자 담배로 바꾸었다. 냄새가 안 나니 전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손자를 보내고 나서 남편에게 이상한 증상이 생겼다. 수면장애라 부르는 것들. 힘들어서 그런가, 퇴직할 때가 되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했다.

그런데 지난 삼 년간 점점 심해졌다. 거의 매일 꿈을 꾸고, 마치 몽유병자같이 자다가 몸을 움직이기도 한다. 그러다 침대에서 두 번 굴러 떨어졌다. 안방 침대가 좀 높기는 하다. 떨어지지 않게 난간을 한쪽에 달았더니, 불편하다며 그쪽에서 자지 않는다. 결국 나지막한 건넌방 침대로 갔다. 거기에선 떨어져도 별 탈이 없다.

큰 병원에 가서 치매 검사를 해 봤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사는 하루 입원해서 수면 무호흡증 검사를 해보라 권유했는데, 그렇더라도 산소마스크를 쓰고 자는 것 밖에 해결책이 없는 것 같아 예약을 취소했다.


며칠 전 읽은 책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에서 신경계 질환의 95퍼센트가 노인들이란 글이 있었다. 의사인 저자도 수면 장애를 앓고 있다며 신경계 질환을 걱정했다. 파킨슨, 알츠하이머 같은 병들이 질환이다.

남편이 수면 장애를 앓기 시작한 시기에 우리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단순히 손자를 돌보느라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무렵부터 전자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전자담배와 수면 장애’를 검색해 봤다.

전자 담배와 심혈관계 질환의 상관관계에 관한 자료. 전자 담배가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를 묻는 퀴즈. 담배가 천식, 수면 장애의 위험을 높인다는 기사, 등등.

뚜렷하게 검증된 건 없지만 사람들은 의혹을 가지고 있었다.


"끊어 봅시다. 전자 담배!"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도 아니고 순전히 주먹구구 생각이지만. 전자 담배가 수면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남편도 동의했다.

산책을 다녀온 오후, 남편은 낮잠을 잤다. 담배를 안 피우려면 잠을 자는 수밖에 없다. 나는 방에서 『나를 위로하는 클래식 이야기』를 읽었다. 저자가 권하는 음악을 들으며.


저녁에는 돼지등뼈 우거지 찜을 만들었다. 미리미리 성격이라 혼자 만들었으면 오후 서너 시부터 시작했을 텐데 남편 잠 깰 때를 기다리다가 여섯 시를 넘겼다. 삼십 분 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뜨거운 물에 튀기고 삶기 시작하니 일곱 시였다. 한 시간 넘게 삶았다. 아무리 봐도 더 끓여야 하는데학생이 먹자채근했다. 식탁에 올라온 찜은 고기가 질겨서 결국 우거지만 먹었다.


지난번에 2만 원 주고 사온 완제품이 훨씬 낫다. 이런 건 다음부터 사 먹자.

두 사람 의견이 모처럼 일치했다.



돼지등뼈 우거지 찜


산책할 때 가족 카톡방에 올리려고 사진을 찍었는데 남편 얼굴이 너무 딱딱해 보낼 수 없었다. "좀 웃어봐." 몇 장 더 찍었지만 보낼 만한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저녁에 요리하다가 딸에게 전화했는데 손자도 우울해 보였다.


-어떻게 지내니?

-아이들이 집에만 있어서 힘들어해.


할머니 집에 가고 싶어요, 손자가 말했다.


-데려 올까?

전화 끊고 말하니 남편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시국에? 안 돼.


그래도 어제 하루 잘 보냈다. 오전에는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며 깔깔 웃었고, 저녁에는 구수한 우거지 찜을 먹었다. 주변에 아픈 이가 없었고, 남편의 수면 장애를 낫게 할 희망도 생겼다. 원인이 아닐지라도 담배를 끊을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은가. 게다가 오늘은 음식을 안 만들어도 된다. 잘 익은 등뼈 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첫눈이 내릴 것 같은 날씨다.





#전자담배와수면장애

#『나를 위로하는 클래식 이야기』진회숙, 21세기북스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 데이비드 재럿, 김율희 옮김, 윌북

#그랑사가광고연극의왕

https://youtu.be/mK8GiTBnF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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