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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13. 2020

코로나 시대에 적응하기

정답 없는 혼돈의 시대



손자 돌볼 때 동네 맘 카페에 가입했는데 거기에서 정육점의 특이한 공지를 봤다.

일주일에 두 번 공지가 뜨면 회원들이 댓글로 고기를 주문한다. 다음날이면 정육점 트럭이 우리 아파트에 들어와 동별로 일정한 시간, 장소에 고기를 배달했다. 카페 구성원 대부분이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어서  장 보러 외출하기 힘든 데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주문했더니 다음 날 집에서 5 분 거리에서 고기를 받을 수 있었다. 편리했다. 정육점 여사장은 예순 중반 정도의 나이로 아들과 함께 다녔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지났을 때 아들이 결혼했는지 며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육점은 우리 동네에 작은 분점을 얻었다. 큰 가게를 얻을 필요가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 주문한 고기를 넉넉하게 갖다 놓으면 됐으니까. 우리는 가게에 가서 값을 지불하고 고기를 받아왔다. 미리 봉지에 담아놓아서 사고파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후 공지 때마다 반찬 두 개가 같이 올라왔다. 얼갈이 된장국과 불고기, 쇠고기 국과 양념 갈비, 곰탕과 육전, 삼계탕과 녹두전.

외출과 음식 만들기가 힘든 젊은 엄마들에게 기쁜 소식이고, 정육점 입장에서는 어차피 팔아야 할 물건을 다른 방법으로 소진하는 의미가 있었다. 반찬과 고기를 주문하는 댓글이 보통 300개 정도 달린다.


며느리는 처음에 몇 번 당황했다. 맛이 미흡하다는 평에. 지난여름에는 국을 잘못 보관해 전부 버리기도 했다. 일 년 남짓 지난 지금은 모두 훌륭하다. 샤브샤브와 돼지갈비 우거지 찜 같은 건 한 숟갈 떠먹으면 너무 맛있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정육점 공지에 비대면 배달 가능 문자가 뜬다. 이렇게 발 빠른 대처는 SNS에 능숙한 며느리가 판매를 주도하기에 가능한 것 같았다.


어느덧 정육점의 실권은 며느리가 차지했다. 이젠 며느리가 사장이다. 시어머니는 뒷전에서 거들기만 한다. 며느리도 똑똑하지만, 분란 없이 며느리에게 실권을 양도한 시어머니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정육점은 계속 잘 될 것 같다.  


https://youtube.com/channel/UCqJ0u4K2t7PDRYLrDkns3qA


오전에 남편 카톡에 동영상이 하나 도착했다. 친구 아들이 초등학교 영어 강좌 유튜브를 만들었다. 엄마가 예전 우리 동네에서 유명한 영어 과외 선생이었다. 당시 그녀가 말하길 우리가 영어를 오랫동안 공부하고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건 우리말과 다른 영어의 높낮이, 성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손뼉을 치며 영어를 가르쳤다.

‘좋아요’를 눌러 달래서 들어가 봤더니, 재미있게 잘 만들었다. 딸에게 보냈다. 유치원에 못 가서 심심해하는 아이들 보여 주라고.


그러다 보니 문득 손자들을 돌보는 할머니가 조선족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일상에서 쓰는 중국어를 좀 배워도 되지 않을까? 일부러 중국어 학원다니는데. 미래에영어와 중국어 쓰임이 비슷할지 모른다.

집 딸은 어릴 때 조선족 아주머니가 돌봤다. 중국어과로 진학했고, 2년 전 중국어 교사가 됐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영향을 받는다. 코로나 상황에서 다닐 수 없는 영어 학원만 바라볼 게 아니라, 주변에서 가능한 걸 찾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며느리가 잘할 수 있게 시어머니가 뒤로 물러나는 것도 좋고, 유튜브 방송을 만드는 아들을 엄마가 돕는 것도 좋고, 조선족 할머니가 "니하오마!" 한 마디씩 가르쳐 주는 것도 좋지 않은가.


어차피 정답 없는 혼돈의 시대이니.





#초등학생영어강좌https://youtube.com/channel/UCqJ0u4K2t7PDRYLrDkns3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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