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Dec 19. 2020

칼국수 가게가 문을 닫았다

오드리 헵번이 저렇게 예뻤나?


우리 아파트 상가는 차도 건너편에 있다.

식당, 술집, 노래방, 떡집, 병원, 카페, 학원, 미장원, 김밥 가게.  지은 지 30년 된 아파트와 함께 상가는 흥망성쇠를 거쳤다. 한 곳에서 지그시 오래 묵은 가게도 있고 매번 간판을 바꿔 단 가게도 있다. 우리들에겐 익숙한 상가지역이지만 외부사람들은 상가 속이 미로 같아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버스 정류장 옆으로 걸어올라 가면 왼쪽에 곰탕집 있잖아. 그다음에 꼬마 김밥이 있고, 계속 가면 첼로 학원, 꽃집이 나오지. 그 옆이 칼국수 가게야. 오 분 정도 걸어가면 돼. 칼국수에 부추를 넣어서 초록색인데 홍합을 많이 넣어서 국물이 시원해. 김치도 맛있고. 부침개 하나 시켜서 같이 먹자."

이렇게 친구들에게 칼국수 가게를 설명한다.


그  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들었다.  


이 가게의 내력을 살펴보자면.

최초 사장은 우리 동네에서 제법 유명한 수학 과외선생이었다. 그녀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과외를 시작했고, 대학 다니는 내내 과외로 생활비를 벌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다 보니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해졌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과외를 접고 식당을 해볼 마음을 먹었다. 수입 좋은 과외를 왜 접냐고 물었더니 너무 오래 해서 이젠 지겨워서 못 하겠다고 했다.


가게를 얻었고, 청주에서 줄 서서 먹는다는 닭발 요리로 가게 문을 열었다. 청주 닭발 식당 사장이 그녀의 대학 친구였기에 비법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청주 사람들에게 그리 인기 있는 닭발이 우리 동네 사람들에겐 먹히지 않았다. 나도 낯설었다. 닭발이라니. 개업하는 날 가서 먹긴 했다. 인사 치례로.


그녀는 시름에 잠겼다. 몇 달 후 가보니 식당은 솥뚜껑인지 돌판인지 돼지고기구이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기도 굽고 두부도 굽고. 특이하게 생긴 돌판 구하느라 애쓴 무용담과 함께 그때 그녀가 한 말을 아직 기억한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봐야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이 작은 가게 하나 못 살리겠나 싶다. 정주영처럼 큰 회사 끌고 가는 사람도 있는데."


난, 그녀가 무슨 업종을 하든 이 가게를 살리리라는 걸 알았다.


두 달쯤 지나서 가 보니 식당은 해물 칼국수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 거금을 주고 비법을 전수받았다 했다. 천만 원 정도 들었 했던가.


가게는 순탄하게 잘 됐다. 몇 년 후 그녀는 갑자기 외국에 나가게 되었다. 가게는 백수였던 남동생에게 넘겨줬다. 처음부터 동생에게 주려고 시작한 게 아닐까, 나는 혼자서 추측했다.

동생이 맡은 가게는 이십 년 넘게 한 자리에 간판을 바꿔 달지 않고 버텼다. 일요일에 영업을 하니 주일 미사 마치고 식당 찾아 헤매지 않아서 좋았고, 가격 부담이 없어 길 가다 마주친 친구와 한 끼 먹기에 좋았고, 어르신들 모여서 드시는 모습을 보면 슬쩍 밥값 내고 사라지기에도 좋았다.


세월의 흐름에 발맞추어 가게는 어느 해 의자를  좌식에서 입식으로 바꿨다. 어르신들은 무릎 때문에 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못 하신다. 작년에는 젊은 층을 위해서 하얀 벽면에 영화를 쏘기 시작했다.


2019년 여름 저녁. 식당에선 '로마의 휴일'을 상영하고 있었다. 남편과 맞은편에 앉아서 식사하려다 영화를 보려고 자리를 옮겼다.

나란히 앉아서 오드리 헵번을 바라봤다.

반짝이는 피부, 맑은 눈.

오드리 헵번이 원래 저렇게 예뻤나, 내가 늙어서 그리 보이는 걸까, 생각하며 후루룩 국수를 삼켰다.


마음 내키면 한 걸음에 갈 수 있었던 식당. 그리고 젊음. 당연하게 주어져 귀한 줄 몰핬던, 이제는 사라져 없는 것들을 아쉽게 떠올린다.






 

작가의 이전글 소문 듣고 옵소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