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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21. 2020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

전쟁과 재앙을 재현한 이미지의 역사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도서출판 이후


“문학은 자유였습니다. 특히 독서와 내면의 가치가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는 이 시대에도 문학은 자유입니다.”


폴란드인과 유태계 혈통을 지닌 미국인 3세대인 수전 손택은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서 반백의 전쟁 용사인 스티커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멘호’ 같은 책을 빌려줬다. 

수전이 열 살 때 애리조나 북부에는 독일 병사가 갇혀있는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모두 나치인 줄 알았다. 밤마다 그들이 마을로 내려오는 악몽에 시달렸다. 


1970년 수전은 프리츠라는 편집자를 만났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징집당했을 때 그는 쾰른 대학에서 문학과 예술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이민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고 남을 죽이거나, 죽지 않기만을 바라며 군대에 들어갔다. 1943년 그는 미군의 포로가 되어 애리조나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이 대목에서 수전은 탄성을 지른다. 

“나는 그곳에 나치들만 갇혀 있다고 생각했어요.”


포로수용소에 있던 3 년간 프리츠는 책 읽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미국과 영국의 고전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프리츠는 199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전 손택의 담당 편집자로 있었다. 


“문학은, 그것도 세계 문학은 국가적 허영심, 속물근성, 강제적인 편협성, 어리석은 교육, 불완전한 운명, 불운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문학은 광활한 현실로, 즉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이었다."




미군이 바그다드 외곽을 폭격하던 2004년 3월에 출판된 이 책은 엄청난 찬반 논쟁을 일으켰다. 


잔인하고 참혹한 사진이 많이 실려 있다. 

실제 사진, 연출된 사진. 


작자미상, <네덜란드 하우스 도서관; Holland park library>, 런던, 1940. 수전 손택은 연출되지 않고서 이처럼 우아한 극적 사진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사진이 주는 이미지로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본다. 보도와 검열의 기준은 어디까지 여야 할까? 멀리 떨어진 아시아, 아프리카의 피사체들은 이름이 없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 렌즈를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도 일종의 공모자인지 모른다. 


왜 이런 사진들을 전시할까? 

분노를 일깨우려고? 

애도를 위해서? 

이 사진들이 정말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걸까? 

혹시 우리가 알고 있는 (알고 싶어 하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 아닐까?


에드먼드 버크는 사람들이 고통의 광경을 담은 이미지를 즐겨 본다고 주장한다. 

“내 확신에 따르면 사람들은 현실의 불행과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얼마간, 그것도 적지 않은 즐거움을 느낀다.”

‘불행에 대한 사랑’, 잔악함에 대한 사랑은 연민만큼이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작자 미상 사진, '백 조각으로 찢어 죽이는 형벌' 북경, 1905.


몽고의 왕자를 죽인 남자는 능지를 당했다. 특이한 게 사진 속 희생자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아니다. 어찌 보면 마치 성인들의 순교처럼 황홀경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종교적 사유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유가 바로 이 같은 고통에 대한 관점, 즉 타인의 고통에 관한 관점이다. 이 관점은 희생을 정신적 고양에 결부시킨다. 

이런 이미지는 나약함에 맞서 자신을 단련하거나, 좀 더 자신을 무감각한 사람으로 만들거나, 도저히 구제받지 못할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 필요한지 모른다. 

성애 연구자인 바스티유는 이 사진을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매일 꺼내 봤다 한다. 그가 이 이미지를 보고 즐거워했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는 이 이미지를 통해 고통 이상의 것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흔히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끔찍한 살육 소식을 뉴스로 보면 “아, 끔찍한 일이군.” 하고 채널을 돌린다. 자신이 안전한 곳에 있다고 느끼는 한, 사람들은 무관심해진다. 실은 무력감과 공포의 표현일 수도 있다. 수동성은 감정을 무디게 만든다.  


사진은 대중을 주목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람들이 받는 충격을 점차 줄어들게 해 도덕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이미지가 확산될 경우 현실 감각이 손상된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견주는 것을 참지 못 한다. 


사라예보에 머물며 전쟁 상황을 찍던 폴 로우가 파괴된 어느 미술관에서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소말리아에서 찍었던 사진을 함께 전시하자 사라예보 주민들이 언짢아한다. 작가는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 두 개의 작품을 전시했을 뿐인데. 


우리가 타인과 공유하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를 인정해야 한다. 매번 놀라고, 환멸을 느끼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심리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뭔가 보려면 공간적으로 거리를 둬야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뛰어나고 고귀한 감각으로 보던 특징이 오늘날에는 일종의 결함이 되었다. 

뒤로 물러선 채 사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옛 선인들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와 동시에 누군가를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전 손택은 전쟁과 재앙을 재현한 이미지의 역사를 폭넓게 서술했다.


그녀는 미국을 앞장서 비난하는 대표적 인사로 손꼽힌다. 비평가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거리낌 없이 그녀를 반긴다. 그녀를 18세기의 마지막 인물로 본다. 불편해도 자꾸 그녀의 글을 읽으려 한다. 그녀는  '유럽의 전통예술을 통해서 고쳐야 할 점을 배우고, 끈질기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미국 문화의 상업적 편향성을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미국이 강하다는 사실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그러나 꼭 강해지는 것만이 미국이 해야 할 일은 아니다." 

이처럼 비판하는 이가 있기에 미국이 아직 건재한지 모른다.



#타인의고통, 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도서출판 이후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도서출판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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