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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21. 2020

동지 팥죽 단상

그리움이었으면


전날 오후 산책하는데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새 깃털 같은 달이 걸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 날이 동지였다. 저녁에 냉동실을 주섬주섬 뒤졌다. 어디 팥이 있을 텐데. 기억에 있는 팥은 찾지 못했고 더 오래전에 사놓은 팥이 보였다. 조금이다. 그래도 2 인 분 팥죽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지 팥죽 새알 동동 뜰 때 태어났지.”

엄마는 내 생일을 그리 말했다.


요즘과 달리 성별을 미리 알 수 없었으니, 맏아들에 대한 기대를 날려 보낸 이 시간이 엄마에게 좋은 추억은 아니었을 성싶다. 첫 손자를 보러 온 할아버지가 아기를 한 번 안아주지도 않고 쌩하니 가버렸다 하던가. 이름을 기다리다 결국 엄마가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 이름이 이상하게 싫었다. 선녀와 벼슬이라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었다. 엄마 나름 셋째 딸에게 욕심을 부렸는지 모른다.


팥을 삶고, 쌀을 불리고, 찹쌀가루를 익반죽 했다.

팥이 얼마 되지 않으니 모두 조금씩이다. 소꿉장난하는 것 같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영어를 가르쳐 주던 엄마가 있다. 몇 년 후 애들이 중학교 갈 무렵, 그녀는 다시 공부하러 미국으로 가겠다 했다.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뭘 해 줄까 물었더니 그녀가 팥죽이 먹고 싶다 했다. 동치미와 함께.


같이 영어를 배우던 친구와 세 가족이 우리 집에 모여서 큰 교자상을 펴놓고 팥죽을 먹었다. 팥죽은 생각과 달리 별로 맛이 없었다. 너무 많이 끓이느라 뻑뻑해져서 다들 많이 먹지 못 했다. 새알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 크게 만들면 찹쌀이라 목이 막힌다. 미국으로 간 그녀는 몇 년 후 한국에 한 번 나왔다. 우리는 다른 친구 집에서 밥을 먹었고, 헤어졌다. 이젠 연락이 끊겼다.


팥을 보면 가끔 단팥죽이 생각난다. 설탕 많이 들어가 달달하고 전분기로 매끄러운 새카만 단팥죽. 인절미 얹어 먹으면 금상첨화인데.

불려놓은 쌀에 비해 팥이 많았다. 작은 냄비에 삶은 팥을 덜었다. 밤중에 간식으로 단팥죽을 만들어 먹을지 모른다.


몇 년 전 젊은 엄마가 아파트 위층에 살았다. 동짓날 같이 차 마시다 팥죽 이야기를 잠시 했는데, 남편이 팥죽을 엄청 좋아한다고 끓이면 좀 달라했다. 팥죽을 넉넉하게 끓여서 두 사람 먹을 것 남겨 놓고 냄비 째 올려 보냈다.

얼마 후 여러 가지 일이 엉겨서 그녀와 사이가 틀어졌다. 시간이 지나도 잘 풀리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다른 곳에 산다. 팥죽을 끓이며 나는 그녀를 생각했다. 아마 그녀도 나를 생각하겠지. 팥죽 냄비와 함께.


심심해서 카톡방에 새알 만드는 사진을 올렸더니, 성당 다니는 친구가 “언니 옆집에 살고 싶어요.” 했다.  

이전 같으면 십 분 거리이니 후루룩 달려가서 주고 올 텐데. 당최 바깥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람 만나는 게 차츰 귀찮아진다. 솜씨 좋은 그녀에게 음식을 보내는 게 부담스럽기도 다.


그녀는 예전에 내가 새 집으로 이사 갔을 때 식사 초대한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성당 친구들을 모두 불렀다. 스물다섯 명 정도였다. 사흘간 계획을 세워서 뷔페식으로 만들었다. 음식을 만들 때 계속 기도했다. 음식이 잘 만들어지기를. 모두 맛있게 먹을 수 있기를. 음식은 무척 좋았다. 단호박 수프, 샐러드, 볶음 국수, 닭튀김, 수육…. 어느 것 하나 맛없는 게 없었다. 이런 일로 ‘기도의 힘’을 말하면 사람들이 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간절히 원하면, 이타적인 바램이면 들어주신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왜 들어주지 않겠는가.

그 점심 식사를 친구는 여태 잊지 않았다.


동지가 되면 헤어져 소식이 끊긴 사람들도 팥죽 때문에 나를, 함께 먹었던 순간을 기억하지 않을까. 엄마에겐 씁쓸한 팥죽이었겠지만, 그들에겐 그리움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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