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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25. 2020

성탄에 만난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

The Light Between Oceans (2016)



크리스마스이브.

한 달 넘게 침묵이 린 쓸쓸한 카톡방에 시 한 편을 올렸더니 친구들이 들어와 저마다 힘든 상황을 쏟아냈다.


-종일 밥만 하고 있어.

-아기 봐주고 있는데 힘들어. 집에 가고 싶어.

-남편과 정말 안 맞아.

-난, 혼자잖아. 외로워.


한 마디씩 말하고 나니 비슷한 상황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다들 굳은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떠도는 우스개 이야기 한두 개에 모음 없는 웃음이 차례로 올라왔다. 이 시기를 넘기기 위한 온갖 묘안이 등장한다. 음식 만들기, 책 읽기, 음악 듣기, 영화보기.


-이거 맛있어. 재료 구입은 여기로.

-책 괜찮더라. 읽어보렴.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소개할게.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이면 성당에 가 있어야 할 시각에 집에서 친구가 소개한 영화를 틀었다. 영화에 별 흥미가 없는 남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전반부가 지나갈 즈음 남편이 거실로 나와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마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호주 작가, M. L. 스테드먼의 ‘바다 사이 등대’를 원작으로 만들었다.



(영화 스포 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을 겪은 전쟁 영웅 톰은  자기가 왜 살아남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다. 뭔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며 홀로 머물며 사색하기 좋은 고요한 섬을 찾아간다. ‘야누스’란 이름의 등대가 있는 곳. 로마 신화의 ‘야누스’ 신처럼 등대는 양쪽 바다를 비추고 있다. 쓸쓸하고 황량한 섬이 피폐해진 마음을 스리기에 좋았다.



이사벨과 톰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사벨은 톰이 좋았다. 상처 받은 의 내면을 이해했다. 두 사람은 결혼해 섬에 머물며 사랑을 키운다. 첫 아이를 잃는다. 그리고 둘째마저. 때맞춰 파도가 아기를 실어왔다.


살아갈 힘을 잃은 이사벨에게 아기는 선물이었다.

-신고해야 해. 우리 아기가 아니야.

톰의 말에 이사벨이 사정했다.

-여보, 아기는 낯선 보육원에 갈 거야. 우리가 잘 키울 수 있잖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인간은 자기를 합리화한다.

톰은 이사벨의 뜻을 꺾지 못했다. 아니, 그의 선택은 항상 이사벨이었다.


야누스(Janus), 로마 신화에 나오는 문의 수호신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얼굴이 두 개 달린 신이다. 인간의 양면성을 빗대어 위선자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물에 떠내려 온 아기를 키우면서 톰과 이사벨은 삶의 기력을 회복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면이 존재한다. 아기의 세례식 날, 톰은 교회의 묘지에서 아기의 친엄마, 해나를 보게 된다. 이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이사벨을 설득하기란 불가능해 보이는데. 양심을 직면하게 된 톰은 모든 걸 스스로 책임지려고 결심한다. 해나에게 아기가 무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광신적인 종교 집단이 불리한 상황에 하면 필사적인 방어 자세가 되듯, 이사벨은 톰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 아기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아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면서. 용서하지 못하니 누명을 쓴 그를 위해 진실도 말해주기 싫다.


아기를 잃어버려 상처 받은 헤나는 톰과 이사벨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역시 용서할 수 없다.



이사벨이 알게 된다. 해나가 루시의 엄마라는 사실을.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놀라운 정신적 활동을 한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기를 합리화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톰이 이사벨에게 작별 편지를 보냈다. 이사벨은 이 자기를 통해 '잊어버린 사랑'을 회복했다는 것, 자기와 마찬가지로 '삶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헤나는 남편이 하던 말이 떠오른다. 그는 독일인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늘 이렇게 말했다.  


-용서는 한 번만 하면 돼. 그러면 종일, 오랫동안 남을 미워하지 않아도 돼.


등대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힌다. 사람들에게 도착할 희망을 준다.

간혹 바다에 떠도는 사람들이 외국 배에 구조되기도 하느냐는 해나의 질문에 톰은 희망을 열어 둔다.

-간혹 그러기도 합니다.


January(1월) ‘야누스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야누아리우스(Januarius)’에서 유래했다. 1월은 지난해의 문을 닫고 새해의 문을 여는 달이다.


나는 아기가 자기의 소유라는 집착을 버리게 된다. 욕심을 흘려보내고 아기에게 가장 좋은 것을 기로 마음먹자, '루시'이며 '그레이스'인 아기는 '루시 그레이스'로 해나에게 돌아온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The Light Between Oceans, 2016).  감독, 데릭 시엔프랜스. 등장인물, 톰(마이클 패스벤더).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 헤나(레이철 와이즈).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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