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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an 12. 2021

사업주와 노동자, 이슈가 된 두 법안

『웅크린 말들』, 이문영, 휴마니타스


『웅크린 말들』을 읽고 있다.


'소리 잃은 검은 기침'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펼친 책은 첫 장부터 분위기가 서늘하다. 탄광촌이 배경이다. 소설인가? 그러기엔 낯선 단어에 대한 설명이 있고, 스토리는 툭툭 끊어진다.


이게 무슨 책인가, 맨 뒷장을 펼쳐본다. 한겨레신문 이문영기자가 '한겨레 21'에 연재했던 기사를 수정, 편집, 보강해 쓴 산문집이다. 2017년 판 '난쏘공'.


요즈음의 한겨레신문을 나는 마뜩지 않게 여긴다. 읽을까 말까?

하지만 내 손에 들어온 책과의 인연을 나는 귀히 여긴다.


벌집에 사는 구로공단 여공원들이 나오고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직원 이야기가 이어진다.

지지난 여름 새 에어컨을 샀을 때 집에 찾아온 설치기사들이 떠오른다. 생각보다 작업은 힘들었다. 실외기는 무거웠고 베란다 바깥에 설치하는 작업은 위험했다. 땀을 닦으며 동분서주 힘들어했던 게 눈에 선하다.


김선우 작가의 산문집 『부상당한 천사에게』에서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직원들이 실제 작업하는 순간만을 계산한 분 단위 급여를 받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친구들 모임에서 무심코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평소 젊잖은 한 친구가 그럴 리 없다고 발끈했다. "그렇게 읽었는데...." 말꼬리를 흐리다 아차! 했다. 친구 아들이 얼마 전 삼성전자에 취직했다. 누구나 선망하는 회사 아닌가. 내 생각이 짧았다. 일 년 후 친구 아들은 회사를 그만뒀다. 버티기 힘들다 했다. 다행히 능력 있는 아이라 얼른 다른 회사로 갈 수 있었다.


삼성전자를 그만두다니.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관심을 가지고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연구단지에 삼성에 근무하다 그만두고 이력서를 넣는 이들이 제법 많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팍팍한 근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하나가 일본의 전자회사 전부를 합친 것보다 실적이 좋다 하니, 많은 이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지는 못 할 것 같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존재한다.


회사에 갓 입소한 여직원이 얼마 지나지 않아 출산 휴가를 가면 그 일을 기존 직원들이 분담해야 한다. 출산 휴가를 탓할 수도 없고, 힘들어 투덜대는 직원들을 탓할 수도 없다. 회사가 여력이 있어서 그 기간 임시직원을 채용하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그런 여유 있는 회사가 얼마나 있을까.


삼성전자 주가가 9만 원대까지 올랐다. 몇 달 전, 5만 원대였는데…. 진작 조금 사놓을 걸, 이런 생각을 나만 한 건 아닐 것 같다.

오래전 우리 동네에, 삼성전자 주식만 적금들 듯 사모으는 아주머니들이 제법 있었다. 그들은 아직 삼전 주식을 가지고 있을까? 오늘도 동학 개미들이 피라미드를 높이 높이 쌓아 올리고 있다. 회사는 위만 바라보지 말고 피라미드 하층부도 바라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는데. 그들이 회사를 떠받치고 있지 않은가.


요즈음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이 화두다. 며칠 전 채널A 방송 토론에서 정의당 국회의원이 속 타는 목소리로 이 법안을 이야기했다. 일 년 전에 이미 '김용균 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 보건법'이 개정되었다. 그러면 두 법안의 차이는 뭘까?


『웅크린 말들』을 계기로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법안들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보기로 했다. 뭘 알아야 어느 한쪽이 옳다고 이야기라도 할 것 아닌가. 두 법안을 간단하게 정리한 기사를 찾았다.


중대재해 법안은 법인과 별도로 사업주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

즉,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위험방지 의무 등을 위반해 노동자를 사망·중대재해에 이르게 한 경우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에 대해 징역형이나 수억 원의 벌금에 처하게 하는 등의 처벌 수위를 명시하고 있다.

현재는 재해 발생 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또는 산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는데, 사업주 등을 직접 처벌 대상에 포함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제기되면서 중대 재해를 막을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노동계 주장이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과 경제계는 산안법 개정안 시행이 1년밖에 안 된 상황에서 "헌법과 형법을 중대하게 위배하는 과잉 처벌"이라며 처벌 수준이 광범위하고 중대재해 범위가 불명확하다며 제정에 반대하고 있다.

(매일신문 2021년 1월 4일)



회사를 운영하는 이들은 이 법안을 위협과 겁박으로 느끼는 것 같다. 재해 현장의 근로자들은 삶의 안전망으로 보고 있고.


"이러다간 누가 책임지는 일을 할까? 회사를 경영하기보다는 있는 돈으로 주식이나 하는 게 낫겠다." 경영자는 말하고, 근로자는 "죽으러 일하러 가는 이는 아무도 없다."라고 말한다. 여당은 야당 탓을 하고 야당은 여당 탓을 한다.


현 법안은 책임자 처벌의 근거가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혼내는 큰 소리'로 그칠 뿐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5인 미만 사업장도 포함해야지. 학교 현장은? 교장선생님들도 책임자잖아. 그러면 공무원들은 왜 제외하는가? 공무원 사고 시 장관이 책임져야 하는가?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어느새 법안은 군데군데 기워져 누더기 법안이 되었다는 말이 들린다.


경영자에 대한 처벌이 산재 사고를 막는 유일한 방법일까?


수년 전 성당에서 관리장 아저씨가 전구를 갈려고 높은 사다리에 올라가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때 지나가던 여든 넘은 어르신이 이런 일은 절대 혼자 하면 안 된다며 외국에선 이런 경우 반드시 두 명 이상이 함께 일해야 한다는 안전 메뉴얼이 있다며  일 마칠 때까지 사다리를 잡아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안전 규칙은 이런 것인 것 같다.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허투루 여기지 않아야 한다.


사고 이후보다 사고 이전의 감독 의무사항이 보다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일어났을 때 경영자에 대한 물리적인 처벌보다 제대로 된 물질적 보상, 의료 처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외국 법안의 사례를 여러모로 참고해 안전 규칙과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법안을 만들기를 희망한다.


경영자와 근로자가 서로 적이 되어 싸울 일이 아니고, 협력하는 동반자가 되어 법을 수정하고 보완하면 좋겠다. 내 시각이 너무 이상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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