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Dec 17. 2020

소문 듣고 옵소게

한국문학인│이천이십년 가을│



  “세화 가서 소문 들어 봅시오.”

  “그려. 소문 듣고 올테여.”

  소문? 실제 상황은 그리 즐겁지 못했지만, 두 분 주고받는 말씀이 어찌나 재미진지.


  추석에 제주 시댁에 갔는데 부엌 벽이 가관이었다. 천정과 이어진 벽이 온통 곰팡이로 얼룩덜룩했다. 근 한 달을 비가 그치지 않고 내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진 나는 부엌을 나와 바깥 계단을 올라갔다. 위는 장독대다. 제주 사람들은 바닷가에 집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대가 옴폭한 곳에 집을 앉히고 장독대를 지붕 위에 얹는다. 바람을 덜 맞고 장독에 햇볕을 많이 받게 한다. 제주에 처음 왔을 때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기한지 가파른 장독대 계단을 종일 오르내렸다.

 

  장독대에 올라가면 올망졸망한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놓자마자 금방 중국 사람이 사갔다며 아버님이 아쉬워하던 붉은 지붕 집이 보인다. 마을은 고요하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걸까. 노인들만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 이따금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젊은이들은 육지로, 번화한 바닷가로 모두 빠져나갔다.

  밭에는 걷어가지 않은 파지 당근이 널려있고, 버스가 다니는 길 건너엔 생뚱맞게 아파트가 한 채가 들어서 있다. 멀리 다랑쉬오름이 보인다. 갈색의 능선이 부드러운 여인의 둔부 같다. 오름을 걷다 비를 만났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우산도, 처마도, 비를 가릴 나무도 없다. 차라리 포기하니 편안했다. 비를 맞는 건 생각보다 괜찮았다. 시원했다.

 

  장독대 바닥은 파랬다. 아직 말끔한 걸로 봐서 방수 페인트를 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물이 빠져나가게 바깥쪽으로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었다. 이걸로 부족한가. 나는 난간을 기웃거리며 10센티미터 정도 올라온 턱을 몇 군데 없애는 게 좋겠다고 궁리했다. 내 말을 듣더니 남편이 웃었다. 바닥이 매끈하지 않아서 조금만 물이 고여도 스며드는 거라나.



 

  우리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제주에 간다. 시부모님 연세는 올해 아흔셋이다.

  “어느새 우리 동네에서 내가 제일 어른이 됐어.”


  아버님은 아직 하루에 만 보를 너끈히 걸으신다. 사람들은 아버님이 건강해 보인다며 백 살은 너끈히 사실 거라 한다. 하지만 두 분의 몸 상태는 볼 때마다 달라서 우리는 조금 어리둥절하다. 지난 설에 갔을 때 어머님은 동네 출입을 못 할 정도로 걷지 못했다. 이번에 어머님은 동네 노인정을 열심히 다니고 있었고 대신 귀가 확연히 나빠졌다. 걷지 못하는 거랑 귀가 안 들리는 거랑 어느 게 더 불편할까.

 

  인터넷으로 시댁 주변을 검색했지만, 마땅한 설비업체를 찾기 어려웠다.

  어머님이 세화에 가면 소문 들을 곳이 있다고 했다.


  아하! 두 분에게 ‘소문’은 일종의 정보를 얻는 것, 우리의 인터넷 검색과 같은 것이었다.

 

  아버님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뜬금없이 접골원이었다.

  “여기는 접골원인데 마시?”

  남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맞은편에 새시 가게 간판이 보여서 우리는 그쪽으로 가자고 했다.

  “거긴 아니여. 그곳은 목수 집이여.”

  아버님은 손을 저었고, 우리는 결국 접골원 문을 두들겼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제야 우리는 아버님이 목수 집이라 부르던 새시 가게를 찾아갈 수 있었다.


  가게 안은 소박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새시로 그득 차 있어서 마치 공장 같았다.

  “어, 이게 누구여?”

  새시 가게 주인이 남편을 보더니 화들짝 반기며 다가왔다. 동창이라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어디 동창이여?”

  가게를 둘러보던 아버님이 부러운 표정으로 넌지시 물었다.


  “저 중학교만 나왐시. 그리고 목수 했지비.”

  주인이 머리를 긁었다.

 

  남편은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도 잘했네.”

  “지지리 고생했지.”

  “그때 고생 안 한 사람 어딨나? 돈 많이 벌었네. 아직도 일하니 보기 좋네.”

  남편은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놀멍 해여.”

  주인이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남편에게 물었다.

  “안 판 자식 있어? 몇 살이여?”

  “하나 있지. 이제 서른둘이야.”


  시댁 부엌 사정을 말하자 그는 방수 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시공업자를 소개해주고 도배업체 연락처도 알려줬다. 그가 가게 안쪽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어이, 차!”

  부인이 얼음 띄운 커피를 가지고 나오더니, 아버님께 인사했다.

  그녀는 아버님을 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늘 지나다니며 인사했는데, 이제 다 떠났으니. 좋은 시절 다 지나갔지요.”




  돌아오는 길가에 남편이 옛날 다니던 초등학교가 보였다.

  “옛날에는 한 학년이 세 학급이었는데…”

  “지금은 전교생이 오십 명이여. 아이들이 많이 줄었지.”

  두 사람은 묵묵히 앞만 바라봤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마을은 오래된 집과 현대식으로 지은 마을회관과 게스트하우스가 뒤섞여 있었다. 건물 사이로 저 멀리 검푸른 바다가 보였다.


  남편은 제주 가서 살자는 말을 두어 번 했다. 처음에는 글쎄, 하고 대답을 흐렸다. 몇 번 반복되자, 나중에는 정 그렇게 가고 싶으면 왔다 갔다 하던지⋯ 성의 없이 대답했다. 남편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제주에서 살 자신이 없었다.


제주 김영갑 갤러리에서



 #한국문학인2020년 가을호






작가의 이전글 미타쿠예 오야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