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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an 22. 2021

물리학자에게 브런치를 권하다

과학 공부의 즐거움



대구에 사는 지인이 모처럼 찾아와 집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차를 마시는데, 함께 올라와 연구소에 일 보러 가신 지인의 남편이 우리 집으로 오시겠다는 게 아닌가. 내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했다.

지인의 남편은 물리학자이다. 대덕 연구단지 표준 연구소에 계시다가 8년 전 디지스트 교수로 가셨다. 물리를 전공했고, 한림원 회원이다. 내가 알기론 외국의 유명 과학 잡지에 많은 논문을 발표하신 한국의 석학이다.


그런 분이 내게 무슨 하실 말씀이 있을까?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낯설지는 않은데, 뭔가 화장이라도 하고, 집 정리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부산스럽게 허둥대다 지인의 만류에 접고 말았다. 박사님이 오셔서 우리는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람이 지난 연말 자기 생일에 네이처(Nature)에서 메일을 받았어. 곧 발표되겠지만. 아마 이게 이 사람의 마지막 논문이 될 거야.

-아니야. 하나 정도 더 있어.

지인의 설명에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요즘 매일 오전 서너 시간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과학을 공부해도 될까?'

'내가 공부할 과학의 미래는 어떨까?'

'과학보다는 의대로 진학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중 고등학생들에게 그는 과학을 공부하는 게 정말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 한다. 물론 좌절과 고통이 있지만 그걸 뛰어넘는 에너지를 주고 싶다고 했다.  


-이전에 우리가 배워서 알고 있는 물질의 생성 원리와 다른 이론을 말하는 독일 학자가 있었어요. 미국 학회에 갔을 때 그를 만났는데, 나이가 마흔 정도였죠. 발표회장 앞 두 줄을 채운 사람들은 예순이 넘은 머리가 하얀 사람들이었어요. 발표하는 도중 앞에서 삿대질을 하고 야단이 아니었죠. 그는 발표를 마치고 복도에 나와서 머리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어요. 내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쳤어요. 수고 많았다고. 그리고 내가 말했어요.

“네가 말하는 이론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실험을 합하면 뭔가 직접적인 이론이 나올 것 같다. 우리 함께 해보자.”

그리고 몇 년간 독일과 한국에서 메일을 주고받으며 실험을 진행했어요. 한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나중에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어요. 그리고 얼마 후 서울의 한 교수가 이걸 알고 같이 연구를 해보자 연락을 했어요. 끊어질 줄 알았던 연구가 그렇게 이어졌죠.

중고등학교에 강의 요청이 와서 찾아가면 학생들이 많은 질문을 해요. 일일이 답을 해주다 보면 시간을 훌쩍 넘기 일쑤예요. 정말 기발한 질문이 많이 쏟아져요.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내 블로그에 들어와 과학에 대한 꿈을 가지기를 원해요. 중 고등학교 연령의 아이들에게 내가 가진 생각과 인생 경험, 과학을 공부하는 즐거움을 전달하고 싶어요.


그는 목표한 글의 70프로 정도 글을 쓴 것 같았다. 하지만 혼자 쓴 글이라 읽고서 의견을 줄 독자가 필요했다.


-글을 보낼 테니 한 번 읽어 볼래요? 블로그에 쓴 글이라.


나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평하는 게 조심스럽다. 게다가 너무 가까운 사이라. 이전에 이분 글을 몇 편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아주 잘 쓰신다. 읽고 평하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하다. 이과인데, 문과생 같은 감수성도 있다. 나는 슬그머니 브런치를 연결해주고 도망가기로 했다.


-블로그보다는 브런치가 낫지 않을까요?

-딸이 지난번에 권해서 이따금 카톡으로 들어오는 브런치의 글을 읽는데, 내가 쓰려는 글이 아닌 것 같아서요. 내가 원하는 독자는 일반인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 연령의 아이들은 직접 글을 찾아 읽을 시간이 없어요. 그들에게 글을 전달할 사람은 4, 50대 부모이거나 선생이에요. 그들은 브런치의 독자이기도 하죠.

-브런치를 통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네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먼저 작가 신청을 해야 해요. 이력과 글의 목적을 분명히 쓰셔야 해요. 브런치는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후일 꼭 책도 만드셔요. 아이들이 읽고 과학에 대한 꿈을 가지게요. 평범한 주부이지만 저도 제가 겪고 깨달은 것들을 글로 전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어떤 면으로든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그는 실험하다가 불낸 이야기라든가, 천방지축으로 탐구하던 시절의 여러 사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열정에 찬 우리의 대화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고, 두 분은 내려갈 시간이라며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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