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Jul 16. 2020

세화, 그 낡음에 대하여

수필집을 슬며시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도 즐겁지만 예전에 갔던 곳을 다시 들러 변하지 않은 모습을 바라보는 건 오래전 친구를 만난 것과 같다. 편안하고 익숙하다. 길 잘 든 신발을 신은 것처럼.


  유난스러웠던 장마 탓인지, 투기 붐이 멎은 탓인지, 해변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미르 드 세화’는 제주에 갈 때마다 들르는 카페다. 주인은 전과 다름없이 예의 바르고 덤덤했다. 경상도 억양이 아직 남아있는 걸로 봐서 그는 외지인이다. 주문할 때마다 나는 이곳에 시댁이 있어서 찾아왔다고 말하지만 올해도 주인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게. 대부분이 한 번 왔다가 사라지는 손님일 테니.

 

  시간은 새 것도 낡게 하고 온전한 것도 허물어뜨린다. 노란색으로 상큼해 보이던 카페가 이제는 빛바래 보인다. 금방 찾지 못했던 건 이전에 내 눈에 저장된 이미지와 달라서이다. 긴 장마는 이 건물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반가웠다.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어서, 바뀌지 않고 우리를 맞아주는 주인이 있어서, 꾸준히 손님들이 찾는 눈치여서.


  커피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소 닭 보듯 앉아 있을 때가 많은데, 이곳에서 우리는 각자 책을 읽는다. 주인이 책에 관심이 많은지 카페에는 잡지, 소설, 동화, 수채로 그린 식물도감 같은 책들이 군데군데 꽂혀있다. 어느 방향에서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기역자로 설계한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 피로한 눈을 들면 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 남짓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 아쉽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작년 겨울, 시댁에 며칠 머무는 게 나는 무척 힘들었다. 오래된 벽 틈으로 낡은 창틀 사이로 바람이 거침없이 들어와 부엌에선 종종걸음을 쳤고 일이 끝나면 전기장판 깔린 방으로 후닥닥 뛰어 들어가야 했다. 따뜻하게 집을 수리하려면 전부 고쳐야 한다고 자재상을 하는 남편 친구가 말했다. 벽에 석고보드를 대고, 새시를 바꾸고, 전선을 다시 깔고, 골조만 남기고 모두 새로 해야 한다나. 돈이 제법 많이 들 거라 했다.



 




  두 분은 올해 아흔셋, 동갑이시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사실까? 건강하시니 십 년은 더 사실 것 같다. 사는 데 별 불편함을 못 느끼는 눈치시지만, 한 해라도 빨리 집을 고치면 좋겠다. 하지만 아버님은 집에 관심이 없다. 다른 데 신경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만날 때마다 유언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돌아가시면 화장하고 절에서 사십 구제를 지내 달라하시고, 어머님은 옛날 장례 지냈던 이야기를 새삼스레 자꾸 꺼내신다.


  “말도 마라, 어찌나 힘들었는지.”

  너무 고생스러워서 잊지 못하는 눈치다.


  망자를 위해 삼 년을 매 끼니 밥을 해 놓아야 했다고. 옛 장례 예절에 대해 말씀하지만 나는 실감하지 못하니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우리 둘 장례비로 오천 정도는 들 거야? 그건 모아놓고 죽어야지.”

  “그런 걸 왜 모읍니까? 자식들이 알아서 하니 걱정맙소게.”

  우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큰 애랑 너희는 돈을 내겠지만….”

  이게 무슨 이야긴가 하면, 두 분은 사업에 실패한 둘째 아들과 형편이 어려운 시누이가 장례비용을 못 낼 걸 걱정하시는 거다.




  “나 같으면 그 돈 모으지 말고 집 고치겠다. 잘 고쳐서 몇 년이라도 편안하게 지내다 가시게. 자식들이랑 손자들도 자주 내려오라 해서 얼굴도 보고.”

  시댁을 떠나면서 내가 중얼거렸을 때, 남편은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긴 했다.


  두 분의 건강은 볼 때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 한다.


  “책 읽는 건 어떠세요?”

  물으니 아버님은 이제 글을 읽을 수 없다고 하신다.


  몇 년 전만 해도 가족 문집을 만드신 분인데, 늘 책상에 앉아 뭔가를 쓰시던 분인데, 눈이 나빠 글을 읽을 수 없다니.


 시댁에 두고 오려고 꺼내놓은 수필집을 슬며시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만일 내가 글을 읽을 수 없게 된다면? 그래도 들을 순 있지 않을까. 아마 귀도 나빠지겠지.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제 아버님이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는 텔레비전밖에 없다. 바깥에서 들릴 정도로 소리를 키워서 듣고 계신다.

우리가 도착하는 날 부모님은 어둡고 우울해 보였다. 사흘간 우리가 집을 휘젓고 다니니 두 분 얼굴에 약간 생기가 돌았다.


  노인정에서 생선을 찾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자 어머님은 쏜살같이 달려 나가서 큰 아이스박스를 머리에 이고 돌아오셨다. 무릎 아파서 동네 출입도 못한다던 분이…. 아들에게 줄 선물이라 무거운 줄도 모른다.


  “아버지께 글 쓴다고 말한 적 있니?”

  남편이 물었다.


  “아니. 왜?”

  “응, 아버지가 요즘 너 글 쓰냐고 묻길래.”

  “어떻게 아셨을까?”


  그제야 나는 몇 년 전 등단했을 때 수필집을 한 권 보내드린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하고 계셨구나!”


  우리가 떠날 때, 두 분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집처럼 두 분도 낡고 허물어지고 있었다.





위 글은 <수필과 비평> 2020년 7월호에 실렸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건지 섬과 다라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