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 ‧73년)'를 읽고 내친 김에 넷플릭스에서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었다는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Tinker Tailor Soldier Spy‧74년)'를 봤다.
시간이 좀 흘러서 영화와 소설의 내용이 뒤섞여 혼돈스럽지만, 오늘 신문에서 소련 KGB 스파이 '조지 블레이크(일명 두더지)'에 관한 기사를 보니 르 카레 소설의 영감이 이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존 르 카레도 영국 정보국 M16 출신이라 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일반 스파이 영화와 달리 현실적이다. 차갑고 진지하다. 내용도 단순하지 않아 한두 장면 놓치면 스토리를 따라가기 어렵다.
스파이는 현실을 무대로 연기하는 배우인지 모른다. 술 주정뱅이 역할을 하기도 하고, 그림자처럼 몸을 숨기기도 한다. 24시간, 매일 그렇게 변신할 수 있을까? 어디선가 허점이 드러나는 순간 그는 정체를 들킨다. 그러려면 냉철한 이성을 가져야 한다. 어리바리한 스파이는 쉽게 자신의 감정을 노출한다. 때로는 상대를 포섭하려고 설득한다는 게 섣불리 이쪽 감정을 노출하는 경우가 있다. 상대가 고수라면 틈을 놓치지 않는다. 약점을 잡혀 상황이 역전된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의 리머스는 KGB 최고위층을 실각시키려고 이중 스파이로 잠입한다. 그에게도 약점이 있다. 하지만 이도 그들이 고려한 작전이었다면….
그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한 걸까?
혹시 거대한 임무의 한 톱니바퀴에 올라 탄 건 아닐까?
스파이 계에도 현실적인 이득을 고사하는 확신범이 있다. 이들은 양쪽을 오가는 듯 보여도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고문과 사형, 대부분 비참한 종말을 맞지만 조지 블레이크는 예외였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을 겪는다. 영국 정보국 M16 소속으로 소련 MGB(국가 보안부)의 이중 스파이 생활을 하다가 발각되어 감옥에 갇히고, 탈옥 후 망명한다. 그는 "영국에 속한 적도 없고 배신한 적도 없다."고 한다. 초지일관 한 마음이었다나.
네덜란드, 이집트, 영국, 독일, 한국, 북한, 러시아. 여러 나라를 거치며 살아온 그에겐 '국가'보다 '사상', '생존'이 더 우선순위였는지 모른다. 2020년 러시아에서 9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Pohjois(뽀요이스)'는 산자부 삭제 문건 중 발견된 파일 제목으로, 핀란드어로 '북쪽'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에서 나는 리머스, 피들러, 문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들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전설적인 이중 스파이 '두더지'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