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환대
아이들 어릴 때, 이웃 과외 선생님 집에 들른 적이 있다. 우리 동네에는 아이를 키우는 짬짬이 부업으로 영어, 수학, 피아노를 가르치는 이들이 많았다. 출근은 안 하지만, 공부하는 아이들이 집에 드나드니 이들은 성실하고 시간 관리가 철저해야 했다. 대부분 비슷했지만, 부산이 고향인 영어 선생은 유독 열심이었다. 체력 관리를 위해 새벽이면 수영을 다녀오고, 오전에 집안 정리, 오후가 되면 학생들이 오기 전 자기 아이들을 챙겼다.
그녀는 커피를 좋아하냐고 묻더니 달달한 커피를 내놓았다.
맛이 독특했다. 그녀가 싱긋 웃더니 커피에 꿀을 탔다고 말했다.
"맛있죠?"
낯설었고, 마음 한편에 살짝 무시하는 마음이 들었다. 커피에 꿀을 타다니….
다음에 갔을 때 그녀는 내 손을 잡아끌더니 -아마, 이 무렵이었을 거라 -사양하는 나를 부득부득 식탁으로 끌어당겼다.
"쇠고기 넣고 토란국을 만들었는데 어찌나 맛있는지. 꼭 한 그릇 먹고 가야 해요."
식사 시간도 아니었는데, 그녀는 토란국을 한 그릇 그득 담아 내놓았다.
하얀 토란과 갈색 쇠고기가 어우러진 토란국을 그때 나는 처음으로 먹었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얼마 후 나는 그 토란국이 눈에 어른거려 끓여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토란 껍질에 독성이 있어서 맨손으로 만지면 안 된다는 걸 몰랐다. 껍질을 벗기는데 팔뚝까지 벌겋게 독이 올랐다.
장에서 아주머니들에게 물으니, 토란은 물 적시지 않고 만지면 괜찮다고 일러주었다.
그렇게도 해보고, 장갑도 껴봤지만, 간지러운 건 여전했다.
그래서 아예 껍질 벗겨 놓은 토란을 사기로 했다. 요즘은 요령이 생겨 사자마자 흙을 털어내고 살뜨물에 살짝 데친다. 토란은 익으면 독성이 사라진다.
이따금 커피에 꿀을 넣어 마신다. 밀크티에는 꿀이 잘 어울린다.
에프터눈 티 살짝 우려내, 데운 우유를 붓고, 꿀을 넣는다.
"맛있지?"
어찌나 행복한 맛인지...
점심 먹고 외출한다던 남편이 밀크티 한 잔에 소파에서 길게 몸을 뻗고 눈을 붙인다.
바깥은 눈보라 치는데 난로 위 주전자는 색색 거리며 하얀 김을 뿜는다.
인디언은 1 월을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해에게 눈 녹일 힘이 없는 달이라 말했다. 나에게 1월은 토란이 맛있는 달, 그녀의 환대가 생각나는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