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우리가 날씨다』를 읽었을 때 나는 궁금했다. 대학 2학년 때 할아버지를 나치로부터 구한 여인을 찾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여행한 이력으로 그가 평범한 생활에 안주하는 인물이 아니란 건 알겠지만.
어느 순간 그의 책들이 주변에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모든 것이 밝혀졌다』(2002),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2009),『내가 여기 있나이다』(2016), 『우리가 날씨다』(2020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중앙일보 [SUNDAY 인터뷰]에서 사진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날씨다』를 읽고 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내용을 알려야 된다는 소명감 비슷한 걸 느꼈다.
이건 작년 7 월 머지않아 사라질 운명인 도심 속의 습지를 다녀왔을 때 마음과 비슷했다.
그날 생태환경 운동을 하는 신부님이 옆 자리에 있었는데 '무척 초조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 말이 기억에 남았다. 밥 먹다 체하듯 가슴에 턱턱 걸렸다.
초조하다고? 뭐가? 지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내가 보기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6 개월이 지나 이 책을 봤을 때 읽고 싶었다. 뭘 알아야 이해를 하지.
매일 강변 산책로를 걷는다. 검은 물이 흐르고 오리가 유유히 자맥질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보면 기후 전문가들의 걱정이 쓸데없어 보인다.
괜찮아.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문득 2년 전 청주 공항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본 사막의 황토 모래 같은 구름이 떠오르긴 했다. 그때는 미세 먼지가 화두였다. 한 살이 갓 지난 손자에게 마스크를 씌워야 하는 건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던지. 미세먼지만큼 큰 환경 위기는 없을 거라 여겼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겪으며 나는 900일 간 독일군에게 봉쇄된 레닌그라드 사람들이 생애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거라 말했던 걸 떠올린다. 45년 후 그들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겪었다. 미래에 큰 사고가 없을 거라 믿는 게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란 걸 그들이 깨우쳐 주지 않더라도 1억 5000 만년 동안 지구를 차지하고 살던 공룡이 어느 한순간 사라진 걸 보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마음을 열어놓는 게 현명하게 여겨진다.
조너선은 고민한다. 책의 전반부는 망설임으로 가득 차 있다. 기후 위기를 어떻게 심각하게 느끼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
환경의 위기를 경고한 다큐 '불편한 진실'을 만든 엘 고어 미국 부통령도 망설였다고 그는 짐작한다. 기후에 관한 이야기는 밋밋하다.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기에 적합한 서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미국 민권 운동의 시발점이 된 버스 좌석 분리 사건은 로자 파크스 사건 9 개월 전 콜린이라는 미혼모가 일으켰다. 민권 운동가들은 사람들이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가진 미혼모의 말을 들을지, 안정적인 시민운동가의 말을 들을지 고심했다.
그의 책에는 유대인으로 살아온 가족의 역사, 가족 간 갈등이 촘촘히 엮여 있다. 자살한 할아버지는『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 말을 못 하는 할머니의 세입자로, 나치를 피해 탈출한 할머니의 용기와 결단은 공장식 축산 자료 조사의 난관을 극복하고, 지금 우리가 내려야 할 결단과 맞물려 있다.
마침내 그가 말한다.
'불편한 진실' 다큐에 나온 그런 방법은 별 효과가 없습니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요. 엘 고어는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고, 환경에 관심 있는 정치인을 후원하고.너무 늦어요. 그런 방법은 최소한 이십 년은 걸려요. 지구는 2020년 임계점에 도달해 있어요. 앞으로 10년간 획기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우리는 지구를 구할 수 없어요.
각종 통계를 보여준다.
지구가 농장이라 여겨야 해요. 인간이 먹을 곡물을 키워야 할 땅이, 산소를 빨아들일 나무가 자랄 땅이 베어져 축산물의 먹이를 키우는 농장으로 변하고 있어요.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이산화탄소 등가물의 14퍼센트가 축산물에서 나오는데 이 비중은 지구 상에 돌아다니는 모든 자동차와 비행기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보다 많습니다. 이건 유엔 식량 농업 기구의 통계인데요. 여기엔 슬쩍 축산물이 직접 내뿜는 이산화탄소 등가물은 빠져 있어요. 이것까지 포함시킨 통계는 51퍼센트입니다. 어마 무시하죠. 지구 상의 이산화탄소의 주범은 공장식 축산물이랍니다.
매일 햄버거를 먹는 미국 사람들에게 고어가 말하기 힘들었으리라. 추수감사절 날 칠면조를 4500만 마리나 먹는 미국인에게 이제 고기를 그만 먹어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동물권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소 돼지, 닭은 더 이상 자연의 산물이 아니다. 우리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의 부산물과 같다.
채식주의자가 되란 말은 아닙니다. 동물성 식단을 하루에 한 끼만 드세요. 그게 세끼 채식주의자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보다 적답니다. 아침 , 점심을 식물성 식단으로 드시고, 저녁 식사로만 동물성 식단을 드세요. 그게 지구를 구하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몇 가지를 덧붙이자면.
비행기를 가능하면 타지 마세요.
자동차를 타지 말고 걸어 다니세요.
아이를 낳지 마세요.
모두 지킬 순 없지만 누구나 따라 할 만한 한두 가지는 있을 것 같다.
아침마다 마시는 라테의 우유를 포기할 수 있을까?
우유와 달걀이 떨어지면 이틀 정도 기다렸다 구입하자.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서히 조금씩.
‘조망 효과’란 말이 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벗어나 광활한 우주에서 작은 지구를 바라본 이들은 이후 삶이 달라진다.
우주인 론 배런은 조망 효과의 경험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감정과 인식 둘 다 물밀 듯이 저에게 밀려왔습니다. (…) 지구를, 이 놀랍고 연약한 오아시스, 우리에게 주어진, 거친 우주로부터 모든 생명을 보호해 온 이 섬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모순에 배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p137
지금까지 우주에서 지구를 본 이는 567명에 불과하다. 백만 명 정도가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지구 환경은 저절로 달라질 거라 한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앞으로 점점 지구 위기의 경고 사이렌이 울릴 것이고 사람들은 경각심을 가져 여러 가지 방법을 찾을 거야. 인류를 그리 만만히 보면 안 돼.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과연 그럴까? 끓어 넘친 물을 수습할 수 있을까?
잘 나가는 젊은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
그는 왜 지구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도 나처럼 ‘초조하다.‘ 같은, 누군가의 한마디를 잊지 못한 것 아닐까.
그의 책『내가 여기 있나이다(HERE I AM)』를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브라함과 그의 하느님, 조너선의 대답이기에.
#우리가 날씨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송은주 옮김, 민음사
표지 사진: 푸른 구슬(The Blue Marble)은 1972년 아폴로 17호가 촬영한 지구 사진이다. 이전 1990년 보이저 1호가 찍은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도 있다. 한 번 찾아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