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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Feb 01. 2021

레베카 1

단편 2-1


 당신은 일주일에 한 번 아내를 안더군. 그것도 주말에만. 그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어떻게 알았냐고? 글쎄. 내가 당신에게 말해줘야 할 의무가 있을까.


 케이가 맥주를 사려고 한 시간 거리의 마켓에 간 건 석 달 만이었다. 모든 게 손가락 누름 한 번으로 만사 오케이인 세상에 예외인 것이 술이었다. 그것만은 직접 가서 구매해야 했다.

 -아직 미성년자에게 주류 판매를 금하다니,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데.

 마켓에서 맥주를 고르며 케이는 투덜댔다.


 삼 년 전에 집에서 십 분 거리의 슈퍼가 사라졌다. 작지만 오밀조밀하게 온갖 것을 갖춰 놓아 노인들이 즐겨 찾던 슈퍼도 결국 변화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각종 도시락에 두툼한 계란말이, 이쑤시개, 드립 커피 필터까지 없는 것 없이 소소한 물건들을 갖춰 놓았던 슈퍼가 사라지자 지방자치단체는 원거리 운전이 힘든 노인들에게 필요한 식품을 주기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쌀이나, 라면, 과일, 간식. 노인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일찌감치 디지털 변화에 적응한 노인과 아날로그를 고집해 아무것도 할 줄 모르게 된 노인으로.


  -포인트는 어느 카드로 적립하시겠어요?

  이따금 계산대에서 사람을 만날 때면 케이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느라 당황했다. 이미 대부분 상가는 무인판매대로 바뀌어 사람들을 만날 일이 없었다.


  2030년 게임 산업 성장률은 놀라웠다. 런던에서 열린 세계 게임 콘퍼런스에서 주인공은 단연 한국의 텔슨 산업이었다. 3년 전 텔슨은 추격해오는 대만의 서핑 산업과 일본의 이비 산업을 저만치 따돌려 버렸다. 승리의 원인은 텔슨의 AI 레베카였다. 그 무렵 레베카는 선두였던 중국의 저니, 미국의 알렉스를 추월했기에 그들은 레베카의 온갖 자료를 수집하는 데 회사의 총력을 바쳤다.


  한 분석가는 레베카의 승리는 어려서부터 게임에 중독된 한국 아이들의 승부 근성이 한몫을 단단히 했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들이 어려서 익힌 젓가락질이 손의 미세한 소 근육을 발달시켜 극히 섬세한 작업을 가능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강대국 틈에 끼여 생존해온 한국이란 나라가 가진 근성이 응축되었다가 드디어 출구를 찾아 표출되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게임산업은 레베카의 출시를 계기로 4차 산업의 전 분야로 확장되었다.


 레베카, 텔레비전 틀어주세요.

 레베카, 지난주 베스트 영화 틀어줘.

 레베카, 아기랑 놀아줘. 나, 잠깐 다녀올게.

 레베카 11시에 거실 에어컨 켜 줘.

 레베카, 피자랑 콜라 주문해줘, 저녁 7시에 도착하도록.


 텔슨 산업은 분주해졌다. 레베카를 통해 들어오는 모든 자료를 저장했다. 다양한 소리를 감지하기 위해 마이크로칩의 성능을 하루가 다르게 발전시켰다.


 -회장님, 오늘 3시에 양 의원님과  약속 있습니다.

 텔슨 사옥은 제주 한경 바닷가에 있었다. 수년 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던 사옥을 회사는 제주 바닷가로 이전했다. 모든 것이 컴퓨터로 가능해진 세상에 굳이 본사를 서울에 둘  필요가 없다고 텔슨의 제이슨 회장은 생각했다. 사옥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키 모어가 설계한 고래 모양의 건축물로 21세기 아시아 건축상을 받은 작품이다. 제주 푸른 바다를 상징한 이 사옥에 들어간 사람은 주위 아무것도 가로막는 것 없는 단순함에 놀라고, 홀로 바닷가에 서 있는 것 같은 막막한 느낌에 두 번 놀란다.


  -제이슨 회장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네.

 사옥에 들어선 양정수가 손 내미는 제이슨 회장에게 말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의원님께서 여기까지 찾아오시니 황감한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이슨은 양정수의 속내를 탐색하느라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갓 마흔이 된 제이슨은 군살 없는 체격에 청바지와 면 티셔츠 차림이었다. 선해 보이는 눈매와 각진 턱은 상대방에게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속내는 의지가 굳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사업가라기보다는 학생들 틈에 섞여 캠퍼스를 걸어가면 어울릴 법했다. 단지 희끗하게 늘기 시작한 흰머리가 평탄하게만은 살아오지 않은 그의 나이를 짐작하게 했다. 그에 반해 전직 국회의원이며 여권 실세라는 소문이 무성한 쉰다섯 살 양정수는 살집이 두두룩한 사업가 같이 보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그를 무골호인같이 털털하게 여겼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인지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지 않은 정장 차림이었다.


  -요즘 너무 잘 나가는 거 아닙니까?

  -무슨?

  소파에 앉으려던 제이슨이 의아하게 양정수를 바라봤다.

  -따라올 자가 없다면서요.

  -아이고,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계는 한 치 앞을 몰라요. 잠시 느긋하다 보면 바로 무너져요.

  양정수는 긍정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양 의원께서 이곳 제주까지 어인 일로?

  -아이고, 제가 언제 제 일로 다니는 거 봤습니까?


  양정수는 고개를 돌려 보좌관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눈짓했다.

  두 사람만 남은 실내에는 작고 은은한 음악 소리만 나직하게 깔려 있었다.


  -멘델스존의 봄의 노래죠.

  제이슨이 레베카를 부르며, 음악을 끄려고 하자, 양정수가 그냥 두라고 손짓했다.


  -제이슨, 요즘 BT께서 속이 타요.

  -그래요? 요즘 괜찮잖아요. 별문제 없어 보이던데⋯. 야당도 조용하고.

  -속 모르는 소리. 도통 믿을 수가 있어야지. 사람들 속내를. 이러다 뚜껑 열면 뒤집어지는 수가 있어요.

 양정수가  말하는 건 일 년 후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이야기다.


  -그래요? 지난번에 설문조사 결과 보니 여당이 압도적이던데.

  -그건 수치상이고, 실제는 안 그렇다는 첩보가 있어서 그러죠. 그래서 이렇게 제주까지 내려왔잖아요. 제가 무슨 부탁을 할 건지 말 안 해도 짐작하시죠?


 곡은 한여름 밤의 꿈으로 점차 넘어가고 있었다. 커지는 음악 소리 때문에 두 사람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져 갔다.


*


  -답답해 죽을 뻔했어.

  쓱싹 하며 예리한 칼로 테이프 자르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이제야 해방이라는 걸 알았다. 여자는 뽁뽁이에 싸인 나를 조심스레 끄집어내더니 이리저리 내 겉모습을 살펴보았다.   


  -검은색으로 할 걸 그랬나?

  -아니요. 모르는 말씀. 요즘 누가 검은색 쓴대요? 하얀색이 훨씬 세련이죠.

  호기심에 차서 들여다보는 여자에게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물론, 여자는 알아듣지 못했다. 여자는 주섬주섬 흩어진 포장지를 버리고 오더니, 신난 표정이 되었다.

  -레베카 업그레이드 버전, 시즌 3이라… 이게 모든 걸 해결해 준다고?

  -글쎄요. 쓰기 나름이죠. 당신의 능력에 따라⋯ 어, 어, 어. 그거 아닌데.


  여자는 무식하고 용감했다. 케이블을 가져오더니 내 옆구리 아무 곳에나 마구 꽂기 시작했다.

  -아이고, 거긴 아니네요. 뒤집혔잖아요.

  말을 알아들은 걸까? 여자는 얼른 뒤집어 본래 자리를 찾아 꽂았다.


  나는 여자의 외모와 목소리로 나이를 탐색했다. 목소리로는 마흔 중반 같은데 기분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편차를 고려해야 한다. 얼굴로는 나이 짐작이 어렵다. 성형 의술의 발전으로 대부분 이전보다 열 살은 젊어 보이니까. 머리카락이 그나마 정확했다. 정수리 모발 분포도와 염색모인 지를 살펴보면 대략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여자 나이는 아직 마흔은 안 됐다. 서른 후반이 맞아. 본사 기록이 곧 도착할 테지만, 나는 스스로 알아낸 결과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


  여자가 외출하자 집은 정적에 잠겼다. 어스름하게 해 기우는 시각, 현관문 버튼 누르는 소리에 깜빡 나는 정신이 돌아왔다. 여자는 나를 본 척도 안 하고 부엌으로 갔다. 날 잊어버린 걸까?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소리, 싱크대 물 트는 소리, 냉장고 문 여는 소리가 나더니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전골이군. 쇠고기, 버섯. 제법 맛을 낼 줄 아는 모양이네. 순간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부엌에서 하는 일이 궁금해졌다. 텥슨은 뭐 하는 거야? 로봇 청소기처럼 나도 돌아다닐 수 있게 해 주지. 그래, 언젠간 그렇게 될 거야. 안 되는 게 어딨어. 옛날 꿈꿨던 모든 게 현실이 된 마당에.


  저녁 준비를 대략 마쳤는지,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신기한 표정으로 들여다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레베카, 텔레비전 채널 20번 틀어주세요.

  -잘 안 들려요. 조금 소리를 키워주세요.


  -어머, 그러니? 레베카, ‘그리운 영혼’ 영화 틀어주세요.

  그렇지, 소리도 좋고 존댓말도 좋아.


  나는 얼른 그녀가 원하는 영화를 틀어주었다.

  -어머, 어머, 제임스 단이잖아.

  여자는 텔레비전에 코가 빠지도록 다가와 금발 머리의 청년을 들여다봤다.


  몇 년 전, 영화계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CG 그룹은 흘러간 외국의 영화배우들을 출연시키는 방법을 찾아서 뉴스의 초점이 됐다. 마니아들은 오드리 영번, 제임스 단, 험프리 가이트를 기대했다. 이 모든 게 가능해진 것은 GAN(생성적 적대 신경망) 때문이었다. GAN은 기존의 얼굴을 정교하게 조합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너끈히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책이나 음반의 저작권처럼 유족의 양해를 받아야 했지만. 매력적인 모델이나, 반지의 제왕에 출연하는 수많은 엑스트라를 실제 동원하지 않고 그럴듯하게 생성해 내는 것은 이미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잔혹 무비로 잘 알려진 김영덕 감독, 계층 간의 갈등에 관심이 많은 봉준식 감독은 신작 영화에 과거의 배우들을 끌어냈다. 일흔이 넘은 한국 영화계의 거장 김진미 여배우가 이십 대의 모습으로 영화에 출연했고, 몇 년 전 타계한 영원한 청춘 신성열이 1966년 영화 ‘늦가을’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그들이 출연한 영화가 상영관을 독점하자, 독립영화사와 젊은 배우들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제임스 단 팬이군.

  나는 영화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인간이란 동물은 나이를 불문하고 속마음이 비슷하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현관문 소리가 나고 여자의 남편이 들어왔다. 제임스에 빠진 여자는 남편이 들어와도 돌아보지 않았다. 심상치 않군. 나는 저녁 무렵 퇴근하는 남편을 아내가 어떻게 맞이하는지만 보면 둘 사이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레베카, 잠시 영화 중지!

  아니나 다를까, 여자는 아쉬운 표정으로, 영화를 못 보는 게 남편 탓이라도 된 양, 부엌으로 가서 레인지 불을 켰다. 아니, 그런데. 다시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레베카, ‘그리운 영화’ 계속 틀어주세요.

  물론 나는 여자가 시키는 대로 했다.


  -병원은 다녀왔어?

식사를 마친 남자가 소파에 느긋하게 몸을 기대더니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돌아보지 않고 눈을 비전을 향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데? 이번엔 잘 돼야 할 텐데. 몇 개 남지 않았잖아.

갑자기 여자가 고개를 돌려 불만스레 남자를 쳐다봤다.

-이번만 해보고 그만 할래. 굳이 아이가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케이는 서른 중반의 어느 날, 막연한 미래에 대해 불안감이 엄습했다. 케이는 불임클리닉을 찾아가 난자를 채취했고, 냉동 보관해 놓았다. 케이는 서른일곱에 대니얼을 만났다. 결혼하고 삼 년이 자나 케이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대니얼은 슬며시 아기 이야기를 꺼냈다. 그 무렵 둘 사이엔 결혼 초의 뜨거운 감정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케이는 이따금 생각했다. 내가 저 남자를 사랑한 순간이 있었던가. 케이와 대니얼은 성격부터, 좋아하는 음식, 취미까지 비슷한 게 하나도 없었다. 달라서 끌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케이는 마음 한구석이 어딘지 텅 비어있는 것 같았다. 대니얼은 그런 케이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대니얼이 아기 이야기를 꺼냈을 때 케이는 직장 일에 한창 물이 오른 때여서 아기 때문에 경력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임신 후 부른 배를 안고 직장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아직 임신이 가능한지도 몰랐다. 그때 떠오른 게 오 년 전 보관해 둔 냉동 난자였다. 대니얼은  케이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십 년 전부터 성은 거리낌 없이 개방됐다. 초등학생용 성교재가 외국에서 유입되어 아이들은 성은 즐거운 것, 궁금하면 직접 해보면 되는 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교육에 반발도 제법 있었지만, 고리타분하게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데 아직까지 순 잡고 자면 아기가 생긴다는 교육을 하고 있냐는 소리에 다들 슬그머니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저 책 아무 문제없지 않나요? 어린이일수록 정확한 표현을 써 줘야 해요. 뭐 이런 걸 가지고 논란을 벌이나요. 21세기에 이러면 안 되죠. 섹스가 재미있는 거 맞잖아요. 섹스에 대해 가리고 덮을수록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가 되죠.

‘고추가 부풀고 커지면 질에 넣는다. 걱정 마, 콘돔이 있어.’ 자기 자식에게 이런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자칫하면 조기 성애화가 돼요. 어린 시절부터 포르노나 섹스 장면을 자연스럽게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도 그런 행동을 해도 된다고 모방하게 돼요.


서로 간 치열한 반론이 제기되었지만, 변화한 세상에 옛적 사고만을 고수하긴 무리가 있다는 말들이 대세를 이뤄 이 교재는 전국의 초등학생들에게 베포 되었다. 그러다 보니 궁금해서 저지른 일의 결과로 초등학생이 임신하는 경우도 생겼다. 나라 입장에선 출산율 저하로 고민하던 터여서 그리 나쁜 일이 아니었지만 미혼모가 늘어나, 정부는 뒷수습을 해야 했다. 텔슨은 정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산업이 되었다. 성에 대한 인식은 즐긴다는 개념으로 굳어져 출산율은 높아졌지만, 결혼하는 부부는 줄어들었다. 여자들은 굳이 결혼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남자들은 단순한 섹스 파트너에 불과했다. 해마다 많은 아기들이 레베카 베이비 시스템에서 태어나 텔슨의 보호 아래 자라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1978년 영국에서 최초로 시험관 아기가 탄생했다. 한국은 1985년 세계에서 열여덟 번째로 이란성쌍둥이를 출산했고, 2017년 무렵에는 체외수정 시술이 89,481건 이루어졌다. 모두 보험이 되어 개인 부담이 거의 없어졌으므로 혼기를 넘긴 여자들이나 질병에 걸린 여자들은 만일을 대비해 난자를 적출해 냉동 보관하기 시작했다. 불임 전문 클리닉에서는 채취한 난자를 동결 후 질소 탱크에 보관했고, 시험관 시술 요청이 있으면 해동 후 수정시켰다. 냉동 난자의 보관 기간은 5년이었으므로 케이의 경우에는 이 해를 넘기면 시험관 시술도 불가능했다.


케이는 엄마가 떠올랐다. 늘 지쳐서 누워 있던 엄마, 동생을 임신해 배부른 엄마. 무거운 배를 움켜쥐고 여름에 땀 흘리며 부엌일 하던 엄마. 그때 회사에서 케이에게 레베카 양육시스템을 제안했다. 두 번의 시도 끝에 체외 수정은 성공해서 배아가 형성됐다. 배아는 시험관에서 며칠 배양된 후 케이의 몸과 똑같이 만들어진 레베카 인공 자궁에 착상했다.


보름마다 레베카 베이비 시스템은 태아의 사진을 메일로 보내줬다. 석 달이 지나자 아기의 모습 윤곽이 보였다. 첨부된 사진 파일이 두 장 있었는데 아기의 미래 얼굴로 예상되는 사진들이었다. 세 살 무렵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는 또록또록한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인이 된 여자의 사진은 더 생소했다. 대니얼은 자기와 케이를 빼닮았다고 했지만 케이는 아기의 얼굴들이 낯설기만 했다. 케이는 이따금 아기가 들어앉아 있어야 했을 배를 만져보았다. 아기를 담은 적 없는 배는 홀쭉하고 매끄러웠다. 레베카 베이비 시스템에서는 엄마와 똑 같이 아기가 달을 채우면 인공 자궁에서 내보내 두 주간 병실에서 돌보다가 레베카 양육 시스템으로 넘겼다. 이 시기에 아기를 데려가는 부모도 있었지만, 여건이 안 되는 부모는 주말에만 아기를 보러 왔다. 베카 양육시스템은 평이 좋았다.


케이의 엄마는 베이비 붐 세대였다. 윗세대의 전쟁으로 인한 상실과 궁핍을 겪지 않았다. 케이도 엄마와 마찬가지로 평탄한 삶을 살았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대학 졸업 후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연봉도 좋았고 원하는 휴가도 마음껏 쓸 수 있었기에 회사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케이의 엄마는 늘 편두통을 달고 살았고, 케이는 늘 핸드백에 초콜릿과 사탕을 넣고 다녔다.


3.5킬로그램 분홍빛 살색을 가진 마리를 품에 안았을 때 케이는 모든 게 순탄하다고 생각했다. 마리를 집에 데려가 키울 생각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회사의 출장은 너무 잦았고 앞으로 승진은 불가능할 거란 생각이 스쳐갔다. 경력의 다음 단계를 포기할 순 없었다. 마리는 2주 후 레베카 양육시스템으로 옮겨졌다. 케이는 마리가 세 살이 되면 데려올 예정이었다. 그러면 직장 일과 아기 양육을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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