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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누워있는 효순의 머리에서 검은 핏물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효순을 흔들었다. 아무 기척이 없다. 귀를 기울여도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움직임이 없었다. 피범벅이 된 벽돌. 손에 묻은 피.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 나는 망설였다. 주위를 돌아봤다. 푸른빛 너머 컴컴한 골목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부리나케 일어나 집으로 달려갔다.
처음엔 너에게 다가가려 했어. 그런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더라. 무슨 이야기를 하겠니. 차츰 나도 애들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 너를 보면 답답하고 짜증 나기 시작했어. 너의 침묵이 돌처럼 무거워 견딜 수 없었어. 슬프고 속상했지. 너에게 화가 났어. 이제 와서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돌아갈 수 없잖아.
밤마다 효순이 찾아왔다.
“물론 미안해?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미안하면 그냥 미안한 거지.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딨어.”
효순의 얼굴은 슬퍼 보였다.
“그날은 어쩔 수 없었어. 나를 불러낸 건 너잖아. 천사들이 롯의 가족에게 말하지.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되오.”
골목에 피 흘린 채 누워 있던 효순의 모습이 교실 뒷자리에 엎드려 있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땀에 젖었다. 탁자 위 시계는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디선가 오렌지 향기가 났다.
5
“아빠, 대경 여고 근무하지 않았어요?”
컴퓨터 앞에 앉아 뉴스 검색을 하던 딸이 뒤돌아보며 물었다.
“응, 근무했지. 그런데 왜?”
책을 읽던 문경수 씨가 돋보기를 벗고 의아한 표정으로 딸을 쳐다봤다.
살해 현장 못 미쳐 도로변 카페에서 피해자를 봤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전화한 사람은 박 형사에게 같이 있던 여자가 제법 유명한 사람이어서 기사를 보자 바로 기억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