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외식을 했더니 속이 부대꼈다. 음식은 좋았는데 내 몸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속이 불편해서 저녁을 걸렀다. 아침이 되어도 별로 먹고 싶은 게 없다.
오전 열 시 밖에 안 됐는데, 뭐가 그리 바쁠 예정인지 옆 남자가 계속 오늘 점심은 뭘 먹을 거냐 묻는다.
먹고 싶은 거 없는데...
이럴 땐 참 고역이다. 먹고 싶지 않은데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건.
하지만 만들어놓으면 식사를 거르지 않게 되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비 오는 날에는 보통 라면을 먹는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 그것도 무겁게 느껴진다. 칼국수나 수제비라면 좋겠는데. 그런데 호박이 없다. 호박 없는 수제비는 상상이 안 된다. 노랗고 파릇파릇한 게 가끔 보여야 먹을 맛이 날 것 같다.
냉동실 문을 열어놓고 앞에 서서 뭘 파먹을까, 생각한다.
냉동 호박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가을에 큼직한 게 천 원이라 두 개 사서 얼려둔 찌게용 호박이다. 녹여서 슬라이스 하면 원래 사각인지 누가 알겠어.
야채 칸에 굴러다니던 양파랑, 사놓은 것 잊어버려 군데군데 촉이 난 감자도 해치우기로 한다. 밀가루는 130그램만 반죽했다. 뒤에서 계속 조금만 해, 조금만 해, 외치기에. 저러다 변심하지 싶지만. 뭉쳐놓았다가 시간 지나 다시 주무르면 밀가루는 매끄러워진다. 물을 묻혀가며 최대한 얇게 펼쳐야 한다. 반죽할 때 기름 조금 넣었어야 하는데.
멸치 배도 가르지 않고 풍덩 넣었다. 지난번에 티브이에 나온 남자 요리사는 멸치를 그냥 썼다. 똥을 왜 버리냐 하면서. 쓸 텐데... 하지만 이번 멸치는 그리 크지 않다. 써 봤자지, 대범하게 먹기로 한다. 가만 생각하면 전복은 다 먹으면서 멸치는 왜 차별하나 싶다. 같은 바다에 사는데.
육수만 끓여놓고 한 시 넘어 만들 예정이다. 지금 먹자, 뒤에서 중얼거리지만 못 들은 척한다.
비 오는 날에는 맑은 수제비가 좋다.
남편이 밀가루 반죽을 투박하게 뜯어 넣었다. 처음에는 엄지 손톱 모양으로 넣길래 깍두기냐 핀잔줬더니 차츰 넖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