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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r 10. 2021

도어, 경이로운 에메렌츠

『도어』서보머그더, 김보국 옮김, 프시케의 숲



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헝가리 작가 서보 머그더(1917~2007)의『도어』는 시종여일 이 의문을 끌고 간다. 작가는 집안일을 도울 하녀를 고용한다. 하녀 이름은 에메렌츠. 그녀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무뚝뚝하고 말이 없다. 일하는 시간과 월급을 자기가 정하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동네의 여러 잡일을 함께 하고 있기에 시간이 날 때 수시로 이 집을 드나들며 일한다.


특이한 점은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을 구경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다. 그녀는 자신의 집 문을 꼭꼭 닫아 놓고 아무도 들이지 않는다. 무엇이 있기에 문을 열지 않을까? 마을에는 온갖 흉흉한 말이 떠돈다.


책을 중간 정도 읽었을 때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계속 읽을까, 그만 접을까. 책이 너무 낯설었다. 우선 서너 줄을 쉬이 넘어가는 긴 문장을 읽는 게 힘들었다. 그간 간단명료한 단문에 익숙해져서인지 모른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헝가리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 문화와 풍속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도 이유였다. 무엇보다 헝가리 소설은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책은 일주일 넘게 집의 이곳저곳에 시옷자로 엎어진 채 놓여 도서관 반납 일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글의 소재와 분위기, 인간과 동물의 신비로운 교감은 독특한데 어째 읽는 건 지지부진했다.


읽기를 마치고 뒤에 실린 신형철 평론가의 추천의 글을 읽었다. 그는 봄에 원고를 받았는데 여름과 가을을 보내며 천천히 세 번 읽었다고 말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은 잠시였고, 가능한 한 빨리 읽고 속성으로 이해하려는 나의 조급함이 씁쓸하게 와 닿았다.




‘헝가리’라고 하면 나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 먼저 떠오른다. 경쾌하지만 슬픈 서정성 짙은 음악은 생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현실의 좌절이 잘 어우러져있다. 『도어』에는 이런 주변 상황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읽는 이 누구라도 헝가리의 정치적 상황, 사회적 분위기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짐작하게 된다.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에 위치한 헝가리는 16세기에 터키의 침략을 받아 150년간 그 지배하에 있었다. 국민들은 터키를 몰아내려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와 협력한다. 그 결과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에 귀속되어 1, 2차 세계 대전에 참가하고 패전으로 전범 국가가 된다.





이 시기에 헝가리는 극도의 경제적 피폐를 경험했다. 그리하여 많은 국민들이 사회주의를 원하게 되어 결국 소련의 지원으로 공산 정권이 수립된다. 하지만 공산주의 정권은 헝가리에 경제적인 낙후와 국민 간의 감시, 불신을 가져왔다. 출판물은 검열을 받아야 했고, 체제에 비판적인 작가들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작가 서보 머그더는 1949년부터 글을 쓸 수 없었다. 1956년 다시 글을 쓰게 된 건 스탈린 사후 민중 폭동으로 헝가리가 반공, 반소 화하면서 서구식 사회민주주의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해금된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집안일을 도와줄 하녀를 찾는다.


『도어』는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이미 형성된 가치관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해하고 융화되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낱낱이 섬세하게 적어놓은 기록이다.

이따금 작가는 그녀가  군주 같다. 그녀의 선의를 무시했을 경우, 가정의 평화를 위해 카노사의 굴욕을 감수해야 한다. 에메렌츠의 현재와 과거는 비밀에 싸여 있다. 그녀는 책 읽는 걸 무시하고, 글 쓰는 주인 부부를 비웃기까지 한다. 교회를 가기보다는 그 시간에 길을 청소하는 게 더 낫다고 여긴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3년 헝가리를 여행했다. 부다페스트 게르하르트 언덕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주변국들을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다녀서 헝가리에 관해서 특별한 기억이 없다. 몇 년 전 헝가리 여행객 사고가 났을 때 그제야 여행 중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밤, 배에서 바라본 강변 건물은 황금색으로 찬란해 융성했던 어느 한 시절을 짐작하게 했다.

헝가리는 외환의 부침이 심한 나라였지만 의외로 기초과학 분야와 의학이 발달해 노벨상을 많이 받았다. 인구가 천만 명인데, 13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2020년 임레 케르테스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땐 헝가리 국민들조차 놀랐다 한다.




에메렌츠는 냉소로 이러한 역사의 물결을 지켜봤다. 설득하러 온 인민 교화원에게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철학을 설교한다.


에메렌츠의 세상에는 빗자루 질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빗자루 질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슬로건을 내걸든, 어떤 깃발 아래에서 국경일 행사를 하든 그들은 모두 똑같았다.  p154


에메렌츠는 20년간 작가가 글을 쓸 수 있게 환경을 제공했다. 하지만 선한 의도로 할 행동일지라도 상대에게  상처를 줘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이미 매일 병원에 들르지는 않았다. 시간도 없었거니와 매일 가야 할 이유도 없었다. 처음에는 여러 문제들과 생각들로부터 달아나고자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창조는 지식의 은혜로운 결과일 뿐이기에 그것이 제대로 되려면 그 많은 모든 것을 갖추어야 했다. 흥분과 평온함, 내부적인 고요와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한 긴장된 감정들이 있어야 했지만, 내게는 그런 요소들이 부족했다. 에메렌츠가 머리에 떠오르면 평온한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 대신 내 마음 한편에 당황스러운 혼동과 쉬이 지나쳐가지 않는 부끄러움이 들었다. p322


장례를 부탁받은 목사는 이를 마땅치 않게 여긴다. 교회를 위해 그녀가 한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에 반해 작가는 키우던 개 비올라에 대한 그녀의 눈길보다 그녀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결코 더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위해 교회와 담쌓은 이들을 나무라는 장례식의 설교에 주민들은 에메렌츠를 연상하지 못한다. 어떤 이가 진정한 기독교인일까?

장례식 다음 주일 교회에는 그때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적이 없었다. 루터교, 가톨릭, 유대교. 유니테리언, 심지어 어느 교회도 다니지 않던 사람들이 장례식에 대한 답례로 목사의 예배에 참석했다.


문 안의 성聖 에메렌츠는 세상의 모든 이를 구원한 자비의 광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이타적인 여자, 경이로운 에메렌츠.



#도어, 서보 머그더, 김보국 옮김, 프시케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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