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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r 10. 2021

영화 '미나리'에 스며 있는 기독교의 가치관

대속과 섭리



사람들이 많이 본 영화에 관해서 리뷰를 쓰는 걸 피하는 편이다. 슬쩍 검색해서 보고 리뷰가 많이 뜨면 아예 접어버린다. 다른 분들이 많이 쓰시는데, 나까지 싶어서다. 영화 미나리를 보고 나서 간단히 메모만 했다. 기억력이 점점 나빠지니 후일 영화를 본 기억조차 사라질까 봐.


미나리는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다.

부딪히고 싸우고 깨져도 다시 일어서는, 일어서야 하는 가족의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에 여운이 남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특이한 게 좀 전에 둘이서 같은 영화를 봤는데 비중 있게 본 장면들이 달랐다. 같은 장면을 다르게 보기도 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영화의 특징이 이건가 싶었다. 감별한 수평아리를 폐기하는 굴뚝의 연기 장면이 두 번이나 나와서 나는 감독이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수컷은 어디에나 쓸모가 없어."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본 건 이 장면이었고, 같은 장면을 남편은 이렇게 봤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같은 장면을 우리는 다르게 봤다.

전날 만난 60대 후반의 지인은(결혼 한 적 없는 이다) 실제 영화에 할머니가 별로 안 나오더라고 말했다. 이것도 내 생각과 다르다.


미나리에 대해서 리뷰를 쓰기로 마음먹은 건 불현듯 이 영화에 기독교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는 걸 깨달아서다. 대속. 섭리. 이타심 같은 것들.


낯선 이방인 제이콥을 열심히 도와주는 이웃사람 폴(바오로의 영어 명칭)은 이타심이 많은 인물이다. 그는 한국전 참전 용사이기도 하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주일에 신도들이 모이는 교회에 가지 않고 무거운 십자가를 끌고 다닌다.


외로워하는 아내(모니카)에게 남편(제이콥)은 사람들을 만나러 교회에 가자고 권유한다. 그들이 교회에 가는 목적은 신앙이 아니라 사교로 보인다. 모처럼 간 교회에서 모니카는 큰돈을 헌금으로 내놓는다. 옆에서 보던 할머니(순자)는 딸이 낸 헌금을 슬쩍 빼낸다. 형편도 어려운데 이렇게 많이 헌금할 필요가 있나, 생각한다.

병아리 감별장에서 만난 친구는 열다섯 명이면 만드는 한국인 교회가 왜 없냐는 모니카의 물음에 여기 온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전 교회에서 상처 받고 온 사람들이라고 눈총을 준다.


-데이빗이 잘못될지 몰라요.

심장병을 걱정하는 엄마의 말을 엿들은 데이빗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옆에 누운 할머니에게 살고 싶다고 울먹인다. 할머니가 손자를 꼭 껴안는다.


-꿈에서 천국을 보라고? 누가 그렇게 쓸데없는 말을 했니? 기도 안 해도 돼. 그런 거 안 봐도 돼. 오래오래 살아. 내가 너를 보호해 줄게. 누가 우리 손자를 건드려. 절대 아무도 너를 못 건드리게 내가 보호해 줄게.


다음날 아침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의식을 잃었다. 뇌졸중이다. 야뇨증에 걸린 손자 대신 할머니가 오줌을 지린다. 건강하던 할머니의 몸이 간밤에 무너졌다. 우연일까? 혹자는 할머니 몸의 기가 모두 손자에게로 갔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데이빗의 심장 검진 날. 의사는 심장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고 말한다.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 같이만 하세요, 한다. 이것도 우연일까?


이 장면에서 나는 ‘대속代贖’을 떠올렸다. 대속이란, 노예나 죄인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빚을 대신 갚는다는 의미이다. 아담과 하와 이래로 인간은 원죄를 가진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모두 끌어안고 돌아가셨다. 이게 기독교의 대속 교리이다.

하느님의 마음과 가장 가까운 인간의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이라 한다. 나는 할머니의 대속으로 손자가 완쾌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손자의 병을 할머니가 모두 가져갔다. 그래서 할머니의 몸은 이전과 같지 않다. 팔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말도 어눌하다. 허약해져 전쟁 때 누군가를 방공호로 대피시키던 장면을 떠올린다. 할머니는 폴이 와서 기도해주고 난 후 조심스레 걸어 다닐 정도로 회복된다.  


할머니가 쓰레기를 태우다가 채소 창고에 불을 낸다. 가족이 병원에서 희망에 찬 소식을 듣고, 채소 상인을 만나 그간 땀 흘려 키운 채소를 납품하게 된 가장 좋은 시기에. 호사다마일까?


이런 일을 겪으면 우리는 왜 이런 시련을 주실까 하느님을 원망한다. 노력과 다른 결실, 예고 없이 닥친 불운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기는 쉽지 않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데. 섭리란 세상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뜻이라는데.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닥칠까.


자기의 잘못을 탓하며 떠나려는 할머니의 앞길을 손자가 뛰어와서 막는다. 데이빗이 불타는 창고를 배경으로 사뿐사뿐 뛰는 장면이 무척 아름답다. 이전까지 데이빗은 심장병 때문에 뛰어선 안 되었다.


-할머니, 우리 집은 이쪽이 아니야. 그만 집으로 가요.

팔을 벌리고 할머니를 가로막는다. 숯 검댕 묻은 얼굴로 할머니가 운다. 팔 벌리고 서 있는 데이빗의 모습을 나는 눈물젖은 순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모든 것이 타버렸다. 과일을 납품하게 되어 모든 일이 잘 될 거라는 남편의 말에도 도시로 떠나겠다던 아내는 이제 그의 곁을 지킬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남편을 버릴 수 없다.

불길을 잡느라 지친 가족이 거실에 나란히 누워 잠을 잔다. 창으로 스며든 아침 빛이 가족을 비춘다.


제이콥이 다시 밭에서 우물을 찾는다. 사람들, 이 땅의 생리에 익숙한 주민들의 충고를 이제 그물리치지 않는다. 제이콥이 데이빗과 개울가에서 미나리를 뜯는다. 개울가에 미나리가 무성하다. 미나리는 낯선 땅에도 뿌리를 잘 내렸다. 이 가족도 그럴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름이 성경 속 인물을 연상시켜 의미를 찾아본다. 제이콥은 구약 성경 속 이름 야곱이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 그는 형 에사우를 피해 외가인 하란으로 갔다.  돌아오는 도중 꿈에서 하느님을 만나 씨름을 해 이긴다. 이전에 그는 형을 속여 장자권을 빼앗은 치졸한 인물인데 고생을 하면서 성숙한 인물이 된다. 사마리아에는 야곱이 팠다는 우물이 있다. 예수와 이방인 사마리아 여인이 만난 곳이 이 우물이다.  모니카는 신학자 아우구스티노의 어머니로 신심 깊은 모성의 상징이다. 이방의 종교에 사로잡힌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기다린다. 데이빗은 다윗이다. 마태복음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복음은 굿 뉴스 Good News,  좋은 소식이다. 하느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드님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어, 그분이 가르침을 전하고 기적을 행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케리그마 Kerygma라 한다. 사도 바오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혼자서 체험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는 천막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지중해 연안 곳곳에서 천막을 만들며 삶과 유리되지 않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영화에서 폴은 주일마다 십자가를 지고 끙끙대며 그리스도의 삶을 재연한다. 제정신이 아닌가 봐, 하며 사람들은 지나가지만 그가 행복해 보인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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